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자리참꽃

                                                                                              趙 賢 世

 ‘담자리참꽃’이란 꽃이름은 스님의 화두처럼 근년에 내 가슴 속 깊이 새겨져 있는 식물 이름이다.

‘빙하기 때 시베리아에서 남하한 식물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 있는 것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백두산에서만 볼 수 있는 작은 상록관목류이다.’

언젠가 신문쪽지에서 우연히 보게된 사진 한쪽을 간수하였다. 어쩌다 그 쪽지가 들춰지면 그 ‘참꽃’을 실제로 보아야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히곤 하였다. 백두산에서만 볼 수 있다는 그 꽃의 특성도 한 몫 하였다. 가끔 소속된 학회에서나, 여행 기획에서는 북경이나 연변을 거친 백두산 탐방 일정이 나온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는 결코 가고 싶지 않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근원인 성산과 천지를 그렇게 주마간산격으로 봐서는 안 될 것 같은 외경심과 주저감도 있으리라. 남의 땅을 통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돌아가야 하는 행로 그 자체가 울화가 난다.

친구들이 최근 중국을 통해 백두산에 설핏 올라 천지를 본 이야기를 해도 나에겐 공허하게만 들린다. 겸사로 다녀오는 우회 여행은 않겠다는 은연중의 마음은 백두산 부근 지도를 미리 섭렵하는 것으로 달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참꽃 사진을 보며 상상의 백두산 순례를 위한 도상 연습을 하곤 한다. 중국 쪽에서 쉽게 간 사람들은 중국인 그들이 말하는 장백산을 간 것이지 우리의 백두산을 오른 것은 아닐 것이다. 이미 우리의 분단을 이용한 중국의 장삿속은 장백산 등산에 그들 한달 급여에 해당하는 지프차 이용료와 통행료를 챙기고 있다 한다.

그러나 우회하여 단번에 올라버리는 장백산은 가지 않으리라. 차라리 당장 갈 수 있다면 국토의 뼈대를 이루는 우리 산줄기의 기(氣)를 타고 분연히 그 지기(地氣)의 발원처로 도보 순례를 할 수 있으련만… 그래도 차분히 가는 길을 먼저 잡아보면 언젠가 이어질 경원선을 이용하여 원산·함흥·성진·길주를 잇는 동해안 철도가 최적일 것이다. 금강산을 곁눈질할 필요는 없겠다. 훗날 더 나이들어 아내와 노인 관광으로도 충분히 감탄할 터이니까. 차창을 열고 두만강이 채워논 동해의 소금 바람을 흠뻑 들이켜 폐활량을 크게 하여야겠다. 길주·혜산·삼지연까지는 서울·대전 정도 거리인 바, 다만 혜산에서 잠시 머뭇거릴지도 모르겠다. 좀 떨어져 있지만 중강진이 왜 우리 나라에서 제일 추운지, 압록강이 정말 국경선 따라 서측으로 흐르는지 살피고 싶다.

일신상 최악의 경우를 각오하고 어떤 일을 단행할 때 쓰여지는 “나중에야 삼수갑산을 가서 산전을 일궈 먹더라도…….”라는 말의 근원지로 옛날 최고의 흉악한 귀양지인 삼수(三水)와 갑산(甲山)도 둘러보고 싶다. 더 욕심을 낸다면 2,000m 이상 되는 산들로 완만한 구릉처럼 보인다는 개마고원에도 가서 ‘한국의 지붕’을 확인할 겸 고산 적응도 하고 싶다. 그러나 우선 백두산 순례를 마치고 뒤풀이로 갈 예정이다.

삼지연에서는 하루쯤 쉰 다음 차로 한 시간 거리인 백두역으로 갈 것이다. 다만 백두역에서 향도역까지 놓여진 케이블카는 이용하지 않겠다. 향도역에서 장군봉(2,750m)까지는 한 이십분 걸어 오른다는데 이 역시 너무 쉬 오르지 않는가? 아무튼 어느 해가 될는지 등산 예정은 칠월 하순경으로 잡고 싶다. 그것은 천지 주변의 연평균 기온이 영하 7.3℃이나 칠월 평균기온은 영상 8.5℃라니까 가장 적절한 기온이다. 또한 풍속도 남서풍으로 연중 가장 낮은 때라 한다.

