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이 있는 풍경

                                                                                        권 남 희

 마당이 있었더랬다. 봉숭아, 분꽃, 과꽃 등이 깨끗이 비질된 마당 한켠에 키 재기하듯 몰려 있고, 무화과나무, 모과나무가 담을 넘보며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비닐 온실 한 동이 지어져 있었는데, 그 안에는 요술 방망이라도 있는지 철 이른 상추, 오이, 호박, 때로는 딸기가 나왔다. 어린 마음에도 이른 새벽 상큼한 공기만큼이나 마당이 있는 정경은 가슴을 탁 열어 주었고, 온실이 있는 마당은 더 믿음직스러웠다.

이른 아침부터 마당에는 아버지가 뭔가를 하시느라 왔다갔다 하시고, 부지런한 아버지 덕에 나는 무화과도 먹을 수 있었고, 딸기 먹는 재미로 아버지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마당은 언제나 특이한 꽃이나 특수 작물을 심어 보시는 아버지에게 실험실도 되었다.

그때 나는 마당을 통해 어떤 위안을 얻기도 했다. 저녁을 먹은 후 마루에 걸터앉아 마당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뿌듯했다. 마당은 늘 내게 기대를 안겨주곤 했다. 아침이면 마음이 부풀어 마당으로 나가 밤 사이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나 호기심을 갖고 왔다갔다 했었다. 그 버릇 때문에 결혼한 후에도 한동안 친정에 가면 마당을 서성였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친정집에서 마당이 없어지고 말았다. 무화과, 모과, 비닐 하우스가 송두리째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세를 줄 수 있는 건물이 올라가고 가게가 들어섰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마당도 자취를 감춘 것이다. 마당이 없는 친정은 더 이상 내가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친정이 아니었다. 무언가 큰 것을 잃는 것처럼 허전하고 쓸쓸하고 불안했다. 마당이 없어진 뒤부터 나는 친정에 가면 하루 이상을 넘기지 못하고 돌아왔다. 내집이 아니라는 생각에 편치가 않았다.

이제는 내가 사는 골목도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자고 나면 마당 있는 집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다가구 주택이나 빌라들이 들어서는데 마당은 간 곳이 없다. 다만 그곳에는 주차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시멘트 범벅의 공터가 매끈하게 있을 뿐이다.

언젠가 비행기에서 우연히 서울을 내려다보았는데 그 삭막한 느낌은 마음이 아플 정도였다.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없는 집들이 내리쬐는 따가운 햇볕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어쩌다 띄엄띄엄 나무들이 있고, 주변의 작은 산들은 아파트 건축에 밀려 이지러지고 있었다. 그때 서울이 이런 곳이었나 충격을 받았던 솔직한 표현이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마당 있는 집들은 줄어들고, 마당을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집들은 이웃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불안해 한다. 마당은 이제 더 이상 삭막해져 가는 도시인에게 안식이나 휴식처가 되어 주지 못한다. 도리어 무슨 사치라도 누리는 양 눈총을 받고 있을 뿐이다.

마당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다른 집처럼 왜 다세대 주택을 지어서 수익성을 높이지 않느냐고 안타까워한다. 마당에 있는 나무들에 벌레가 꾀고 잎이 자꾸 떨어져서 골목이 지저분하다는 말도 건넨다.

마당을 갖고 살자니 무언가 손해를 보고 있지 않나 하는 강박감에 쫓겨, 차라리 마당을 없애고 열두어 세대쯤 세를 줄 수 있는 다가구를 지을까 마음이 흔들리기도 한다.

초여름이 되어도 초록의 싱그러움을 만끽할 수 없는 서울, 노후에 서울을 벗어나 전원 주택을 한 채 갖는 것을 꿈꾸는 도시인들.

가슴으로만 초록을 그리고 마당이 있는 풍경을 그리며 쫓기듯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묻고 있다.

서울을 사랑하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