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과 拘置所

                                                                                         李 應 百

 제헌절(制憲節) 날이다. 집에서 점심까지 먹고 연구소에 나갈 일이 있어 당산행 지하철을 탔다. 오전에 잠깐 눈을 붙여 피로를 푸노라 했는데, 언제나의 버릇처럼 지하철 칸에서 무엇인가 교정(校正)을 보고 있었다. 귓결에 영등포구청 앞이라 하기에 다음이 당산(堂山)역 종점일 것이라 생각하고 내릴 채비를 차렸다. 그런데 차는 목적지와는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닌가. 그럴 리가 없으리라고 바깥을 내다봤더니 ‘홍대 입구·합정’이란 방향 표지(標識)가 보이는 것이다. 분명히 당산행을 탔는데 어찌된 셈인가. 어떻든 차는 계속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내려서 방향을 바꿔 탈 수밖에 없었다. 아마 당산역 종점에서 전원이 내릴 때도 아주 깊이 잠든 탓에, 다음 손님이 갈아타고도 한참 기다렸다 떠나는 그 사이를 전연 감지(感知)하지 못하다가 되짚어 올 때, 영등포구청이라는 안내 방송 소리가 귀에 들어왔던 모양이다.

나보다 젊은층도 4호선 사당에서 내려 바꿔 타야 할 것을 과천(果川) 종점까지 간 일이 있었고, 어떤 이는 서울을 벗어나 인천까지 간 일도 있다고 들었다. 나도 밤 늦은 시간에 내릴 역을 지나쳐 많이 간 바람에 회정(回程)할 때 지하철이 끊어져, 먼 데 방향으로 호객(呼客)하는 택시를 겨우 곁들여 타고 집으로 돌아온 일이 있기는 해도, 오늘과 같은 일은 처음이다. 우산을 놓은 채 엉겁결에 내릴 때 친절히 일깨워 주는 이도 있는데, 종점에서 모두 내릴 때 그대로 좌초(坐礁)돼 있는 손을 그대로 버려두는 무관심보다 스스로를 탓하는 반구저기(反求諸己)의 쑥스러움에 혼자서 무연(憮然)함에 잠겼다.

그때 갑자기 젊은이 셋이 고함(高喊)을 지르면서 찻간(車間)을 활극 무대로 삼아 예의 쌍소리를 연발하면서 종횡무진(縱橫無盡) 날뛰니, 위협을 느낀 승객들이 슬금슬금 피하는 대열의 권에 따라 나도 다음 칸으로 자리를 옮겼다. 내가 탔던 칸에 그 젊은이 하나가 버젓이 앉아, 지하철에서 금지되어 있는 담배를 득의연(得意然)하게 풀썩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난투를 가장(假裝)함으로써 삽시간에 텅 비워지는 공간에서 왕자연(王子然)하는 쾌감을 느끼는 이상심리(異常心理)의 소유자들인가 보다. 아마도 다른 둘은 그 옆 칸을 독점하고 쾌재(快哉)를 만끽하고 있으리라. 철도에는 공안원(公安員)이 배치돼 있어 이러한 일에 대비하고 있는데, 무방비 상태의 지하철을 그들은 상습 무대로 개척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렸을 때 경찰이라도 있으면 그런 사실을 고(告)할 수도 있으련만 눈에 뜨이지 않고, 벌써 기다리던 손님들이 그 칸에 들이탔으니 필시 곧 또 그런 활극이 되풀이될 게 아닌가 하고 따분함을 느끼면서, 바로 전날 인천 구치소(拘置所)에서 본 일이 영상(映像)처럼 머리 속을 스쳐갔다.

인천 구치소에는 안동(安東) 구치소에서 재소자들에게 한자와 명심보감(明心寶鑑) 등 한문을 강의함으로써 인성(人性)이 바뀌어, 외부 인사들의 교양 강좌를 듣는 태도가 너무 진지해 모두를 감탄하게 한 실적을 올린 보안과장이 올 봄에 고향인 인천으로 전근을 하여 한자(漢字)와 명심보감 강의를 실시한 지 7개월째 된다고 했다. 평소 한자, 한문 교육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우리 일행 세 사람에게 그 실상을 구체적으로 볼 기회를 마련했던 것이다.

일행은 소장실(所長室)에서 차를 마시면서 6개월에서 1년까지 판결을 기다리는 재소자는 2천2백여 명인데, 입소 후 일주일간 소내 생활 규칙 등 준수(遵守)할 사항을 일러주고, 중간 중간 운동을 시키는 외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자, 한문 공부만을 시킨다는 것이다.

양쪽에 방 크기에 따라 10명 안팎씩에서 20명까지 재소자가 수용된 방이 죽 늘어 서 있는 복도를 걸어간다. 전번에 보안과장이 손수 찾아와 명심보감을 30분 단위로 강의를 해 달라는 부탁에 따라, 내가 직접 녹음한 테이프를 방송을 통해 각 방에서 일제히 들으면서 다른 데 눈길을 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이 전원 몰입(沒入)하여 삼매(三昧)의 경지에 들어 있었다. 전직원 한자 교육 요원화 분위기 속에 자고 먹고는 하는 일이 한자·한문을 읽고 쓰고 하는 일이니, 이것은 무료 전료(全寮) 제도의 이상적인 학교라 하겠다.

한자를 배운 것을 편지에 섞어 쓰면 집에서는 왜 대필(代筆)을 시켰느냐 하다가 배워서 직접 썼다는 것을 알고는 놀란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사회에 나간 뒤에는 계속 감사의 편지를 보내 온다고 한다.

구치소뿐 아니라 전국의 교도소(矯導所)도 이렇게 스스로 보람을 느끼면서 인성(人性)이 개조돼 가는 교육 기능을 제도화할 것이라고 일행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주장을 하니, 법무 부처에서도 그 방향을 연구중이라고 했다.

재소 기간 동안 자칫 여러 교묘한 수법을 익혀 재범의 소지(素地)를 다져지게 했던 종래의 감시 일변도에서, 180도 방향을 바꾸어 漢字를 통한 인격 개조는, 바로 윤리성과 철학성을 통해 인격이 조성되고 성실한 지혜가 열리는 漢文 특유의 장점으로 가능한 것이다. 이런 것은 우리의 아니 세계의 행형(行刑) 방법에 크게 영향을 미칠 만한 획기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교육부장관은 정식 학교보다는 조용하고 진지한 이 학습 태도의 밑바탕이 바로 漢字·漢文을 통해 조성된다는 괄목(刮目)할 사실을 현지 답사로 실감토록 할 것이다.

아까의 지하철 난동자들보다 더 악한 죄질로 희망을 포기한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고 자포자기(自暴自棄)에 빠져 있을 수도 있는 그들이, 이렇게 순수하고 얌전하게 된 기적(奇蹟)을 어찌 눈 감고 모른 채 할 수 있을까 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