다만 안개비가 자주 발생하여 하루 6시간씩, 한달에 보름 정도나 계속된다 하니 우중 등반 준비는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안개비를 좀 맞더라도 중턱에 있는 나무 껍질이 종이처럼 벗겨지는 만주자작나무 숲을 지나 미인송이라고도 부르는 장백송을 한껏 안아도 보고, 만주잎갈나무 또 종비나무에도 기대어 보리라. 좀 서늘하겠지만 웃통을 벗고 숲의 정기를 받는 산림욕도 하리라. 더 숲 안쪽을 들어가서 주머니 같은 꽃잎의 순판이 앞으로 처진데서 생긴 , 이름도 우스꽝스런 ‘털개불알꽃’의 그 핑크빛에도 신기해 할 것이다. 물론 더덕 냄새에도 취하고, 백두산며느리 밥풀꽃, 노루오줌꽃, 흰분홍두메투구꽃, 기생꽃, 도깨비엉겅퀴, 동자꽃들도 찾아내고 향기도 맡으리라.

드디어 나의 수첩 갈피에서 숨었던 ‘담자리참꽃’이 잔설과 얼음을 뚫고 나와 홍자색의 대군락을 이루고 환호할 것이다. 나는 숨이 턱에 찰 것이고, 감히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지도 못할지 모른다. 노란병초, 좀참꽃 등과 어우러져 전원교향곡을 연주하듯 반겨줄 것이다. ‘백두산 사슴’ 가족, 골짜기 계곡 ‘버들치’란 놈도 놀라지 않도록 큰 소리의 환성은 참으리라. 눈을 돌려 화산에 의해 변형된 잿빛지형에도 고개를 끄덕일 것이고, 빙하 침식곡(浸蝕谷)인 협곡과 강한 바람에 깍인 풍식 구멍, 암석 기둥의 자연 섭리에 놀랄 것이다. 그리고 잘 찾을 수 있다면 어디쯤 있을 숙종 때 청나라가 일방적으로 건립한 ‘백두산정계비터’에도 찾아가 볼 것이다. 또한 압록강과 두만강 물이 천지가 넘쳐서 발원하는 줄 생각해온 막연한 상식의 허실도 확인하리라. 두만강 물은 오로지 지하수로만 유출되고, 천지 물은 달문으로 흘러 68m의 천지폭포 ― 송화강으로 합류될 뿐이라 한다. 드디어 천지를 둘러싼 해발 2,500m 이상의 16개 봉우리 중 으뜸인 장군봉에 오를 것이다. 얼마나 강한 마그마(magma) 분출로 일어난 폭발이었던가! 그 화산재가 대류권(對流圈) 상층까지 올라 제트기류에 의해 1천㎞나 떨어진 일본 북해도까지 5㎝ 두께로 쌓였다니 그 위력을 상상한다. 천지를 만든 대규모 화산 폭발은 고려시대 초기에 일어났음에 천년 전의 시공(時空)을 뛰어넘는 접근을 두려워 하는지도 모른다. 숨차게 오른 장군봉에 서면, 젊은날 고생 끝에 오른 백록담에서 그렇게 하였듯, 나는 양팔을 힘껏 벌려 천지를 안아 볼 상상만으로도 어깨에 힘이 가해진다. 천지의 넓이가 여의도 크기 3배나 되고, 384m가 최저 깊이라든가 하는 공학적 분석은 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실제로 우리 땅을 통해서 천지를 순례하지 아니하고는 더 이상 필설로 표현할 수 없음을 안다. 일제 치하인 1927년에 발행된 최남선님의 『백두산 근참기』는 읽을 수 있어도, 분단된 이 땅의 책상머리에서 상상의 ‘천지 근참기’는 더 쓸 수 없지 않은가? 그래도 언젠가 답사를 위해 여전히 도상에서라도 순례 예행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담자리참꽃’을 찾아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정맥을 타고 천지를 향하여 두 팔 벌리러 갈 수 있도록 두 손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