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함정

                                                                                             고 봉 진

 신문을 매일 읽고 있으면 가끔 생소한 어휘가 새로 등장한다. 새로운 어떤 사물이나 상황을 표현하기 위한 말들이다. 평소에 자주 사용하지 않던 우리말 중에서 적절한 단어를 골라 다시 쓰거나 어떤 경우에는 새로 조어를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동아리’니 ‘새내기’니 하는 말이라던가 ‘대선(大選)’이니 ‘극일(克日)’이니 하는 말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말의 대부분은 남의 나라에서 새로 쓰기 시작한 말을 우리말로 옮겨 놓는 것들이다. 그 중에서 우리말로 간단히 옮기기에 아주 곤란한 것들은 원어의 음을 그대로 표기하거나, 심한 경우에는 첫머리 음 몇 자로 간단하게 줄여서 쓰기도 한다. ‘풀뿌리 운동’이니 ‘징검다리 휴일’이니 ‘거품 경제’ 하는 것들이나, ‘시너지(synergy)’니 ‘사이버(cyber)’니 ‘인푸라(infrastructure)’니 하는 말들이 그것에 해당한다.

이런 새로운 말 중에는 잘못 옮긴 말도 많다. 예로 든 말 가운데도 그런 잘못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말로 ‘풀뿌리’라고 하면 그냥 풀뿌리를 뜻할 뿐 다른 의미는 없다. 그런데 원어인 ‘grass roots’라는 말은 하나의 명사로 ‘지표에 가까운 토양’이라는 뜻이고, 그 뜻에서 파생된 ‘기반’, ‘근본’, ‘선거구민’, ‘일반 대중’ 등 여러 의미를 갖고 있으나, 정작 ‘풀뿌리’라는 뜻으로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 더구나 ‘grass-roots’라고 이음표로 연결된 것은 형용사로서 ‘일반 대중의’라는 관용적인 의미만 갖고 있다. 그러므로 제대로 번역을 한다면 ‘풀뿌리 운동’이란 ‘일반 대중 운동’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징검다리 연휴’라는 말은 일본에서 사용하는 비석 연휴(飛石連休)라는 말을 직역해서 옮겨 온 말이다. 영어에서는 ‘stepping-stone holidays’라는 말은 쓰지 않는 걸 보면 일본 사람들의 조어다. 또 우리 나라나 일본에서 ‘샌드위치 홀리데이’라는 말도 더러 쓰는데, 사전에 의하면 이 말도 정작 영어권에서는 사용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또 야구 경기 기사에 자주 등장하는 ‘나이터’라는 말이 있다. ‘nighter’로나 표기할 듯한 이 말은 ‘야간에 하는 경기’라는 뜻으로 쓰이는데, 야간 야구 경기의 발상지 미국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순 일본제 영어라고 한다. 골프계에서 흔히 쓰는 용어 ‘싱글(single)’도 일본인들이 만든 영어식 표현이다.

좋은 표현이면 일본말의 직역이나 그들이 만든 사이비 외국어의 차용이라고 구태여 나쁘다 할 것은 없다. 그러나 반일이니 극일을 소리 높여 외치는 젊은 기자들이 일본식 표현을 즐겨 그대로 차용해 쓰는 것을 보면 좀 어리둥절해지는 기분이다.

처음에는 보고 듣기에 생경하게 느껴지고 거부감이 가는 이런 말들도 자꾸 반복해서 접하다 보면 그만 익숙해져서 그 말을 쓰지 않으면 전달이 잘 안 되고,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표현이 부족한 것 같은 답답한 느낌이 드는 일들이 늘어간다. 그러나 그러한 말들도 대부분이 다른 여러 가지 풍조와 같이 유행성을 띄고 있어, 얼마간 세월이 흘러 세태가 바뀌면 어쩐지 낡은 분위기를 풍기게 되면서 새로 등장한 더 참신한 시대적 언어에 밀려 사라지는 경우가 잦다.

그래서 그런지 남보다 앞서 새로 유행하는 어휘를 찾아 자주 사용하는 사람들을 대하면 어쩐지 경박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그러한 어휘 중에는 긴 생명력을 가진 것도 있어 새로운 우리말로 추가되어 사전에 오르기도 한다.

사실은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언어라는 것이 다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 하나가 그와 같은 절차를 거쳐 생겨나서 남아 난 어휘들로 대부분 형성된 것이다. 그러니 새로운 말의 등장에 대해서 지나친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것은 우리말이 나날이 변화해 가는 우리 생활 환경을 반영하면서 점점 더 풍부해지고 사용하기 편리한 언어로 성장해 간다는 것을 뜻한다. 다만 그 말의 성격과 의미를 충분히 파악하고 그 품위를 찬찬히 검토한 후에 그것을 사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선택하는 신중한 자세가 바람직하다.

