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찾아서

                                                                                            한 미 령

 아름다운 음향이든 소음이든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살아 있음을 확인이라도 하듯이 스스로 소리를 찾아나서기도 한다. 그렇게 소리를 찾기 위해 눈뜨자마자 하는 일이 전화기의 버튼을 누르는 일이다. 나만이 알고 있는 숫자를 호출하면 갈매기의 구애를 닮은 신호음이 몇 번인가 울리고, 이어 남편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하고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처지이지만, 바다 저편의 남편의 목소리에 감사하곤 한다. 보고 싶을  때 묻어둔 불씨처럼 서로의 마음을 꺼내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여간 고맙지가 않다.

요즘의 나의 하루 일과는 전화기의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 시작해서 마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아침에 남편과의 첫 통화가 끝나면 리서치 회사로 출근하여 온종일 수화기를 잡고 일을 한다. 그렇게 일과를 마치고 귀가하여 다시 남편에게 전화로 안부를 전하고 잠자리에 든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참으로 무수한 소리들을 만난다.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는 물론이요, 듣지 않고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음향까지도 소리의 범주에 넣을 수가 있다.

구름이 내는 천둥 소리, 기류가 뒤엉켜서 내는 바람 소리처럼 요란한 소리가 있는가 하면, 종 소리나 각종 악기의 연주 소리도 있다. 계절 따라 왔다가 계절과 함께 사라지는 온갖 자연의 소리 등…….

그러나 그 소리들은 감각을 스쳐가는 소리일 뿐, 감정이나 의사를 주고받을 수는 없다. 그런 것으로 본다면 사람의 음성만큼 정감을 느낄 수 있는 소리는 없다.

어려서 내 별명은 ‘끄떡이’였다. 상대방의 물음에 대해 답변 대신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알아들었다는 표시를 한데서 얻어진 별명이었다.

타고난 천성인지 잔병치레로 몸이 괴로워서 그랬는지 한 번 입을 열려면 꽤 뜸을 들여야 했다. 그러다 보니 말수가 적어지고 쓰지 않으면 퇴화가 되듯이 말하는 기능을 잃어갔다. 그런 나를 보고 조용한 사람, 또는 얌전한 여자라고 평가를 하지만, 정작 나는 벙어리 매미처럼 여간 답답한 게 아니다.

그래 대리 만족으로 수다스러운 사람을 주로 사귄다. ‘수다’라는 말만 들어도 인간미가 넘쳐 보여 ‘수다 예찬’이라는 수필을 좋게 읽었다.

이즈음 내가 여론조사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된 것도 말하자면 달변에 대한 향수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비록 전화상으로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말을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역사적인 웅변가 데모스테네스는 본래부터 말을 잘한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그는 말더듬이로 늘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았는데, 그 오기로 말하는 연습을 익힌 것이 세계적인 웅변가가 되었다는 것을 보면, 나 자신도 웅변가까지는 못되더라도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없지 않았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다. 반 년 정도의 경력으로 목소리만 듣고도 상대방의 성격이나 나이, 직업, 학력, 생활 수준까지도 대강 짐작이 가니 점쟁이가 따로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목소리도 손금처럼 운명 같은 것을 쥐고 태어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대부분 음성이 맑고 고운 사람은 삶의 길도 평탄한 편이고, 탁한 사람은 어둡고 굴곡이 있는 편이다. 목소리로 그 사람이 장자인지 막내인지의 구별까지도 가능한 걸 보면 참으로 신기하기도 하다.

전화로만 대화를 나누는데도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 있는 듯이 목소리로 영상까지 떠올릴 수가 있게 되었다.

전화로 하는 여론조사는 지역세를 타기도 한다. 전국적으로 볼 때는 남도 사람들이 명쾌하게 응해 주고, 서울 지역만 놓고 볼 때는 문화 1번지로 불리우는 강남 지역이 호응도가 높다. 그리고 생활 수준이 낮은 지역일수록 호응도가 낮은 편이다.

올해 들어 리서치 경력으로 길러진 나의 말 실력을 테스트할 기회가 있었다. 진주 문인협회 심포지엄 때였다. 그러나 내 옆좌석은 진주로 가는 차중에서나 심포지엄 장소에서나 예년과 다름없이 비어 있었고, 내 입은 여전히 닫혀 있었다.

타고난 천성은 마음먹는다고 해서 쉽게 고쳐지는 게 아닌 모양이다. 지껄인다고 웅변이 되는 것이 아니듯 전화에 대고 날마다 말을 해봐야 내 음성은 시끄러운 소리밖에 안 되나 보다. 어쩌면 가슴 속에서 우러나와 하는 소리가 아니고, 남이 만들어 놓은 말을 앵무새처럼 토해 놓기 때문에 내 목소리는 소음에 머물었던가 보다. 비록 아름다운 소리는 아니라도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정직하고 진실된 말로 전달되기만을 바라며 또 소리를 찾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