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인간

                                                                                              朴 在 植

 내세에 환생을 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의 설문에서, 가장 많은 회답이 ‘독수리’였다는 해외 토픽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백금(百禽)의 왕자 독수리는 어떻게 생각하면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는 지상의 인간보다 선택받은 천혜의 동물일지도 모른다.

첫째, 우리 인간이 동경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그 넓은 하늘을 마음대로 날 수 있으니 얼마나 통쾌하고 신나는 일인가. 인간에게 비행기가 있기는 하지만, 기계 속에 갇혀 벨트를 매고 가는 몸이 어떻게 스스로의 날개짓으로 자유롭게 나는 새들의 비상에 견줄 수 있겠는가. 그래서 태초에 날개를 달아주지 않은 조물주의 마련이 인간에게는 못내 아쉬운 터이다.

물론 새라고 하여 노상 비상의 자유만을 향락하며 사는 행복한 생물은 아니다. 그들의 세계에도 정글의 법칙이 있는지라, 힘이 약한 자가 생존을 부지해 가기 어렵기는 우리네 인간세계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뭇새들의 왕으로 군림하는 독수리에게는 그 비정의 생태가 오직 권세를 누리기에 안성맞춤의 법칙일 따름이다. 그 권세를 빙자하여 먹을 것을 지나치게 챙긴 끝에 마침내 법의 올가미를 쓰기도 하는 인간 세상의 권력자에 비하면 훨씬 오붓하고 실속이 있다. 독수리야말로 무한한 자유와 권력의 화신이라 할 만하다.

그리하여 속박과 힘의 지배 속에서 생애를 보내야 하는 불쌍한 인간은 죽어서 독수리가 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윤회전생설(輪廻轉生說)을 믿지 않는 인간의 과학문명은 사람을 독수리로 만드는 방법을 발견하지 못하고 마침내 복제인간(複製人間)의 제조법을 고안한다.

미구에, 그러니까 나와 똑같은 또 하나의 나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이 경천동지할 기술 개발의 전초로 영국에서는 이미 복제양(羊)의 실험에 성공했다는 기사가 일란성 쌍둥이같이 꼭 닮은 두 마리의 양을 찍은 사진과 함께 보도되었다.

어설프게 읽은 내용으로는 유전자를 가지고 어쩌고저쩌고 한다는 것을 보면, 정교한 복사기로 감쪽같이 수표를 위조하듯 그렇게 복제기에 넣어 똑같이 박아내는 방법은 아닌 것 같고, 아마 남녀의 정자와 난자를 뽑아 시험관 아기를 생산하는 식과 방불한 길속이 아니겠는가 하고 짐작될 뿐, 그 노하우에 대해서는 유전공학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알 바가 없다.

아무튼 ‘복제양’의 성공이 우리 인간의 생태계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복제인간의 출현을 예고하는 사건임에 틀림은 없는 것 같다.

복제인간 문제가 대두하니 얼핏 기억에 떠오르는 것이 어릴 때 들은 야담 ‘고좌수(高座首)’의 이야기이다.

 

옛날 고좌수라는 토호의 집 곳간에서 오래 묵은 쥐란 놈이 하루는 고좌수로 둔갑하여 사랑방에 도사리고 앉자, 바깥 나들이에서 돌아온 진짜 고좌수와 시비가 붙는다. 서로 ‘내가 고좌수’라며 멱살까지 잡고 싸움이 벌어지자, 난처해진 것은 집안 사람들일 수밖에.

별수 없이 고을 원님에게 아뢰어 진가(眞假)를 가리기도 했다. 원님은 좌수의 아내를 증인으로 배석시켜 신체적인 특징부터 검증하는데, 몸 속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사마귀까지가 똑같다.

결국 집안 살림의 지실(知悉) 여부로 감별할 수밖에 없었는데 부엌의 몽당숟가락까지 훤히 꿰고 있는 쥐좌수를 진짜 고좌수가 당할 재간이 없다.

솔로몬의 지혜를 갖지 못한 원님은 쥐에게 진짜의 판정을 내리고, 진짜 고좌수는 늘씬하게 곤장을 얻어맞은 끝에 집에서 쫓겨나 한동안 억울한 방랑생활을 하게 된다.

