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스웨덴 입양녀를 만나서

                                                                                             황 필 호

 벌써 30년 전에 한국에서 태어나 두 살 때 스웨덴 가정에 입양되었으며, 현재는 역사가 아주 오래 된 신문사의 정치부 기자로 당당하게 일하고 있는 여성을 만난 일이 있다.

그녀는 독립 프로덕션의 연출자로 전 세계를 취재하고 있는 나의 오랜 스웨덴 친구 벵크트 욘손(Bengt jonson)의 소개장을 내보이면서 그의 생부모를 찾고 싶다는 것이다.

나는 왜 이제 새삼스럽게 생부모를 찾으려고 하느냐고 묻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될 수 있는 한 도와 주겠다고 답변했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한 것인가.

나는 우선 그녀의 명함을 받으면서, 왜 그녀의 이름이 그냥 ‘에드스트롬’이 아니라 ‘박-에드스트롬(Park-Edströ)’이냐고 물었다.

그녀의 답변은 간단했다.

“그냥 갖고 싶었어요.”

자신을 버린 한국의 성을 그냥 갖고 싶었다?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 나에게 그녀가 불쑥 물었다.

“왜 한국인들은 포도의 껍질과 씨를 먹지 않습니까?”

너무나 엉뚱한 질문이었다.

“아마도 옛날에는 농약을 많이 사용해서 포도를 재배했으니까 그렇게 포도를 먹었는데, 그것이 그만 습관화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질문을 했습니까?”

“네, 다른 스웨덴 사람들은 모두 포도를 그냥 먹는데, 나만 그렇게 하지 않거든요. 아마 한국적인 것이 그런 형태로 나에게 아직 남아 있는 것이겠지요.”

나는 가슴에 가벼운 통증을 느꼈다.

우리는 며칠에 걸쳐 그녀를 입양시킨 기관과 관계 부서를 탐문했다. 그러나 그녀가 정확히 어느 시기에, 어느 장소에 버려졌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그녀에게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통해 부모를 찾는 길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자인 그녀는 이미 그런 식으로 자신을 노출시켜서 한국측 매스컴으로부터 굉장한 시달림을 당한 경우를 너무나 많이 관찰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하면서 생부모를 찾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그러면서 그녀는 답배를 한 대 피워도 되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담배 피우는 여성을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한국 남성 앞에서 담배를 안 피우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참 묘한 기분이에요. 서울 거리의 많은 한국인들이 나에게 길을 물어요.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얼굴만 한국인인 저에게요.”

“……….”

“사실, 난 한국인도 스웨덴인도 아니지요.”

긴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나는 그만 마지막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그녀는 왼쪽 눈이 사팔뜨기와 비슷했던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그랬습니까?”

“아닙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사진에 의하면, 나는 태어날 때 아주 정상이었지요. 그런데 한국에서 살았던 2년 동안 고아원에 있으면서 영양실조로 이렇게 되었습니다.”

나는 무거운 가슴의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한 10여 분이 지난 다음에 입을 열었다.

“공개적으로 찾지 않는다면, 제가 도와드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냥 이대로 살지요, 뭐. 하여간 대단히 감사합니다. 스웨덴에 오시면 친구분과 함께 저도 꼭 만나 주세요.”

그녀의 커피와 나의 녹차는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