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

                                                                                            김 채 은

 큰길의 건널목 가장자리에 할머니 한 분이 서 계신다. 자그마한 손가방을 한 손에 들고 나무에 기대어 서 있는 모습이 생전의 어머니와 너무 닮아서 한순간 놀라 바라보았다. 긴 하루가 너무 심심해 거리구경을 나오신 걸까, 경고등만 껌벅이는 6차선 길을 혼자 건너기 겁나서 망설이고 계신 걸까. 작은 키, 여윈 몸매, 굽은 허리까지 볼수록 참 만년의 어머니다.

길을 건너가긴 해야겠는데 불쑥 떠오른 어머니 생각과 공연히 마음을 켕기게 하는 할머니 때문에 선뜻 찻길로 들어설 수가 없다. 조금 떨어진 나무에 나도 덩달아 기대 서서 잠시 할머니의 모습을 지켜본다. 조금 있으니 우두커니 서 있던 할머니가 무어라 중얼거리며 이쪽저쪽 길을 살핀다. 그런 모습이 아무래도 구경이나 하러 나온 것 같지는 않아 보여서 다가가 건너가실 거냐고 여쭤보았다. 할머니는 “어째 차가 그치질 않어…….”라며 심란한 얼굴로 돌아다본다.

모셔다드리겠다고 팔을 내미니 두 말 않고 바짝 다가선다. 그런 할머니의 저쪽 손에는 짤막한 지팡이가 들려 있다. 지팡이라니… 그걸 보자, 이번엔 어머니의 굽은 허리가 떠오르며 느닷없이 서러운 마음까지 인다. 내가 열 살일 때 이미 쉰 살이던 어머니는 허리와 다리가 아파서 늘 절절 맸다. 나더러 올라서서 밟으라고 하거나, 방 비를 거꾸로 들고 두들겨 달라고 할 때마다 겁나고 근심되고 슬프기까지 했다. 어머니의 허리는 만년에 이르러 드디어 굽어지고 말았다. 가뜩이나 작은 키가 조금씩 조금씩 줄어들더니 나중에는 내 가슴께도 미치지 못할 만큼 작아져 버려서는 나를 무슨 산이나 바라보듯 아득한 눈으로 올려다보곤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어쩌다 집 밖엘 나가게 되면 허리를 펴고 꼿꼿이 걸으려 했기 때문에 힘들어 하는 그 모습은 차마 보기 괴로울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결코 지팡이는 짚으려 하지 않았다. 몇 번이나 마련해 드리고 사용하기를 권했지만 그때마다 무슨 못 볼 것이라도 되는 듯 안 뵈는 곳에다 치워버리고는 단 한 번도 그것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보다 못해 곁에서 부축이라도 하려 들면 두 손을 홰홰 내저으며 제발 그냥 놔 두어 달라고 오히려 사정을 해올 정도였다.

옛 어머니들이 다 그랬듯, 어머니도 손이 쉬면 큰 일이 나는 줄 아는 분이었다. 일년에 한 번 오기도 힘든 나들이였지만, 우리 집에 와 계신 동안에도 괜한 일거리를 만들어서 뜯고 꿰매고 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바늘에 실을 꿰는 일이었다. 아이들이 돕겠다고 나섰고 나도 대여섯 개의 바늘에 미리 실을 꿰어 실패에 꽂아놓고는 했는데 어머니는 그걸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놀이삼아 하는 일이니 그냥 놔두라는 것이다. 일을 하다가 어쩐지 조용한 듯해서 슬그머니 돌아다보면 어머니는 뵈지 않는 바늘 귀에 헛손질을 하느라고 내가 바라보는 줄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가끔 너털웃음을 한바탕씩 웃는 일이 있었으니 그건 헛손질 한두 번만에 실이 바늘 귀 속으로 쏙 들어가 줬을 때였다. 파안대소하던 그 얼굴이라니……. 돋보기를 쓰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으나 어머니는 지팡이처럼 돋보기를 어딘가에 넣어두고는 절대로 그것을 쓰려들지 않았다. 제발 좀 그러지 말라고 숱하게 말씀드려 봤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다리가 불편한 할머니를 모시고 길을 건너는 일은 생각만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지팡이를 짚고 또 내가 부축까지 했는데도 중앙선 부근까지 와서 그만 주저앉아버린다. 이런 몸으로 어떻게 혼자 집을 나섰는지 참으로 딱한 일이다. 길 건너에 있는 경로당에 가는 길인데, 며칠 몸살을 앓고 났더니 이렇다며 쓸쓸하게 웃는다. 쪽을 쪄 비녀를 꽂은 머리가 온전히 백발이다.

숱 많고 윤기 흐르던 어머니의 머리는 일흔을 전후해서야 세기 시작했다. 그렇게 늦게 나기 시작했는데도 어머니는 흰머리를 무던히도 싫어했다. 뾰족이 솟는 흰머리를 족집게로 잡기 좋을 만큼 자라게 두었다가는 어느 하루 날을 잡아 남김없이 뽑아버리곤 하는 것이었다. 경대 앞에 쪼그리고 앉아, 검은 머리 틈에서 빛나는 하얀 머릿카락을 노려보며 “흥, 네가 아주 서기(瑞氣)까지 말하는구나.”라거나 “에잇!” 하고 기합까지 넣으며 머리를 뽑는 모습은 우습기도 하고 딱하기도 했다. 흰머리는 주로 정수리 부근에 났다. 계속 뽑다보니 그 언저리가 휑하니 드러나 보이게까지 되었는데도 어머니에겐 그런 모습이 흰머리가 있는 것보다 낫게 여겨지는가 보았다. 혹시라도 누가, 차라리 염색을 하라는 말이라도 하면 원 별 말을 다 들어본다는 듯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어머니도 만년에 이르러 흰머리가 워낙 많아지자 할 수 없이 그냥 지내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우리 집에 오셨던 어느 날이었다. 거울 앞에서 물끄러미 당신 얼굴을 들여다보다 말고 “야이, 사람이 얼마나 아프게 되면 죽기까지 한다냐.” 하고 불쑥 물어오는 바람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버린 일도 있었다.

삶에 대해 특별히 연연해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죽음 앞에서 초연할 수도 없었을 어머니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무력하게 그냥 있을 수만은 없었던가 보다. 그래서 지팡이를 감추고 돋보기를 치우고 모질게 흰머리를 뽑으며 ‘아직, 아직 나는 괜찮아.’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런 고집들은 속절없이 늙어 초라해진 자신을,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지탱해 보려는 눈물겨운 자존심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떠나시고 수 년이 흐른 어느 해의 제삿날 저녁이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그런 고집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때 생각이나 해 봤을까.

머리 속으로는 어머니의 환영을 쫓고, 입으로는 할머니와 얘기를 나누며 바람 부는 길 가운데에 앉아 있던 그 시간이 일 분인지 오 분인지 가늠되지 않는다.

얼마 뒤 할머니를 따라 일어선 나는 생전의 어머니를 부축하지 못한 한풀이라도 하듯 낯선 할머니를 두 팔로 끌어안고 나머지 찻길을 천천히 건너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