 

우수한 유전자로만 복제된 가짜 인간이 세상의 사랑채와 안방까지 차지하게 되는 날이 오면 원형의 진짜 인간은 ‘고좌수’의 신세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겠다.

그래서 세계는 지금 바짝 긴장이 되어 있다 한다 한 클린턴 대통령 같은 잘난 사람도 서둘러 ‘인간복제 금지법’과 같은 법을 만든다든가 만들었다든가 하는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유독 한국만이 조용한 까닭은 다행히도 대학생들의 설문에서 우리의 대통령이 ‘복제인간으로 만들지 않아야 할 인물’의 으뜸으로 꼽힌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복제인간은 왜 만들자는 것일까?

가령 아인슈타인을 복제할 경우 그의 천재성이 결국 그의 불세출의 업적 ‘상대성 이론’을 재탕하는 구실밖에 못 된다면 구태여 복제할 필요는 없을 터이다.

그래서 무식한 궁리이지만 다른 사람의 우수한 유전자를 가미하여 아인슈타인을 복제한다. 그의 천재를 능가할 만한 과학자의 유전자를 가미하여 그가 이룩한 필생의 업적을 능가하는 이를테면 ‘절대성 이론’과 같은 새로운 차원의 원리를 발견하게 하는 것도 좋고, 어느 천재적 예술가의 유전자를 가미함으로써 두 천재가 협력하여 빙탄불상용의 이 두 분야를 오묘하게 융합시킨 기상천외의 과학을 개발하기도 하고, 예술을 창조하기도 하는 인물을 만들어 낸다.

며칠 전의 신문을 보니 복제양을 만든 영국의 의학팀이 다시 인간의 유전자를 가미한 복제양을 만들어 매우 질이 높은 젖을 짜내는 데 성공했다고 하니, 나의 이런 생각이 짜장 황당한 궁리만은 아닐 듯하다

아인슈타인은 그렇다 하고, 만약 내가 나를 복제한다면 어떤 모양이 될까?

물론 나의 몰골을 생짜로 복제한다는 것은 부질없고 따분하기 짝없는 일이다. 하지만 복제된 내가 생애에 이루지 못한 숱한 아쉬운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와 연계되는 것이라면 한 번쯤 해 봄직도 한 노릇이다.

나는 어릴 때 이웃집 소녀를 몹시 짝사랑했다. 그가 나의 아내가 된다면 얼마나 인생이 아름다울까 하는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애절한 꿈은 내색조차 못하고 사라지고 말았다. 소녀에게 다가갈 숫기와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 나에게 필요한 것은 칼을 뽑아들고 풍차에 덤벼든 돈키호테의 유전자가 될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숫기와 용기가 있었다 하더라도 나의 이 못생긴 얼굴을 가지고는 초장에 퇴짜를 맞기가 십상일 터이다. 그래서 세기의 미남자 로버트 테일러쯤의 유전자를 차용한다. 이렇게 하여 지금은 유명을 달리했지만, 그 소녀와의 꿈 같은 사랑을 성취해 보는 것이다.

중학교 시절에는 야구선수를 꿈꾸며 야구부를 기웃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주력과 어깨 힘이 약해 싹수가 없다는 판정을 받고 그 꿈은 무산되고 말았다. 요즘 미국에서 한창 떨치고 있는 박찬호 선수를 보니 그 꿈이 불현듯 새로워지는지라 그의 유전자를 가미하여야 하겠고, 이왕이면 칼 루이스나 마이클 존슨의 주력까지 보강하면 금상첨화의 선수가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명색이 문인인지라 문학의 꿈을 제대로 이룰 유전자의 지원이 절실하지 않을 수 없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소월이나 이상(李箱)을 생각할 수 있지만, 그들의 생애는 너무도 박명하다. 내친 김에 문운과 관운과 염복(艶福)까지 누린 괴테의 것을 빌려오는 수밖에 없다.

이 밖에도 못다한 꿈을 섬기자면 한이 없지만, 이만하면 복제된 나의 인생은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복제하고 나니 어느 새 본시의 내가 가뭇없이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