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무엇이고 마음은 무엇인가

                                                                                             金 泰 吉

 ‘나’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공연한 물음과 마주쳤을 때 우선 내 몸을 떠올린다. 그러나 ‘마음’이라는 말이 있고, 몸보다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니, 몸이 나의 전부는 아니다. 도대체 몸은 무엇이고 마음은 무엇인가.

몸과 마음은 하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둘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무엇을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며 무슨 뜻으로   그런 어려운 말을 하는 것일까.

“몸 가는 곳에 마음이 따라간다”고 하는가 하면 “마음 가는 곳에 몸이 따라간다”고도 한다. 똑같은 말은 아닐 것이다. 어느 말이 옳으냐고 따져서 묻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몸이 먼저 가고 마음이 뒤따를 경우도 있을 것이고, 마음이 앞서 가고 몸이 뛰따를 경우도 있을 것이다. 몸을 따라서 마음이 가는 것보다는 마음을 따라서 몸이 가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스쳐간다. 가장 불행한 것은 몸과 마음이 끝내 서로 다른 길을 헤맬 경우라는 생각도 스쳐간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본다. 도대체 몸과 마음이 각각 떨어져서 있을 수 있는 것일까. “마음에 없는 말을 했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마음을 떠나서 몸만으로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일까. 잠꼬대는 무의식중에 나오는 말이니 ‘마음에 없는 말’에 가까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잠꼬대로 인하여 본심을 들키고 곤욕을 치르었다는 바람둥이 이야기도 있으니,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속으로는 좋아하면서 겉으로는 싫다고 말하는 통속적 연극의 대사는 마음에 없는 말의 본보기로서 손색이 없다고 할 것인가. 그러나 그것도 아니다. 말이 마음을 감춘 것에 가까우니, 역시 마음이 뒤에 숨어서 말을 했을 뿐이다.

숨기는 마음도 마음이고 숨김을 당하는 마음도 마음이다. 마음의 복잡한 구조, 그 복잡함으로 인하여 갈등이 생기고 고민을 겪는다.

마음의 구조만이 복잡한 것이 아니라 몸의 구조도 복잡하다. 복잡한 마음 바탕에는 복잡한 몸이 있고, 복잡한 마음과 복잡한 몸이 인과(因果)의 상호관계를 엮으며 여러 가지 말을 하고 여러 가지 몸짓을 한다. 다만 우리는 그 복잡한 인과의 얽힘을 상세히 모르는 까닭에 몸의 길과 마음의 길이 다르다고도 하고, 마음에 없는 말을 지껄인다고도 한다.

마음은 늙지 않았는데 몸만은 늙어서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과연 몸만 늙고 마음은 늙지 않은 것일까. 몸의 늙음은 명백하게 드러나지만 마음의 늙음은 눈에 뜨이기 어려운 까닭에 착각을 일으킬 수도 있는 일이다. 몸의 늙음은 무거운 것을 들어보면 알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안아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의 늙음은 그토록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몸에도 아름다움이 있고 마음에도 아름다움이 있다. 몸의 아름다움과 마음의 아름다움 사이에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 것일까. 몸의 아름다움은 겉으로 쉽게 드러남으로 아무나 보기만 하면 곧 알 수 있으나, 마음의 아름다움은 속으로 숨기기도 함으로 눈이 밝은 사람이 아니면 알아보기 어렵다.

눈이 부실 정도로 몸이 아름다운 사람을 보면 마음도 그렇게 아름다울 것이라는 추측을 하며 조물주의 탁월한 솜씨에 감탄하고 때로는 감사도 느낀다. 그러나 몸의 아름다움과 마음의 아름다움이 반드시 정비례의 관계를 유지하며 동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아쉬움에 젖기도 한다. 몸이 뛰어나게 아름다우면 주위 사람들의 찬양과 선망의 대상이 되어 마음의 아름다움을 가꾸기에 게으름을 피우는 것일까. 몸의 아름다움은 유전(遺傳)에 좌우됨이 큰 데 비하여 마음의 아름다움은 수양에 좌우됨이 크다고 하여도 거짓말이 아닐 것이다.

몸과 만나기에 앞서서 마음부터 만나는 경우가 있다. 필자와 독자로서 만날 경우가 그것이고, 편지를 통하여 교분을 갖게 될 경우도 그것이다. 글이 반드시 사람의 마음을 여실히 밝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글을 읽고 그 필자의 인품을 짐작한다.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은 인품도 훌륭하리라는 선입견이 있어서 글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기도 한다. 글이 아름다우니 마음도 아름다우리라는 추측을 하고, 나아가서 그 사람의 외모까지 아름답게 상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글의 아름다움 뒤에 반드시 마음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 아니며, 글은 아름다워도 몸은 아름답지 않을 경우는 더욱 흔하다. 글과 마음과 몸, 이 세 가지 사이에도 필시 깊은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범상한 안목에는 그 깊은 관계가 보이지 않는다.

글은 아름다우나 마음은 별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우리는 일종의 배신감 비슷한 서운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 서운함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은 좋은 마음을 가질 책임이 있다고 말해도 그것이 전혀 억지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은 좋은 몸을 가질 책임이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럴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글에 반해서 벼르고 벼른 끝에 만난 사람의 외모가 너무 초라할 때 느끼는 실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몸과 마음의 유기적 통일로서의 ‘나’와 역시 몸과 마음의 유기적 통일로서의 ‘남’이 만난다. 그저 스쳐서 지나가는 얕은 만남도 있고 끈끈한 인연으로 맺어지는 깊은 만남도 있다. 깊은 만남이 있는 곳에 간혹 사랑의 물결이 일기도 한다. 어떤 사랑은 몸의 아름다움에 무게를 두고, 어떤 사랑은 마음의 아름다움에 무게를 둔다. 그러나 몸은 무엇이고 마음은 무엇이며 아름다움은 무엇인지 깊이 아는 바가 있는 것은 아니다. 모르면서도 사랑을 한다. 그래서 사랑을 맹목적이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