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선 위반

                                                                                             최 병 호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고 있지만 신작로라는 말이 있다. 자동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게 새로 닦은 길을 이르는 말이다. 큰 길이라고도 했다. 도로망을 다시 짜고 넓히고 포장하는 일이 나라의 큰 일거리가 된 현실에서 보면 신작로는 큰 길이 아니다. 오히려 좁고 작은 골목길에 불과하다. 도로를 나타내는 말들도 어느 새 고속도로, 고속화도로, 2차선, 4차선, 8차선 등등으로 바뀌었다. 그 도로망을 가득 메운 자동차의 행렬, 끊임없이 달려오고 내닫는다. 그 힘을 과연 무엇이라 할까. 그 정경을 어떻다고 표현해야 할까. 더구나 밤의 그 환상적인 빛의 향연에 있어서랴.

나도 이따금 그 축에 낀 한 매듭이다. 운전면허증이 벌써 ‘녹색면허증’으로 바뀌는 관록을 쌓았지만, 즐겁고 신나는 일만 줄곧 있었던 건 아니다. 면허증 취득 당시는 지켜야 할 관계 규정들을 제법 안 것도 같았는데, 날이 갈수록 이게 희미해져서 본의 아니게 범칙이 불어나게 되었다. 그때마다 제 잘못은 생각지도 않고 턱없이 머쓱해 하고 당황해 하고, 화를 삭히지 못해 절절 매곤 했다. 주정차 위반, 신호 위반, 속도 위반, 추월 위반 등등 참으로 눈 깜박할 사이에 어처구니없는 범법자가 되곤 했다.

출근길에 겪은 일이다. 책방 앞에 마침 빈자리가 보여 그곳에 차를 세웠다. 책 한 권을 사고 나오려는데 뜻밖에 커피가 나왔다. 사장과 함께 잠시 그 향을 즐기며 환담을 나누었다. 그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서둘러 차에 올랐을 땐 낯선 딱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춘사(椿事)가 있나, 무슨 못할 짓이라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무안하고 창피했다. 소중한 어떤 물건이라도 잃은 것처럼 가슴이 쾅 했다.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 나왔다.

개운찮은 심정이었다. 묘한 유적의식(流謫意識) 같은 끈적거림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었다. 시청으로 직행했다. 담당 부서에 도착했을 때 아는 분이 와서 “어쩐 일이냐?”고 반가이 맞아주었다. 아니 이런 낭패가 있나. 어쩌자고 하필이면 아는 이가 거기 과장인가.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 되었다. 남의 속도 모르고 과장은 친절히 차까지 내왔다. 나는 결국 창피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곱씹으며 딱지를 내놓지 않을 수 없었다. 과장은 재빨리 직원을 불러 내가 할 일을 모조리 대행케 했다. 그리고 나보다 몇 갑절 더 미안하다는 말을 되뇌었다. 생각보다 쉽게 마음이 풀렸다. 후련했다. 차와 연관된 나의 범칙은 말하자면 이렇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한번은 환자를 병원으로 모신 일이 있었다. 병원 맞은편 교회의 축대를 끼고 도는 인도에 차를 올려놓았다. 그 길은 사람들의 내왕이 항상 뜸한 편이어서다. 그러나 진료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사정은 엉뚱했다. 문제의 딱지가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환자가 눈치챌까봐 재빨리 감추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조심한답시고 인도에 올려놓은 차에 철퇴를 내리고 길가에 그냥 세워둔 세 대나 되는 차엔 손자국 하나 내리지 않는 그야말로 특혜가 주어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한 마디 안 할 수가 없었다. 시청으로 달려 갈 수밖에. 그러나 담당 부서엔 달랑 한 사람이 방을 지키고 있었다. 전화받기에 바쁜 그는 담당자가 돌아오면 그분에게 말씀하시라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답답한 시간이 무겁게 이어졌다. 돌아온 단속자는 무서리가 내리는 표정이었다. 나는 딱지의 부당성을, 아니 그 불공정성을 얘기했다. 그는 왼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자기가 그곳에 갔을 땐 불법주차 차량이라곤 인도 위에 하나밖에 없었다는 강변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헛것을 보고 와 노닥거리는 것이냐고 반문하고, 치부해 온 차량번호들을 들이댔다. 그는 그게 사실이라 해도 자기가 확인하고 딱지를 떼지 않는 한 그것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지지 않고 나도 내가 돈 것이 아닌 한 당신의 말은 거짓말이나 마찬가지라고 그 불공정 현장을 거듭 부각시켰다. 그는 불쑥 ‘이의 신청서’ 용지를 한 장 내밀었다. 그리곤 화장실에라도 가는 사람처럼 가볍게 사라졌다.

