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의 뒷모습

                                                                                                  변 해 명

 김포공항이 들판 너머 아득히 바라보이는, 인천의 최북단 길을 아침 저녁 차를 몰고 오가며 도시와 농촌의 변화를 지켜본다.

길 우측은 고층아파트가 밀집한 신도시 주거지역이고, 좌측은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농촌의 들판이다.

아침에 붉은 해가 들판 위로 솟아오르는 것이 보이고, 골안개가 들판을 덮으며 피어오르는 전경도, 바람이 불면 황금물결이 출렁이는 눈부신 파도의 일렁임도 보이고… 잊고 살아온 농촌의 가을 풍경과 자연의 변화를 볼 수 있어 들판을 끼고 달리는 시간은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다.

벼 베기가 시작되자 벼를 베는 기계차가 여기저기 보이고, 우리 농촌의 발전한 모습을 자랑이라도 하듯 순식간에 가을걷이가 진행되는 모습도 흐뭇했다. 그런데 길가쪽 몇 마지기의 논에는 옛날 방식대로 낫으로 벼를 베어 논바닥에 가지런히 뉘어 말리는 정경이 보였다. 그것이 내 눈에는 신기하게까지 보였다.

우리의 옛 농촌을 보는 즐거움, 그곳에는 농부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것 같았다. 고향의 향수를 느끼듯 그 모습이 유난히 정다웠다.

노적가리가 쌓인 마당에서 관솔불을 밝히고 밤이 깊도록 타작하는 소리가 나던, 부으릉 부으릉… 타작기를 발로 밟으며 볏단을 손으로 돌려 털며, 풍년의 기쁨과 수확의 만족함으로 왁자했던 타작 풍경. 이제는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옛 기억 속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그 논에서 볏단이 다 거두어진 어느 날 허수아비 하나가 나타난 것이다.

곡식이 여물어갈 때에도 없던 허수아비가 참새의 그림자도 없는 들판에 나타나다니, 엉뚱하고 장난기 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볏짚으로 엮어진 몸통에 검은 등산모를 푹 눌러 쓰고 붉은 등산 점퍼를 입은 허수아비. 두 팔을 활짝 벌리지도 못하고 열덟 八자로 늘어뜨린 채 뒷모습만 보이고 서 있는 모습이 다른 허수아비와 다른 모습이었다.

처음엔 텅 빈 들이 너무 허전해 농부가 그저 향수에 젖어 세워논 허수아비쯤으로 보았다. 그러나 자주 바라보게 되면서 왠지 그 허수아비가 그 논의 농부를 닮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보면 볼수록 외로워보이는 허수아비. 평생 몸으로 농사를 지었지만 기계에 밀려 수확의 기쁨보다 고달픔이 더 큰 농부의 모습. 땅을 알고 땅을 사랑한 농부, 그러나 그는 50년 남의 땅에 시간을 심고 먼 하늘 바람에 훠이훠이 참새 한 번 쫓아보지 못한 실향의 아픔을 지닌 농부로 다가오기도 했다.

홀로 남아 잘려간 시간의 빈 그루터기를 보며 이제는 진정 꿈꿀 수 있는 시간이 없음을 절망하며 자신의 아픔을 달래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허수아비는 참새도 곡식도 아닌 메마른 대지만을 지켜보고 있는 것일 게다.

나는 허수아비의 뒷모습에서 버리는 연습에 대한 마침표를 찍고 있는 농부의 모습을 보았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과 버려야 하는 것에 대한 애절함, 그래서 허수아비처럼 텅 빈 마음으로 서보고 싶은 것이었을까? 언제나 빈손 인 채 서게 되는 농부는 그래서 빈들에 홀로 서서 침묵으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리라.

비록 겨울 문턱에서 현실을 외면하고 서 있는 허수아비이지만, 그 허수아비는 결코 자신의 임무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아무 때나 자리를 지키겠다고 나서는 머리가 빈 현대판 허수아비가 아님을 느끼게 한다.

오늘도 허수아비의 늘어진 팔 사이로 바람이 지나고 있다. 나도 빈 들가를 지나며 낮게 드리우는 하늘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