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그리고 정신

                                                                                              金 秉 圭

 숲 속으로 들어가면 그것은 이미 축복이다. 나무가 하늘을 덮고 사람이 그 속에 수용되면서 아늑한 마음이 된다. 그것이 놀라운 일이라 함을 절감한다. 자연의 포용력이 인간을 감동시킨다. 그것은 또한 인간이 바깥세계에 얼마나 시달렸는가를 일깨워 준다.

숲 속은 나날이 다르다. 어제 피어 있던 꽃이 오늘은 시들고, 새로운 꽃이 피어 있다. 한 종류의 꽃이 장소를 달리 하면서 한꺼번에 핀다. 다음에는 다른 종류의 꽃이 또 일제히 핀다. 따라서 꽃의 판도가 확연하다.

봄의 숲 속을 거닐면서 이런 아무렇지도 않는 것이 예사롭게 비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마치 처음으로 이를 깨달은 것같이 여겨졌다.

그리하여 나는 그것이 숲 속이 나날이 새로워지게 하는 것임을 알았다. 그것은 질서를 지킨다는 것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조작함이 없이 저절로 이어지는 것이 아름다웠다. 나는 아름다움의 어떤 차원을 발견한 것 같아 그지없이 기뻤다. 그 자연스러움이 인간의 정신을 매혹했다.

그런데 인간의 정신은 어떨까. 그것은 어떤 형태이건 갖가지의 압력 아래 살아간다. 현대의 제반 상황이 정신에게 압력으로 느껴지면서 인간이 살아가는 것이다. 이때 정신은 어떻게 하면서 그 본래의 면목을 유지하는 것일까. 먼저 근본원칙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때 저항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정신의 저항력이란 정신 본래의 면목인 단일성을 확보하기 위한 자기응결력(自己凝結力)으로 볼 수 있다. 그리하여 거기에는 분리하는 에너지가 있다.

그런데 어떤 것이든 압력을 압력이라고 하여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에서 자연과 같이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적인 사실인 것이다. 인간의 정신은 여기에서 태어날 수밖에는 없다. 그리고 압력이 있는 곳에만 저항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의의있는 무엇인 것이다.

이러한 관계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물 속에 떨어진 한 방울의 포도주를 상상해 보자. 그것은 거의 물을 물들이게도 않고 한가닥의 장미빛 연기 같은 것을 남기고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것이 물리적 사실이다. 그러나 그때 그처럼 사라지고 난 조금 뒤에 물로 돌아간 듯해 보인 그 그릇의 여기저기에서 짙은 빛깔의 순수한 포도주의 몇 방울이 생긴다고 가정하면 어떨까. 그럴 경우 영락없이 그것은 경이라 할 것이다.

한 번 혼합되긴 하면서도 이윽고 거기에서 분리되는 한 방울의 포도주는 그야말로 ‘정신’이라고 불려져야 할 것이라고 폴 발레리는 말한 일이 있다. 이처럼 정신이라고 불려지는 것이 ‘세계’ 안에서 연출하는 역할을 발레리는 이러한 비유로서 말했다. 이는 얼마나 아름다운 발상인가. 정신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다. 그것은 시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압력이 작용하는 상황 속에 섞이면서도 이윽고 자기응결하는 저항력으로 되살아나는 한 방울의 포도주가 곧 정신인 것이다. 그것은 포도주로서 순수하기 위하여 포도주 쪽에서 보면 바로 불순수한 물을 뚫고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며, 또한 물 밖에서가 아니고 물 그 자체 속에서 분리하여야 한다. 저항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발레리는 ‘가정’이란 말을 쓰고 있다. 포도주가 물에 녹는 것은 물리적 사실이지만 녹은 뒤에 몇 방울로 응결한다는 것은 물리적인 사실이 아니다. 그것이 ‘경이’인 것이다. 이 가정은 ‘신앙’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신이란 이런 뜻에서 일종의 ‘기적’이기도 할 것이다.

정신에 가한 압력은 궁극적으로는 정치에서 나오는 것이다. 정신은 어디까지나 단수로서 존속한다. 항상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신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그 복수화에 의한 평균화인 것이다. 비슷해짐에 따라 정신은 약체가 되어버린다.

평균화의 압력을 가하는 것은 전형적으로 정치다. 정치는 결코 정신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항상 정신에 의하여 지탱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정치는 숙명으로서 복수를, 당파를 전제로 하는 복수화를 촉진케 하는 선전이라는 마술을 동원한다. 정치의 대상은 개인 고유의 문제가 아니다. 최대한으로 평균화된 문제가 해결되면 정치는 성공한 것이다. 개인의 고유한 문제는 거기에서는 말살되거나 종속된다. 이것은 실제의 문제이다. 그러나 정신에게는 명백히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정신은 저항하고 갖가지의 의혹을 제출한다. 정치는 과연 인간의 진실한 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것일까. 다수성이나 복수성이란 구체적으로 볼 때 가장 추상적인 것이 아닐까. 정치란 거대한 허위는 아닐까 따위를 묻는 것이다.

정신은 다수결에 대하여 항상 회의적이다. 이 회의력이 분리의 원동력이 된다. 정치에게 다수결은 유일한 힘이다. 정치에게 당파는 필연이나 정신에겐 당파는 치명상이다.

자연은 어떨까. 자연엔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같은 종류의 샘물도 실은 모두 다르다. 다만 비슷할 따름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름답다. 단조로움이 없이 항상 새로움으로 인간에 다가선다.

그리고 거긴 억지로 하는 일은 없다. 그야말로 자연스럽다. 자연 속의 생물은 살아남을 수 있도록 온갖 힘을 다한다. 비록 보잘것 없는 것일지라도 그렇다. 그러니까 그지없이 아름답다.

인간의 정신은 무한한 존재이며 우주의 살아 있는 거울이다. 한 사람의 정신일지라도 전 세계의 의미를 유일한 방법으로 현실화하여 표현하는 소우주라 할 것이다. 자연을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은 자연처럼 침묵으로 이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