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의 하늘 아래서

                                                                                            具 良 根

 역사문제연구소 회원 열여섯 명을 태운 중국 서남 항공기는 사천성 성도(成都)에서 구름을 뚫고 직승하였다. 힘껏 숨을 몰아쉬고, 몇 겹의 구름을 뚫고, 오를 수 있는껏 가장 높은 고공으로 솟아오른 것이다.

구름 위의 그 구름마저 뚫고 나타난 만년설의 산. 과연 거기에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어떤 존재가 있음 직하였다. 티벳은 평균 고도 4천 미터가 되는 나라다. 우리 백두산 높이의 두 배쯤 되는 평원에 위치한 나라라는 것이 어느 꿈나라를 상상하기에 족했다.

비행기가 라싸에 내리자 진공의 유리관 속을 거닐 듯 여객(旅客)들은 시험 걸음을 해본다. 작열하듯이 내려쬐는 눈부신 햇빛에 건너편 산들의 풀포기 하나, 모래 하나도 다 보이는 듯 시선거리 안에는 먼지 하나도 없는 투명한 공간이다.

산소 함유량이 내륙보다 30퍼센트나 적다고 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무엇인가 가슴이 답답해 온다. 미리 주의사항을 들은 데로 우리는 음성의 볼륨을 낮추고 천천히 걸으며 심호흡을 단속적으로 해가며 라싸 시내로 가는 마이크로 버스에 몸을 실었다. 중간에 한 마을을 들려 보았다.

거무스레, 불그스레한 영향 부족 증세를 보이며, 탄 얼굴에 먹같이 검은 눈동자, 한여름인데도 긴팔에 치마처럼 드리운 검정 추바푸르, 티벳인에게는 진한 거지 냄새가 배어 있다. 집들은 흙과 돌로만 쌓은 지상 땅굴로 보아야 한다. 그런 고지에는 나무가 자라지 않기 때문에 전국의 산에 한 그루의 나무도 없다. 평지 같은 곳에 몇 그루의 나무가 있긴 하나 가서 보면 밑동만 크지 겨우 사람 키만한 뒤틀린 단목수일 뿐이다.

그들은 그 단목수의 나뭇가지를 꺽어 집집마다 꽂아 놓고 깃발을 휘날린다. 아아, 누가 처음에 깃발을 달았을까. 거기에는 무슨 기원 (祈願)이 숨어 있을까. 흰색,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의 삼각형 깃발을 한 가지에 줄 맞춰 여러 개씩 달아 황량한 벌판, 푸른 하늘을 향해 한없이 펄럭인다. 그들의 마을이 가까워오면 산비탈에도 나무 위에도 그 깃발이 펄럭인다. 동네가 가까워오면 또 마을 앞 바위 위에도 집의 흙벽에도 야크의 분뇨를 호떡처럼 이겨 붙여 놓은 납작한 덩이들을 볼 수 있다. 그것이 그들의 유일한 연료인 것이다. 그것이 마르면 벽에서 떼어내어 장작 쌓듯이 집에 높이 쌓아 놓고 땔감 걱정을 안한다. 집안으로 들어가니 흙구덩이가 방이요, 흙구덩이가 야크 우리요, 흙구덩이 한쪽에 몇십 년 동안 빨지 않은 두꺼운 천 이불이 그들의 잠자리였다.

야크 소는 평소 사진에서 보던 것과 아주 달랐다. 야크는 황소보다도 큰 무서운 소인 줄 알았는데 실제 티벳에 깔려 있는 야크는 우리 황소의 절반밖에 안 되는 비쩍 마른 냄새나는 소에 불과했다.

다시 마이크로 버스가 달리자, 산들의 계곡에 사막들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 도대체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었다. 웬 흙산에 모래일까 하고 안내원에게 물어 본즉, 북쪽 사막지역에서 날아와 쌓인 모래라고 한다.

