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코드를 찾아서

                                                                                                金 容 九

 콩코드라는 곳은 어제나 오늘이나 미국 오지의 한 촌이다. 그런데 여기가 미국 문화의 본적지요, 미국 문학의 요람이었다. 사상가 에머슨, 『주홍글씨』의 작가 호손, 숲 속의 철인 소로 등 명인들이 19세기 중엽 이 마을에서 이웃해 살며 활동했다. 유래가 드문 일이다.

그들 가운데서 H.D. 소로는 두 번째 책 『월덴  - 숲의 생활』(1854)로 유명해졌다. 이 책은 그가 콩코드 교외인 월덴 호반(湖畔)의 숲 속에서 두 해를 살며 적은 기록, 거기엔 자연 관찰, 사색, 시적 상상, 문명 비평, 독서 등이 담겨 있다. 특히 출간 당시부터 순정한 자연 관찰자로서 소로의 천분과 정열에 대해선 모두가 이론이 없었다.

지난 70년대 이후 환경에 대한 인식과 활동이 국제적으로 일어나면서 자연주의자 또 환경운동의 선구로서 소로의 성가는 높아간다. 콩코드와 월덴은 환경운동의 발상지 또 성소로서 국제적 주목을 받고 있다.

『월덴』에서 소로는 유유히 살기 위해 숲에 들어가 삶의 긴요한 사실만을 발견하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문명은 삶을 번쇄에 시달리게 한다며 무소유로 살고자 했다. ‘단순, 단순, 단순!’이 그의 구호다.

무엇보다 그는 아침을 예찬한다. “우리는 새벽에 대한 무한한 기대로 눈을 뜨고 깨어 있어야 한다. 하루 하루는 보다 이르고, 보다 성스럽고, 보다 빛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을 확신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절망이고 하강하는 삶의 방식이 된고 만다.” 어딘가 새벽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의 말투 같다.

기자는 오래 전부터 월덴의 분위기에 싸이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그 그리운 풍경을 찾아가 소로의 『일기선』를 뒤적이고 있다.

귀뚜라미 울음, 여울물 소리, 나무 사이로 스치는 바람 소리, 이 모든 것이 그에게 우주의 끊임없는 전진을 들려주어 마음을 가라앉게 하고 신생의 기쁨을 준다고 한다. 그리고 숲 속의 오두막에서 밖을 내다보면 소나무와 떡갈나무가 그 타고난 성격을 짓고 있으니, 풍경이 불멸의 아름다운 그림임을 다시 확인한다.

소로는 만물을 보고 자연이 다양을 사랑함을 깨닫는다고 기뻐한다. 그리고 그는 사실의 자연보다 무한히 더 완전한, 말하자면 이상적 또는 진정한 자연이 있음을 확신했다. 그 자연의 법칙대로 봄에는 사람도 푸르게 자라고, 가을에는 노랗게 무르익으라 한다. 자연은 매순간 최선을 다해 우리를 지켜준다고 그는 속삭인다. 이렇게 생명은 영원에 참여한다.

“나는 궁핍하지 않다. 나는 사과가 익어감을 냄새 맡을 수 있다. 시냇물은 깊다. 아, 나는 귀뚜라미를 밟아선 안 된다. 그의 노래엔 깊은 암시가 묻어 있으니 내 귀에 부드럽고 즐겁지 아니하냐. 아, 저 시내는 전보다 더 생각이 많은가 보다. 숲과 들과 자연의 겉모습에만 눈이 팔려선 너무 편협하다. 더 크고 더 현명한 이는 그 모든 것과 관계를 지어야 한다.”

소로는 자신을 자연철학자, 초월론자, 신비가라 말했다. 그것이 다인가. 현대의 어떤 비판 이론가는 소로를 가리켜 ‘시대를 초월한 포스트 모던 작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무튼 소로의 사상가 또 문인으로서의 마지막 힘은 그의 문학적 형상력에 있다 하겠다. 그렇다면 그의 정신에서 상상력의 비밀을 알아야 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지성은 심장과 온몸의 도움이 아니고는 사상을 표현할 힘이 부친다.” 다시 말해 작가는 심장으로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소로가 숲 생활을 한지 한 돌이 지나서였다. 아침에 그가 마을로 나가는 길에 경찰에 잡혀 수감됐다. 주민세를 다섯 해나 내지 않았다는 죄목. 노예제도에 대한 반대 표시로 그는 주민세를 내지 않았다. 이런 얘기가 있다. 에머슨이 유치장으로 소로를 찾아가 “자네 왜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었다. 이에 소로는 “형님은 왜 여기 들어오지 않았소?”라고 댓구했다 한다. 어떤 부인이 밀린 세금을 대납해 소로는 다음 날 아침에 풀려났다. 이 경험을 적은 것이 소로의 『시민 불복종』(1849)이란 글이다.

국경을 넘어서 소로 사상이 전해지긴 ‘시민 불복종론’이 제일 먼저였다.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는 소로의 시민 불복종 사상에 감복했다. 그가 얼마나 소로에 심취했으면 작품 『부활』(1899)에서 작중인물의 입으로 소로와 그의 사상을 말하게 했을까. 또 인도 청년 간디도 20세기 초 남아프리카에서 인도계 주민의 권리운동을 일으킬 때 소로의 시민 불복종론을 읽고 자신의 운동을 무저항 운동이라 명명했다. 지난 60년대에 미국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2세도 소로의 애독자였음은 잘 알려진 바다.

소로는 하나밖에 없는 지구에서 일고 있는 환경·생명운동의 원천이었다.

(미국 콩코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