한 열흘 지났을까. 시청으로부터 소식이 왔다. 거두절미하고 무슨 법, 무슨 조 위반이라는 것이다. 후련찮은 기분이었다. 충직한 로봇 같은 단속자의 표상이 떠올랐다. 넘을 수 없는 차가운 벽을 실감치 않을 수 없었다. 하루 운수도 횡수가 제일이라던가.

법과 질서는 꼭 지키고 살아야 한다는 다짐을 했다. 교통질서를 위반해서 창피당하는 일은 결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일기에까지 적었다. 그 당위성이야 말해 무엇하랴. 아들 또래밖에 안 되는 시 직원이나 경찰관에게 법규 위반 여부를 두고 시비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벌써 ‘체면 문화권’의 한 사람으로서 그야말로 체면을 망치는 일이 아닌가. 그런 다짐에도 불구하고 내내 뜻대로는 되지 않았다.

고속도로를 바른편으로 도는 어느 길목에서다. 불쑥 단속 경찰관을 만났다. 지휘막대가 갓길에 머물 것을 줄곧 명령했다. 재빨리 지시대로 브레이크를 밟을 수밖에. 명령이 이행되는 바로 그 지점엔 또 한 사람의 경찰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후미진 곳에 그물을 친 단속자치곤 뜻밖에 웃는 얼굴이었다. 부드러운 말씨로 속도 위반이라고 했다. 왜 안전벨트는 하지 않았느냐는 지적도 했다. “속도 위반이요? 앞차만 보고 밟았는데… 안전벨트는 견비통 땜에…….” 어설픈 나의 임기응변이었다. 경찰관은 나로 하여금 안전벨트를 하게 하고 어깨를 싸고 내리는 윗줄을 손수 뽑아서 뒷등으로 넘겨주었다. 그게 봐줄 수 있는 최소한의 자세라고 했다. 그리고 가장 낮은 얼마짜린가 하나를 땐다고 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내가 좀 바쁜 입장인데, 수고한 김에 내 대신 좀 내줄 수 없겠느냐고 웃으면서 얼른 범칙금을 내밀었다. 그는 흔쾌히 받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주행선으 끼었다.

“그 방법 참 좋네요.”

동행한 분의 느닷없는 코멘트였다. 그런 돈이란 주기도 받기도 거북한 것인데 대납이란 구실로 자연스럽게 매듭이 풀어졌다는 지적이다.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었는데 듣고 보니 제법 활용 가치가 있는 간지(奸智) 같았다. 웃음이 나왔다. 부정의 공모에도 격이 있다 할 것인가.

타 지역 넘버의 차로 두어 달 출퇴근을 한 일이 있었다. 이상하게도 검문이 잦았다. 어느 날 왼쪽으로 길이 붙은 삼거리에서 빨간 신호를 받았다. 뒤따라온 대형 트럭의 기사가 좌행 신호를 깜박이며 갓길로 비켜달라고 손짓을 했다. 따라 줄 수밖에. 그 자가 떠난 다음 파란 신호에 따라 나도 출발했다. 가까이에 있는 검문소 경찰관이 불쑥 차를 세웠다. 출발선 위반이라 했다.

출발선 위반이라니! 직진과 좌행이 동시가 아니라 좌행이 먼저, 그리고 직진이 이어지는 신호 체계에서 앞에 있는 직진 차가 비켜 주지 않으면 뒤 차는 중앙선을 넘어야 좌행이 되는데 그래도 괜찮으냐고 물었다. 나는 강경하게 그 적발 내용을 시인할 수 없다고 버티었다. 경찰관은 오만상을 짓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는 가까이 오는 다른 경찰관에게 재빨리 나를 인계하고 사라졌다. 내 불만을 한참 경청하던 새 경찰관은 차 앞으로 가서 넘버를 확인하더니 갈길도 먼데 어서 가시라고 풀어 주었다. 이 어찌된 단속인가? 거기도 지역 이기주의가 그렇듯 만연된 것인가.

나는 아직도 출발선 위반이란 교통상의 범칙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생각하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출발선 위반을 자행하며 살고 있는가. 터무니없는 욕심에 쫓겨서, 어이없는 무지 때문에, 무심한 실수 탓으로 출발을 잘못해서 두고두고 속 썩이는 일이 어디 한두 가지던가.

출발선 위반! 그 희한한 적발에 잠시 발끈했었지만 따지고 보면 내 일련의 그 범칙들도 바로 나의 정신적 자세의 출발선 위반에서 야기된 불명예가 아니던가. 검문소 그 경찰관은 내게 뜻밖의 귀한 경구 하나를 안겨 준 셈이다.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야 할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