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 마당의 잔디

                                                                                     오 덕 렬

 지난 가을 어머니는 마당 가장자리에 잔디를 둘러놓으셨다. 이제 농사를 짓지 않는 고향집엔 번듯한 마당은 소용이 없게 된 것이다. 지난날 마당은 나락, 보리, 콩, 수수, 조, 메밀 같은 모든 곡식을 타작하던 소중한 공간이었다. 여기에서 얻어진 곡식은 식구들의 더없는 식량이었고, 학자금도 마련하던 귀중한 재화였다. 농경 사회에서 마당의 넓이는 부의 척도이기도 하지만, 관혼상제의 의식도 마당에서 치르었기 때문에 신성시되기도 하였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듯이 이제 고향집 마당의 역할도 변한 것이다. 근년에는 시골에서도 수익성을 따져가며 멀쩡한 논밭에 떼를 놓느라 야단이다. 벼를 가꾸고 콩을 심는 것보다 수입이 낫기 때문이다. 농사일이 그렇듯이 떼를 심는 일도 일손이 많이 간다. 그런데도 팔순이 넘어 기력이 전과 같지 않은 어머니는 마당 가에 잔디를 가꿔 볼 생각을 하신 것이다. 비오는 날에도 마당이 패이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었으리라. 지금도 마당이 씻겨 나가면 복이 달아난다고 믿고 계시는 걸 보면……. 그리고 한편으론 아버님 살아 생전에는 때로 마당에 흙을 들이고 다지며 마당 가축을 그리하시던 일이 생각났음일까?

봄이 되니 어머니의 정성은 파릇파릇 새잎으로 돋아났다. 고향집에 도착하자 집사람은 장꽝 옆, 돌담 아래서 봄을 맞은 춘란을 살피고는 텃밭에서 머위순을 캐기 시작한다. 살짝 데쳐 된장에 버무려 안주를 마련할 참이다. 마침 며칠 전 윗집에서 제사에 마련한 청주 한 되를 보내왔다. 광에다 두고 아들 오기를 기다리던 어머니는 마루에 차린 술상에 내놓으시는 것이다. 이 무렵, 밖에 세워둔 승용차를 보고 “어이, 동생 왔는가?” 동네 일을 맡아보는 마음씨 고운 형님의 음성이 먼저 울타리를 넘어왔다. 마루에 앉아 기울이는 술은 향긋한 집안의 봄내음과 어울려 봄 기운을 돋구었다.

고향집의 봄맞이는 남새밭에서도 한창이다. 집사람은 시금치를 캐고, 상추를 뜯고 두릅의 연한 순을 집는다. 어제 내린 봄비 덕분에 너울너울 잘도 자랐다. 밭귀의 매화나무에선 잉잉대는 벌만 알 것  같은 암향이 퍼지고 있다. 마당의 자두나무는 무진장한 앙증스런 꽃망울을 터뜨릴 것이 수줍은지 가지도, 피어나는 잎까지도 온통 자줏빛으로 상기되어 있다.

봄 기운에 취하며 형님과 마신 술은 화제를 마당의 잔디쪽으로 이끌어 갔다. 그러면서 퍼뜩 마당 전체에 잔디를 가꾸자는 욕심이 일기 시작한다. 내친김에 잔디 놓는 일을 시작해야지. 옮겨 심을 떼는 마당 가에 잘 자란 것을 솎아서 쓰면 된다. 삽으로 뗏장을 떠내서 흙을 털고 잔디 뿌리를 가닥가닥 추리기 시작했다. 나는 괭이로 마당에 골을 파고 어머니와 집사람은 골을 따라 한 뿌리씩 떼를 심는다. 잔디로 온 마당이 파랗게 어우러지기 전에라도 보기 좋게 하려고 눈짐작으로 줄 간격을 맞추느라 애를 썼다. 오후 늦은 때에 시작한 일이라 해 지기 전에 끝내려고 집사람의 손놀림이 빨라지자, 어머니는 우스갯소리를 건네신다.

“너는 언챙이 토란나물 먹듯이 얼른 심어분다.”

무슨 뜻이냐는 며느리의 묻는 말에 일을 빨리빨리 해치울 때 그렇게 말하더라며 웃으시는 모습이 환하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 허리 못 매어 쓰듯이 마당에 떼를 놓는 일도 한숨에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이제 마루의 전등불을 밝히고 토방에 걸터앉아 한참을 쉬기로 한다.

땀을 닦으며 머리를 들어 저물어가는 서녘 하늘을 쳐다보다가 어머니의 눈과 마주쳤다. 나는 찬찬히 어머니의 얼굴을 응시했다.

“왜 그리 뚫어지게 쳐다보냐?”

어머니의 말씀에 나는 얼굴이 고와서 그러는 것이라고 딴전을 피웠다. 튼튼했던 치아가 윗니 두 개만 남아 길어지고 자꾸 입놀림을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지나온 세월을 발견한 것이다.

주말이면 말 없이 형제들이 모이고 그저 어머니와 지난 한주 살아온 시시한 이야기를 나누다 손님처럼 떠난다. 언제나 고향집에는 어머니의 따스한 마음이 살고 있는데도……. 낮은 음성의 타이르는 말씀을 듣기도 하고, 잘되기를 바라며 걱정하시는 정을 느끼며, 손끝에 묻어나는 숭늉의 구수한 맛을 볼 수 있는 고향집이다. 우리 곁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고 나면 마음은 넓어지고 느긋해지며 뿌듯한 충만감으로 가득 차는 것이다.

이런 고향집 마당에 잔디를 두른 것을 마당의 온전한 보존으로 생각했는데 어머니는 딴 데에 큰뜻을 두고 계시는지도 모를 일이다. 뿌리 줄기의 마디마다 수염뿌리가 돋아 마당을 튼튼히 얽어 줄 잔디에서 동기간의 어떤 우애 같은 걸 생각하셨음은 아닐는지. 그리고 마른 줄기에 뿌리가 내려 새잎이 자라고 뻗어나듯 이제라도 어머니 당신 혼자의 나날을 그렇게 보내시려는 뜻은 아닐는지. 아버지 계실  때는 집안 일에서 어머니의 뜻은 언제나 안으로만 향했는데, 이제 지난날과는 달리 모든 집안 일을 잘 추스리는 걸 보면 확실히 어머니의 생활 자세는 변한 것이다.

옮겨 심은 잔디는 이 봄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온 마당에서 새롭게 자라날 것이다. 오는 추석쯤이면 울타리 아늑한 고향집 마당, 잘 자란 잔디밭에 우리 식구들이 모여앉아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