말을 신중하게 골라 쓰는 태도는 새로운 말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언어 생활 전반에 두루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말이란 그 뜻이 단순한 원시 언어(primitive word)도 있지만 그 말의 형성 과정이나 역사적인 추이에 따라 뜻이 아주 다양하고 복잡하게 형성된 것들이 많다.

어떤 말에는 일정한 세계관이나 가치관이 내재된 것들도 있다. 우리가 늘 무심히 쓰는 말 중에 ‘전생’이니 ‘업보’니 하는 말이라던가, ‘군자’니 ‘양반’이니 하는 말들도 사실은 그런 종류에 속한다. 그런 말들은 우리들의 오랜 전통적인 정신이나 정서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근세 이후 서양 문물의 대량 이입은 새로운 말들의 난입을 가져왔다. 새로 들어오거나 만들어진 말들 중에서는 자칫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고 쓰다가는 뜻하지 않은 오해를 사게 되는 경우나, 스스로 어떤 사상이나 입장에 빠지게 되는 올가미가 딸린 말들이 많다.

‘부르주아’니 ‘프롤레타리아’라는 언사도 그런 말에 속한다. 단순하게 유산 계급이니 무산 계급이니 하는 뜻으로 쓰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이 말은 ‘계급 투쟁’이니 ‘노동 잉여가치설’이니 하는 말과 같이 마르크스 철학의 중심 개념이다. 그 말은 엄밀하게 따지면 실체가 없는 모호한 말일 뿐만 아니라, 이제는 역사적인 문맥에서도 그 수명을 다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즐겨 사용해 온 ‘진보’니 ‘반동’이니 하는 말의 관습적인 의미도 이제는 역전된 감이 없지 않다. 동구 쪽이나 구 소련인 러시아의 정정(政情)을 이야기할 때는 같은 말을 기왕의 뜻과 전혀 반대의 경우로 사용하기도 한다. ‘인민민주주의’니 ‘사회주의 리얼리즘’ 같은 말도 허사(虛辭) 내지는 허사(噓辭)가 된지 오래다. 그런 종류의 말들을 아직도 따옴표 속에 넣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학자들을 보면, 마르크스가 예언한 천년 지복(至福)의 유토피아 도래를 아직도 맹신하는 사람으로 간주를 해야 할건지 말아야 할건지 당혹감을 금할 수 없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은 인간의 정신을 사로잡아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방해하는 네 가지 ‘우상(偶像)-idola’이 있다고 했다. 그 중에 하나로 사람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로 생기는 우상을 꼽았다. 즉 말을 부정하게 그리고 부적절하게 정의하고 쓰는 데서 발생하는 오류다. 이것을 베이컨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서로 모여서 접촉을 하고 거래를 하는 곳에 따르기 마련이란 뜻으로 ‘시장(市場)의 우상-idola fori’이라고 명명했다.

진리 탐구의 길에서 극복되어야 할 말의 함정을 우상이라는 말로 표현한 것은 그가 종교개혁 시대에 살았던 탓이라고들 본다. 당시의 로마 가톨릭은 우상을 배격하는 일신교이면서도 예수의 십자가상이라던가 마리아상, 성체, 성혈로 상징되는 빵이나 포도주 등의 우상이 그 신앙의 중심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것을 인정하고 모시는 동안에는 교회가 규정하고 가르치는 세계관이나 인생관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종교개혁이란 바로 그러한 우상파괴 운동이었다. 그는 사람이 일상적인 언어 생활 속에 자기도 모르게 모시고 있는 ‘우상’을 발견하고 그것을 파괴하려고 한 것이다.

말이 얼마나 사람 개개인의 정신을 좌우하며, 그들 상호간의 삶에 영향을 주는가를 밝힌 그의 주장은, 오늘날 풍미하고 있는 구조주의적 언어관의 선구적인 한 측면이 엿보이기도 한다.

세상이 급속하게 바뀔 때일수록 우리가 무심히 일상적으로 사용해 오던 말들을 자꾸 새로 검정해 볼 필요가 있다. 시대가 변하여 많은 것들이 어둠의 그늘에서 벗어나 그 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데도, 잘못 만들어진 말의 함정에 빠져 그 ‘우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꼴을 보인다면 어리석고 미련한 짓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