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과 나

                                                                                              최 병 호

 교육청의 전화를 받았다. 대뜸 어쩌면 포상란의 기록 같은 중요한 일을 송두리째 빼놓을 수가 있느냐는 힐난이다. 바로 추기할 수 있게 서무 실무자를 청으로 보내 달라는 일방적인 얘기다. 받는 쪽의 변명이나 형편 따위는 아예 고려 대상이 아니다. 나직이 짜증을 내쏟곤 ‘찰칵’ 수화기를 놓아버린다.

말투가 목에 걸렸다. 한 마디 쏘아붙이고 싶은 역정이 일었다. 그러나 얼른 입은 열리지 않았다. 나만한 경력이면 포상란은 이미 까맣게 먹칠되어 있는 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인사기록부 담당자의 통념에서 보면 포상란 한줄도 메우지 못한 교장이란 상상할 수 없는, 이변이라면 이변일 것이다. 내가 무엇을 했다고! 서무 실무자에게 그냥 적처하라고만 부탁했다.

나도 일찍이 상을 받은 바 있다. 학업 우등, 품행 선량, 출석 개근, 세 항목이 상의 잣대이던 초등학교 시절, 나는 거의 두 항목을 성취하여 2등상을 탔지만, 한두 번은 셋을 다 얻어 1등상의 영광을 안기도 했다. 중등학교 때는 상이 우등, 선행, 공로, 개근 따위의 주제별 상이었다. 그런대로 모양새를 갖춘 수상을 했던 것 같다. 면학의 일환이기도 했던 이 일련의 상들은 생활기록부에 기재되는 것으로 소임을 다한 유물로 망각곡선을 탔다.

인사기록부 포상란을 메울 상은 당연히 취업 후 직무와 관련된 상이다. 카키색 정권이 서면서 휘몬 ‘국력의 극대화’는 교육계에도 많은 상을 만들어 냈다. 그에 부수된 점수는 인사고과에 큰 몫으로 반영되었다. 너도 나도 상을 추구하는 부지런이 일어났다. 포상란을 채우고 점수를 높여가지 않으면 전출도 승진도 처질 수밖에 없는 질서가 세워져 갔다.

그런데 나는 그같은 상을 한 장도 받은 일이 없다. 당연히 포상란이 희멀건 해 남아 있을 수밖에. 학교의 주임 자리가 법정 지위로 격상되고 경쟁이 심해지던 그 무렵, 우연히도 나는 국립전문학교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그 몇 년 후엔 엉뚱하게도 사립중학교 교장이 되었다. 그 과정은 객관적으로 상과는 별로 인연이 없는 시기였다. 상을 받을 만한 능력도 성의도 미비한 터수지만 인연까지 멀어, 상장 하나 없는 책임자가 된 것이다. 발령권자에게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러구러 세월이 사뭇 흐른 어느 해 뜻밖에, 너무나도 뜻밖에 나는 공·사립 중등학교 교류 케이스로 교육 전문직 국가공무원으로 원대 복귀하는, 말하자면 유전의 주인공이 되었다. 맡은 일은 놀랍게도 체육장학.

자고 나도 눈 뜨고 입만 열면 어제나 다름없이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 얘기였다. 두 대회를 잘 치르고 나면 승천이라도 할 것 같은 아롱진 수사학이 문득문득 최면력을 발했다. 각급 학교에서는 이 두 행사의 주역이 될 선수 양성에 온힘을 모았다.

장학의 이름으로 각 학교를 순회했다. 어느 새 학교가 체육선수를 위한 장학 체제로 바뀌어져 있다. 시간표부터 다르다. 과목의 특성상 늘 뒷 시간에 배정되던 체육이 앞 시간으로 당겨져 있다. 체육 교사들이 오후부터 오전만으로 수업을 끝낸 체육선수들을 훈련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여느 학생들은 그래서 머리 맑은 첫 시간엔 운동장에서 뛰어야 하고 나른해진 마지막 시간엔 오히려 싸인곡선을 그려야 하는 불합리를 감내하고 있었다. 자율적 경비는 거의 이곳에 쏟아지고 학교체육진흥회까지 조직되어 후원이 더해지고 있었다.

일주일이 멀다고 격려 행차가 줄을 이었다. 체육회나 동창회 등의 외부 인사의 격려는 당연히 내가 안내를 했다. 그런데 격려는 곧 금일봉 전달의 행사가 되었다. 이따금 이 일을 내가 대행해야 할 경우가 생겨 난감했다. 생각 끝에 단호히 이는 자제키로 했다. 장학사의 격려 방문이 어떤 때는 금일봉이 있고 어떤 때는 없는 들쑥날쑥이 돼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 때문이다. 장학관으로 하여금 전달케 하는 일정을 짰다. 그같은 조치는 뜻밖에 지도교사들은 몇 곱으로 고무하는 결과를 낳았다.

지역의 규모 탓도 있겠지만, 그같은 지도교사들의 열의로 우리 지역 선수단이 항상 도 대회를 휩쓸었고 전국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냈다. 상장들이 푸짐하게 쏟아졌다. 학생들은 그것으로 상급학교 입학이 보장되었고, 지도교사들은 승진에의 거리가 좁혀졌다. 장학사도 그 축에 끼게 되어 있어, 나는 모처럼 상을 무더기로 탈 수 있는 행운을 맞게 되었다.

‘내가 무엇을 했다고!’ 알 수 없는 거역감이 포상 내신을 가로막았다. ‘이미 교장을 지낸 자가 그것은 어디다 쓰려고?’ 나는 새삼스럽게 상이란 무엇인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상이란 무엇인가? 사전은 ‘잘한 일을 칭찬하기 위하여 주는 표적’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렇다. 상은 주는 것, 주어지는 것이다. 어떤 개인이나 단체가 어떤 일에 열성을 다해 무엇인가 크게 기여했을 때, 그를 값지게 여기는 국가나 전문기관이나 상급자가 그들에게는 그같은 직업을 칭찬하는 표적으로 주는 것이다. 그 업적에 주어지는 것이다.

슈바이처와 사르트르의 노벨상에 얽힌 얘기들이 떠올려졌다. 52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지명된 슈바이처는 시상식에 참석하라는 초청을 받고 ‘산더미 같은 병원 일을 두고 훈장 나부랭이를 받으려고시간을 낼 수 있겠느냐’고 사양했다. 6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사르트르는 ‘상 따위에 구속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수상을 거절했다.

주어진 상에 대한 받는 쪽의 이같은 초연은 그들이 직무와 업적을 더욱 빛나게 하거니와 상이란 무엇인가를 여러모로 음미케 한다. 상은 적어도 받아야겠다는 사람들의 사냥감이 되어선 안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무엄하게도 이런 거창한 생각과 함께 ‘내가 무엇을 했다고!’ 하는 투정인지 자책인지 알 수 없는 압력에 밀려 끝내 포상 내신을 하지 못하고 말았다. 어찌 보면 천재일우의 수상 호기를 그렇듯 허망하게 놓치고 만 것이다. 그리하여 뒤늦게 교육청의 걱정을 듣게 된 것이다.

이제 내 직무 인생은 상장 하나 없는 초라한 끝맺음 앞에 섰다. 그런데도 희소가치로 치면 그런 으뜸이 어디 있겠느냐고 혼자서 웃곤한다. 그러면서도 또한 언젠가는 인사기록부 아닌 마음의 포상란에 한 줄쯤 적혀야 할 텐데 하는 욕망을 어쩌지 못하고 있다. 상이 쥐어지기는 진작 틀린 심보다. 그런 속기에 상을 쥐어 줄 자는 아무 데도 없을 터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