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회 추천 -

 앵두나무 앞에서

                                                                                                이 승 민

 우산을 받고 뜨락을 지나다가 갑자기 앵두나무 앞에 멈추어 선다. 앵두알이 빗속에 함초롬이 젖어 붉게 상기된 얼굴 같다. 탐스러운 나뭇가지 하나를 들추려다 문득, 어디서 이와 같은 일이 꼭 있었던 것만 같아 흠칫 손을 거둔다.

어릴 때에 농장에서 앵두보다 조금 늦게 달리는 산옥매를 앵두로 착각하여 따먹은 적이 있다. 비 속에 젖은 앵두를 따서 입에 넣는다. 물 맛과 새콤한 앵두 맛이 섞여서 별 맛이 아니다. 그런데 앵두의 맛은 앵두의 맛만이 아니다. 무엇이 섞여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다른 맛도 끼어 있다.

앵두나무 앞을 떠날 수 없어 마루에 주저앉는다. 언젠가 체험한 것만 같은 그 시간에 대한 궁금증이 풀려야 일어서 갈 수 있을 것 같다.

무심히 비에 젖는 대문과 앞집의 대추나무, 그리고 눈앞에 있는 이 앵두나무를 분명 어디서 한 번 본 듯하다. 흐릿한 저녁, 솨아 하고 내리는 비 소리뿐인데, 누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빗방울에 흔들리는 풀잎들은 모두 지난 일기 속의 얼굴들처럼 이야기를 잔뜩 물고 나를 치어다본다. 혹은 웃기도 하고 혹은 내게 아는 체를 하는 몸짓을 한다. 바라볼수록 놀랍게도 그 모든 것들이 모두 내 지난 시간 속에서 걸어 나온다. 나는 지난 시간에 완전히 갇혀 버렸다.

나도 다른 어디서 한 번 있었던 사람은 아닐까. 지금의 나와 과거의 어딘가에서 이같은 일을 생각했던 나와는 둘이 아닐까.

나는 어느 길의 끝에 와 있는 듯하다. 길 끝에 와 있으므로 어쩔 수 없이 다시 되돌아가야 하거나, 아니면 산 정상에 올라왔으므로 내가 떠나 온 마을로 다시 내려가야 하는 것 같은 느낌에 휩싸여 있다.

이런 느닷없는 느낌은 어디서 왔을까. 그리고 왜 벌써 내게 온 것일까. 나는 아직 젊다. 앞으로 얼마든지 새로운 것을 시작해 볼 나이가 아닌가. 아니 지금부터 내가 주관해서 무엇인가를 이룩해야 할 때다. 지금까지 내가 달려온 길은 대부분 나의 길이 아니었고 타인의 의도에 의해서 살아왔다. 미래의 삶을 위한 준비 기간으로서 능력을 길러온 기간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부족하나마 이제부터 나는 내 능력을 발판으로 참으로 새로운 것을 해볼 작정이다.

어디까지나 나의 미래는 아직 저 먼 곳에 있다. 전혀 지금과 다른 아주 새로운.

그런데 나는 왜 갑자기 내가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일까. 그랬다. 저 앵두나무 잎을 들추는 순간 나는 이미 반복의 일을 하는 나를 보아 버렸다. 무슨 일인가.

청마루에 앉아서 비처럼 낮게 흐르는 내 감정을 추스리지 못하는 것은 또 무엇 때문인가. 나의 기분은 서늘한 바닥에 닿아 있다. 이건 또 무슨 감정인가, 하고 내가 굳이 말하지 않으려고 애쓸 필요가 있을까. 나는 얼핏 죽음의 냄새를 맡은 건지도 모른다. 길 끝에 선 듯한 느낌이 들었을 때, 앞으로는 나의 행동이 반복일 뿐이라고 느꼈을 때 이미. 새롭지 않다면 삶은 과연 살 가치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청마루 끝에 주저앉아 버린 것일 게다.

몹시 외롭다. 이제 내가 어떤 의미있는 생각으로 나를 일으킬 것인가. 일어나 저기 나의 방으로 아무 일 없던 듯이 되돌아갈 수가 있을까. 지금 찾아온 생각은 건설적인 것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이런 조짐은 수상하다. 무기력이나 허무에 사로잡히게 하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생각이라는 것이 중구난방으로 왔다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잡념처럼 오는 것이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분명한 획을 그으면서 와서는 그 사람의 인생에 각인되는 것이 있다. 가치가 있든 없든 간에 그것은 그렇게 와서 그 사람의 인생에 매듭을 짓곤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는 나이를 먹지 않을 것이다. 늙어도 늙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다.

이 생각은 내게 분명한 획을 그으려 하고 있다. 화장실을 돌아 나오는 이 무방비의 허름한 상태로 앉아 있는 나에게! 앵두나무 열매와 빗소리로 현신하여서 나를 찾아온 이 생각은 그냥은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피하면 언제고 다시 무방비 상태에서 나타나 나를 괴롭힐지도 모른다.

정면으로 대결하는 수밖에 없다. 적어도 타협점을 찾을지도 모른다. 조금 자신이 생겼다. 잘만 하면 그다지 쓸모없는 생각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시 앵두나무를 바라본다. ‘앞으로의 앵두나무에는 오늘의 이 만남이 또 아로새겨져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나의 생각과 나의 행동은 지금까지 살아온 그다지 자랑할 만한 것도 없고, 풍성하지도 않은 나의 과거 시간 속에서 걸러져 합성된 것일 것이다. 아니면 먼저 간 사람의 과거를 각색한 것이거나. 나는 그것이 참으로 슬프다. 나는 언제나 키 자라는 나무처럼 앞으로만 계속 걸어가고 싶지만 하지만 이제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같은 길은 아니다. 같은 길이라고 해도 먼저 누가 지나간 길이라고 해도, 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란 방도를 찾고자 한다. 등산길처럼 같은 길이라도 오르고 내리는 길은 느낌이 다르다는 방식을 동원할까? 아니, 링반데룽의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 좋을까? 둥글게 원을 돌듯이 돌아가는 길, 다시 되돌아가지만 전혀 새로운 길, 계속 앞으로 나 있는 길처럼 느껴지는 길.

그 새로운 길 옆에는 언제나 거꾸로 돌아가는 나의 과거가 멀리 보이는 언덕에 함께 있다!

그렇구나, 나는 앞으로 달려만 온 이 길 끝에서 혹은 이 산 정상에서 다시 기쁘게 돌아설 것이다. 포물선을 그리면서 둥글게 돌아갈 것이다. 이제부터 가는 나의 새로운 길은 큰 호수를 끼고 가는 길처럼 과거가 투영되어 있을 것이다. 과거의 길은 새로운 길을 가는 불안한 나를 안정되고 편안하게 해주는 동반자로서 언제나 보이는 저 맞은편에 있다.

앵두나무 열매의 맛은 새콤달콤하다. 그렇다. 이제야 분명해지는 맛이다. 낯설음이 익숙해지는 순간, 어느 새 살짝 내 과거의 향수가 끼어든 맛. 나는 짐짓 모르는 척할 뿐이다. 일어서서 빗속으로 우산을 받고 방으로 건너간다. 뒤돌아 보니 앵두나무도 대문도 어느 새 옛 얼굴을 숨기고 시치미를 떼고 있다.

타협인지 합리화인지 혹은 억지인지는 나중에 또 어떤 분명한 생각이 획을 긋고 지나갈 때 판명되리라. 그러나 지금은 앵두나무를 바라보면 생각에 잠겨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