해질 무렵

                                                                                          정 채 봉

 햇살도 짐승들도 다소곤해지고 억새풀마저도 순해지는 해질 무렵을 나는 사랑한다.

집 밖에서 큰 소리치며 떠들던 사람들도 이쯤에서는 기가 꺾여서 연기나는 집을 돌아보고, 병원의 환자들은 몸 아픔보다도 마음 아픔을 더 많이 앓는다는 해질 무렵, 고교 시절 풀어지지 않는 수학 문제도 이때만은 밉지 않았었다.

정처없이 흐르는 구름에 손을 흔들고 싶은 다감한 때, 산자락에서 풀을 뜯던 소도 산그리메가 내를 건너면 음메에 하고 주인을 찾는 것은 외양간에 갇힐망정 집이 그리운 때문이리라.

돌산도 이때만은 보랏빛에 젖어 신비해지고 강에 비친 골짜기도 가장 선한 표정이 된다.

나는 해질 무렵을 신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고향에 돌아와 있어도 성에 차지 않는 외로움이 남고, 그리운 이 곁에 있어도 이 해질 무렵에는 그리움이 일지 않는가. 이는 인간에게 있어 본래의 거처가 본래의 그리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아아, 이때만은 저녁 종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이면 어떠랴. 풀벌레 소리, 한낮에도 두 손을 모으게 되는 것을.

이 시간에 새들 소리를 들어보라. 예민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가만히 귀 기울이고 들으면 해뜰 무렵 다르고 해질 무렵 다른 것을 알아 챌 수 있으리라.

우리 민요에서는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울고, 저녁에 우는 새는 님이 그리워 운다.’고 했다. 배고파 우는 새 소리보다도 님 그리워 우는 새 소리가 노래로 남을 것은 자명하다.

나는 해질 무렵을 하루 중 가장 순수한 때라고 생각한다.

엷기로 말하면 실바람 잠든 모습 같은 순백의 박꽃이 이때 피어나는 것을 징표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정신적인 사랑을 무시하는 사람도 이 해질 무렵에만은 욕정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지 않으리라 본다.

아, 이 해질 무렵에는 눈 감고 귀 기울이면 저 뒤안을 돌아나오는 우리 할머니의 회심가락이 있다. 떼 파던 나를 스르르르 잦아지게 하던 그 아련한 곡을 나는 아직까지 대해 본 적이 없다.

후일, 신이 만일 나한테 이 세상을 하직할 시간대를 택하라면 두말않고 ‘해질 무렵’이라고 대답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