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쩍은 소리

                                                                                     朴 演 求

 올해는 어쩐 일로 초복도 되기 전에 찜통 더위가 연일 계속 되어 시달림을 받게 한다. 소나기라도 내릴 셈인지, 아침부터 더워서 일에 대한 의욕을 못 갖게 하여 심기가 불편한데, 지하철 안은 에어컨의 작동을 잘못한 것인지 냉풍은커녕 때아닌 열풍이 사람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 같다.

나는 비교적 더위를 잘 견디는 사람임에도, 의자 아래 히터의 열풍을 감내하기가 어려웠다. 서서 갈 요량으로 일어섰더니, 중년 부인 한 사람이 얼른 그 자리에 앉아버린다. 다음 정거장에 도착해서도 내가 내리지를 않자, ‘노인’이 양보한 자리가 미안해서인지 그녀는 일어서려고 하면서 다시 앉기를 권한다. 상황이 그쯤 되고 보니 사실대로 말을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얼굴에 잔잔한 미소마저 지으며 자세를 조금도 흐트리지 않는다. 그녀의 콧등에는 이윽고 땀방울이 송알송알 맺혀 있고, 양쪽 볼은 상기가 된 듯 발그레하다. 더 이상 그녀를 보고 있을 수가 없기도 하였지만, 열차가 환승역에 도착한 것이 다행이란 생각만 든다.

나는 ‘역무 지원’이라는 표지를 가슴에 달고 있는 노인에게 말했다. 방금 내린 열차 안이 사뭇 찜통인데, 에어컨 장치를 잘못 조작해서 그런 것 같으니 역무실에 얘기를 좀 해줄 수 없겠느냐고……. 그런데 그 ‘역무 지원’씨의 대답은, 시민의 한 사람인 나를 ‘분노’하게 만든다.

“이상하다. 방금 전의 열차에서 내린 어떤 손님도 똑같은 얘기를 하고 갔는데…….”

그렇다면 에어컨 조작을 잘못한 것이 아니라, 고의로 그렇게 한 것이 된다.

지하철 노조가 ‘임투’를 벌이고 있는 기간이어서, 승객을 쫓는 수단으로 그리한 것이란 심증이 간다. 다른 경우도 그렇지만, 시민을 볼모로 잡고 ‘투쟁’을 한다는 건 생각해 볼 문제다.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그 문제로 열을 올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지하철을 갈아 타고 가면서도 사무실에 가서도 내내 뇌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그 ‘중년 부인’이다. 만일 그때 내 말을 듣고 그녀가 혼잣말로 “마음씨 곱지 않은 노인 같으니라고. 화덕처럼 뜨거운 자리를 자기 대신 나보고 앉아서 가라고, 턱도 없다!” 하고 일어나 버렸더라면 참 무안하고 황당했을 것 같다.

그 다음 승객, 또 그 다음 승객이 고생했을 것을 자기 혼자 감내하며, 고행하는 수도자인 양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

누군가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지하철 관계자의 행위에 대해서는 나와 동감을 표하면서도 그 중년 부인에 대해서는 별로 의미를 부여하려 하지 않는다. 장거리를 가는 일이면 모르되, 곧 있으면 내릴 것인데 아무개처럼 경박한 행동을 하지 않은 것뿐이란다.

그래도 나는 그녀에 대한 좋은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 마치 나에게 어떤 계시라도 주려고 나타난 범상치 않은 존재로만 여겨진다는 말이다. 연옥이란 말을 떠올려보기도 한다. 아다시피 연옥이란 세상에서 지은 죄로 천국에 바로 들지 못할 때, 불에 의해서 그 죄를 정화하는 상태, 또는 그 장소를 말한다. 말하자면 천국과 지옥 사이에 존재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녀가 내 대신 연옥에서 고행을 하고 있었지 않나 싶다.

나의 이런 인식을 또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한다면, 이렇게 핀잔을 들을지도 모른다. “찜통 더위에 사고(思考)의 밸런스가 조절이 안 된 모양인데, 어디서나 쉽게 발견되는 한국 여인의 모습을 가지고 사고가 비약된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그가 지적한 대로 더위 탓으로 사고가 비약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사고의 비약은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불쾌지수가 높아지기 쉬운 계절에, 사고를 비약해서라도 아름다운 인식을 갖는 것이 납량을 위해서도 좋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