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  발

                                                                                             반 숙 자

 파간의 하늘에 석양이 물든다. 천년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서 쟌시타 동굴에 앉아본다. 한 사람 앉으면 알맞은 공간에서 성불하기 전에는 나가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참선한 옛 선사들, 그들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나는 지금 미얀마의 성지를 밟고 있다.

동굴은 반지하의 건물로 축조되었고, 내부는 어둡고 긴 복도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깡마른 여인이 문 앞에서 건네준 촛불로 비춰 본 벽과 천장, 그리고 바닥까지 그려진 프레스코 벽화를 본다. 깨달음의 긴 고행에서 잠시 쉬었던 흔적일까. 그림도 꽃이나 불상 탑이다. 한기가 든다. 모든 욕망을 접어둔 채 탁발로 연명하여 오로지 낳고 죽음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꿈꾸었던 사람들, 지금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새벽 거리에는 승려들이 한 줄로 서서 탁발을 나가는 모습을 많이 본다. 어깨가 다 드러나는 자주색 승복을 두르고 손에는 바리때가 들려 있다. 신기하게 바라보던 나는 걱정이 되었다. 시골에는 아직도 촛불을 켜고 사는 가난한 나라에서 떼지어 다니는 스님들의 바리때를 누가 채워줄지,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미얀마 사람들은 없으면 없는 대로 가난도 업이요, 고생도 업이니 이승은 접어두고 내생에나 잘 태어나기를 바라서 복짓기를 잘한다고 한다. 끼니 때가 되면 식구들의 몫에서 조금씩 덜어 문 앞에 내어 놓는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음식을 버리지 않고 짐슴이나 새들을 위해 나무 밑에 펴 놓는다. 음식 쓰레기로 골치를 앓는 나라에서 간 나는 비록 가난할지라도 희망이 있는 나라구나 생각했다.

탁발하면 선명한 기억이 있다. 6·25 전쟁 후, 가난했던 시절 우리 나라에도 탁발 스님이 다녔다. 대문 앞에서 목탁 두드리는 소리가 나면 부엌에서 일하시던 어머니가 쌀을 퍼서 들고 독경이 끝날  때를 기다려 스님이 메고 있는 회색 바랑에 부어 주셨다. 어떤 때는 보시할 곡식이 없으면 샘에서 냉수를 길어 하얀 사기대접에 공손히 바치고 죄송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스님은 냉수를 기꺼이 드시고 목탁을 다시 한 번 두드렸다. 그러나 동네 고사터에 스님이 나타나면 동냥중이 온다고 아이들이 골려대며 따라다녔다. 어떤 가게집에서는 스님이 들어서니까 재수가 없다고 “예수 믿어요” 한 마디로 내쫓았다. 어린 눈에 스님은 배알도 없나 내가 창피스러웠다.

가톨릭 신자인 내게 미얀마 순례를 권하시던 큰스님은 물질문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불교가 끼친 정신문화를 눈여겨 보라 하셨다. 그 말씀의 뜻을 조금씩 알아듣고 있다. 가난해도 남의 것을 탐하지 않는 마음, 살아 있는 일체 중생의 목숨을 귀하게 알아 살생하지 않는 마음, 사랑을 입술로 노래하기보다 내 배고픔을 참으며 밥을 덜어 주는 마음, 그리고 물질보다 정신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그래서인지 곳곳에서 편안하고 밝은 얼굴을 많이 본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가 양곤에서 만난 한국 스님 때문이라면 엉뚱하다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미얀마의 수도 양곤에는 위빠사나의 산실인 마하시 수도원이 있다. 승려가 1천5백 명에 불교대학이 있는 대 수도원이다. 우리가 그곳을 방문한 시각이 오전 10시였는데 큰 식당에는 비구와 비구니 스님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아침 겸 점심 공양을 들고 있었다. 바리때에 탁발해 온 밥을 식탁 밑에 놓고 손으로 주물러 먹는 인도 스님이 있는가 하면, 어색하게 젓가락질을 하는 눈이 파란 스님들도 있다. 식탁에는 야채를 중심으로 서너 가지의 찬과 국이 있고, 닭고기가 올려진 식탁도 있다. 나라마다 수행의 방법은 다르지만 살생을 금하는 불교나라에서 육식을 하는 것이 이상스럽다. 혹시 환자 스님일지 모른다.

안내자의 인솔로 우리 일행은 신을 벗은 채 그 넓은 내부를 둘러보는 중에 회색빛 승복을 입은 한국 스님을 만났다. 동행한 스님들이 반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미얀마 승복을 입은 한국 스님이 걸어오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안색이며 눈빛과 목소리까지 보통 스님이 아닌 것 같았다. 스님은 반가운 빛도 없이 담담히 맞아 주었는데 어디서들 왔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맨발로 엉거주춤 서 있는 것을 보았는지 신을 신어도 된다고 했다. 마지막 말은 돈을 조금 쓰고 가라, 많이 쓰고 가도 흉이 된다 했다. 세 마디를 마친 스님은 그럼… 하고 돌아섰다. 천천히 가던 길을 걸어갔다. 그 순간 자줏빛 깡동한 승려복 밑으로 하얀 종아리가 드러났고, 맨어깨에 매달린 바리때가 흔들렸다.

문득 탁발가는 스님 발 앞에 엎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어디서 왔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리고 스님은 어디로 가느냐고 묻고 싶었다. 부모도 버리고 가진 것 다 버리고 이국의 거리에서 무엇을 탁발하느냐고도 묻고 싶었다.

탁발은 자기를 버리는 연습, 이름을 버리고 지위를 버리고 오똑한 아상(我像)과 분별심을 지우는 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자의식이 크면 클수록 상처를 많이 받는다고 하는데 나도 바리때 하나 얻어 탁발을 나가보면 어떨까. 쥐뿔 같은 자존심을 버리고 낮추고 낮추어 겸손을 얻어 감사하고 온화하고 사랑하고 동정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담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