삭막한 벌판에도 꽃이 있었다. 무슨 꽃일까 자세히 보니 우리의 엉겅퀴 같은 꽃이었다. 강물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강물이라기보다 물이 평지 아무데나 흘러 내려가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 옳겠다. 물은 따로 강이 있는 것이 아니고 아무데나 땅을 타고 내려가고 있는 듯하였다. 그런데 거기에 신기하게 물살도 있고 급류도 있다. 강가에 솥을 걸어 놓고 불을 지피고 있는 장족(藏族)도 보인다. 그런데 그것은 고기를 잡아 먹는 모습은 아니라고 한다. 그들은 수장(水葬)이 있기 때문에 물고기는 먹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는 곳에 무슨 금기사항은 그다지 많은지.

차가 중간 마을에 서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돈을 달라고 손을 내민다. 자기들이 만든 조잡한 악기인 삼현(三絃)을 타며 구걸하기도 한다. 어떤 부녀는 아버지가 삼현을 타고 딸은 노래를 부르며 발로 가벼운 댄싱까지 곁들인다. 내가 만난 띠끼, 빠사란 남매에게 손짓 발짓으로 나이를 물어 보았다. 누나인 띠끼는 13세, 동생인 빠사는 11세인데도 모두 우리의 초등학교 1학년 덩치만도 못했고, 마른 체구에 불결한 의복에서는 냄새가 진동하였다.

마이크로 버스가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한 분이 맥을 못추고 드러눕는다. 체면 불구하고 쇼파에 누워 산소의 공급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보니, 이는 연습이 아니고 실제상황이란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뿌따라 궁(布達拉宮)은 라싸의 상징이며 티벳의 대표적 궁전이다. 달라이라마가 마지막까지 머물던 궁전이다. 밖에서 보기에는 그럴싸한 궁전 같았으나 안으로 들어가니 궁전이라기보다는 토굴 속 불전에 가까웠다. 온통 흙벽으로만 쌓은 좁은 방들이 있고, 거기에 무슨무슨 불상들만 가득하였다. 여름 궁전이었다는 루오뿌린카(羅布林鴉)도 상황은 비슷했다.

따쟈오쓰(大昭寺)를 갔을 때는 더욱 가슴을 애게 만들었다.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하고 있을까. 아니면 가해자를 어여삐 여겨달라는 기원일까. 여기저기서 온몸을 땅에 텁석 떨어뜨렸다가 일어나서 다시 떨어뜨리는 모습을 나는 차마 마음이 아파서 볼 수가 없었다. 이곳에 설치된 마니통은 그들의 손에 돌리고 다니는 마니통과는 달리 정말 옴마니반메홈이 새겨진 커다란 통들이다. 이 회전 마니통을 손바닥으로 돌리며 끝없이 굽이쳐 돌아가는 신도들, 그들에게는 옴마니반메홈만이 희망이요 미래이려나.

이른 새벽 라싸의 아침체조를 잊을 수 없다. 온 광장 가득히 리듬을 타고 움직이는 모습이란 차라리 체조라기보다 벌레들의 꿈틀거림이었고 거지떼(?)들의 율동이었다. 온통 검정 추바푸르를 입고, 같은 손놀림, 같은 몸놀림을 하는 모습이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리더인 듯한 한 부인이 광장 단목수 밑동에 올라가 무엇인가 설명을 하는 모습도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티벳에서 이틀을 보낸 나는 드디어 발병하고 말았다. 잠을 자면 비몽사몽의 꼭 같은 악몽이 계속되어, 오 분 정도 헤매다가 일 분 정도 깨곧 하는 짓을 아침까지 반복하였다. 다음 날 시가체(日喀則)까지 따라가긴 하였으나 구경은 못하고 호텔에 누워 있어야 했다. 다음 날도 산소통을 끼고 겨우 일행과 교통편의 행동을 같이 했을 뿐 보행은 일체 사양하고 그늘에 앉아 쉬었다.

4박 5일간의 티벳 일정이 끝나고 다시 성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 나는 그곳을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을 한없이 감사해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