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 권리와 또 하나의 권리

                                                                                        윤 모 촌

 약봉지를 사들고 택시를 타자 기사가 말하기를, 볼 일이 있으면 자녀를 시키지 노인이 왜 다니느냐고 하였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내 모습이 꽤 노쇠(老衰)해 보였나 보다 하고, 염려해 주는 것으로 들려 내쪽에서도 말을 건네었다. 아무리 늙어도 나다닐 일이 생기니 앉아 있을 수가 없고, 자식들이 있지만 저마다 사는 길이 바쁘니 별 수가 있느냐 하였다. 그런데 내가 들은 기사의 말은, 노인들이 나들이를 하다가 흔히 넘어지기를 잘 해서 걱정스럽다는 것으로 들었던 것인데, 사실은 그것이 아니었다. 한 노인을 태웠는데 목적지를 대지 않아 애를 먹었다는 얘기이다. 무슨 소리냐고 되묻자, 죽을 데로 데려가 달라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이제는 그런 일이 있을 법도 하겠지 하고, 기사의 말을 되새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지만, 사람이 늙어서 대접받지 못하는 세태가 새삼스럽게 와 닿는 까닭이었다. 속설(俗說)의 고려장을 떠올리면서, 사람들이 오래 살 권리와 함께 죽을 권리도 내세우게 돼가는구나 하였는데, 사람의 권리를 요약하면 의욕을 가지고 건강하게 오래 살 권리이다. 이런 까닭에 여러 가지의 물의(物議) 속에서도 건강식품이라는 것이 나돌고, 병원은 어딜 가나 북새통이다. 이래서 수명이 길어지는 문제가 오늘에 와선 개인의 걱정거리를 넘어선 문제임을 실감케 한다. 그런데도 평균 수명이 늘어나서 70세가 넘는다 하고 있고, 이것을 더 늘리는 연구를 한다는 말이 들려 가슴이 답답해진다.

현대 의약이 인간의 행복권의 하나인 수명을 늘려가고는 있지만, 이에 따른 고민거리와는 상관이 없다. 그래서 답답해지는 것인데, 쓸모없게 오래 살게만 할 것이 아니라 편하게 가기를 원하는 사람에겐 그런 방안도 마련됐으면 해 본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목숨을 포기하는 것은 신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라 하지 않는가. 이래서 관심거리인데, 내가 가령 그 누구의 손길도 감당하기가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면, 그래서 고통 속에 빠지게 된다면, 그런 삶은 사는 것으로 볼 수가 없다.

어쨌거나 죽음이 무엇이고 사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앞서, 사람들은 오래 살기만을 바라서 체통도 없다. 세종(世宗) 때 정승을 지낸 민(閔) 아무개는 나이 90에 백(百)세 장수(長壽)를 하라는 인사를 받자, 10년밖에는 살지 말라느냐며 성을 냈다. 축수(祝壽)를 하던 사람이 기지(機智)를 발휘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거기에 백세를 더 누리라는 뜻이라 했더니 그제야 노여움을 풀었다고 한다. 당시의 90세는 매우 희귀한 장수인데, 오늘에 와서도 나부터가 산송장이나 다름이 없이 돼가도 오래 살기만을 바란다. 그래서 인구가 늘어나고 수명이 길어지는 문제와 연결이 되어 구순할 날이 없다. 육지나 바다나 하늘 할것없이 지구가 몸살이라며 법석인데, 이런 일들이 풀기 어려운 매듭으로 고리지으면서 이어져 나간다.

오래 살기만을 바라고 적당히 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선 누구도 쉽게 말할 수가 없다. 방송을 들으니 존속을 해치는 지식이 해마다 늘고, 제주도엔 육지에서 내다 버려지는 늙은이 수가 매년 늘어간다 한다. 그래서 스스로가 모질게 세상을 뜨는 자가 있지만, 이것을 정당하다고는 하지 않는다. 여하간 삶을 포기하는 것이라면 거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사람이 사는 이유는 첫째 의욕이 있어야 한다. 그 의욕은 살맛이 있을 때라야 가능한데, 문제가 되는 것은 충동적으로 이성(理性)의 자제력을 잃는 경우라 하겠다. 어쨌건 의약의 발달이 의욕을 충족시키고는 있으나, 어찌 보면 이것은 자연 질서의 법칙에서 벗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죽음을 경험해 보지 않아서 모르는 일이지만, 종교의 해석대로라면 사후(死後) 세계에 도원경(桃園境)이 있다. 그런 세계가 보장되고 그것을 검증할 수가 있다면 문제는 한결 쉽게 풀릴 성싶다. 이런 염원이었을 것이지만 시인이 죽음에 대해 쓴 시 구절을 볼 수 있다.

 

‘…나는 나는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

 …적어도 천 년 동안은

내겐 이제 휴양이 필요한 것을’

 

하고 ‘자살자의 노래’에서 릴케는 읊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친구끼리의 자리에서 죽음에 대한 화제는 올리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이즈막에 와선 서로 자연스럽게 입에 올린다. 저녁에 자리에 누운 채 아침까지 자는 듯이… 하고 말들을 해보는 것이지만, 그것이 마음대로 돼야 말이지 하고 자탄 섞인 웃음으로 웃어 넘긴다.

나는 지금 택시를 타고 했다는 노인의 말 ― 죽을 데로 데려가 달라 ─ 이 귓전에서 떠나질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