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李泰俊)의

‘밤’·‘파초’

 

일  시:1997년 9월 20일

장  소:수필문우회 회의실

참석 인원:21명

사  회:허세욱

정  리:권일주

 

사회 : 1997년 겨울호이며 계간 수필 제10호를 위한 합평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대상 작품은 이태준님의 ‘밤’과 ‘파초’ 두 작품입니다.

먼저 문학사적인 면에서의 이태준님을 잠시 돌아보겠습니다.

대부분의 평자들은 그가 우리 나라 신문학사에서 순수소설을 최초로 쓴 사람이며 순수문학자라고 꼽아왔습니다. 또 어떤 이는 그를 가리켜 김동인과 함께 단편의 완성자이며 문장파의 주제자이다, 시(詩)에서는 지용(정지용)이요 소설에서는 태준이다 라는 평가를 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정치 주변에서 여러 번의 부침을 반복했습니다.

1940년대 말에 친일 성향을 보였고, 광복과 함께 좌익작가 활동에 가담했다가 1946년 월북하여 소련을 방문하는 등 상당한 기간 동안 북노당에서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1959년 무렵에 북노당에서 숙청을 당했고, 그때부터 원산 마천령 탄광에서 강제 노동을 했습니다. 현재까지 그의 생사가 불분명하지만, 짐작컨대 이미 유명을 달리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글이 해금(解禁)된 것은 1987년입니다. 그 후 『이태준 전집』이 이미 나왔고, 『이태준 문학연구』라는 책이 발간되었으며, 상허(尙虛) 문학회가 발족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상허 문학비(尙虛 文學碑) 건립 움직임이 한쪽에서 일고 있기도 합니다.

이태준님의 약력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1904년 강원도 철원에서 출생하여 1909년 망명길의 아버지를 따라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했습니다. 그 후 귀국하여 1918년에 철원 공명학교를 졸업했고, 1920년에서 1924년까지 휘문고등보통학교를 다녔으며, 1926년 동경 상지대 문과에 입학했다가 다음 해에 중퇴했습니다. 그 후 다시 귀국하여 ‘개벽’사에 입사했으며, 1932년부터 1937년까지 이화여전 작문 강사로 일했습니다.

그의 문단 활동을 보면 1934년에 첫 단편집 『달밤』을 간행했고, 1939년부터 1941년까지 당시 영향력이 많았던 문장(文章)지를 주간했습니다.

그가 친일 문학단체에 가담한 것은 1943년 무렵입니다. 조선문인협회, 황군위문작가단에 가입했었습니다만, 그 해에 붓을 꺾고 강원도 철원에 은거해 있었습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좌익운동에 가담하여 이남에서의 마지막 작품인 ‘해방 전야’를 발표한 후에 1946년 월북했습니다.

작품집으로는 1941년에 57편의 수필이 실린 『무서록』이 박문서관에서 나왔지만, 단편은 ‘오몽녀(五夢女)’가 1926년 조선문단에 최초로 입선했습니다.

대강 이상과 같이 상허의 활동 상황과 오늘날까지의 처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윤모촌, 유혜자, 최병호 세 분을 지정 토론자로 모셨습니다. 위 두 작품에 대한 주제파악을 선행한 다음에 이 작품들에 투영된 당시의 사회 상황과 주제와의 관계가 어떠한가를 살펴보고, 그 다음에 우리  나라 신문학의 대가이며 최고의 문장가라고 알려진 이분의 문장가적인 실력을 재분석, 확인해 보려고 합니다.

유혜자 선생께서 작품을 읽어주시겠습니다.

 

 

(본문)

 

 

동경서 조선 올 때면 늘 밤을 새삼스럽게 느끼곤 하였다.

저기도 주야가 있지만 전등 없는 정거장을 지나보지 못하다가 부산을 떠나서부터는 가끔 불시 정차(不時停車) 같은 캄캄한 곳에 차가 서기 때문이다. 무슨 고장인가 하고 내다보면 박쥐처럼 오락가락하는 역원들이 있고 한참 둘러보면 어느 끝에고 깜박깜박하는 남폿불도 보인다.

밤, 어둠의 밤 그대로구나! 하고 밤의 사진이 아니라 밤의 실물을 느끼곤 하였다. 그리고 정말 고향에 돌아오는 것 같은 아늑함을 그 잠잠한 어두운 마을 속에서 품이 벌게 받는 듯하였다.

“아이 정거장이 쓸쓸하긴 하이…….”

하고 서글퍼하는 손님도 있지만 불 밝은 도시에서 지냈고 불투성이 정거장만 지나오면서 시달릴 대로 시달린 내 신경에는 그렇게 캄캄한 정거장에 머물러주는 것이 도리어 고마웠다. 훌륭한 산수(山水) 앞에 서 주는 것만 못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불 없는 캄캄한 밤을 즐겨 버릇하였다. 그 후 동경 가서는 불 없는 노는 회(會)를 만들어 여러 친구와 다음날 해가 돌아오도록 긴 어둠을 즐겨 본 일도 있다.

 

밤이 오는 것은 날마다 보면서도 날마다 모르는 새다. 그러기 때문에 낮에서부터 정좌하여 기다려도 본다. 닫힌 문을 그냥 들어서는 완연한 밤걸음이 있다. 벽에 걸린 사진에서 어머님 얼굴을 데려가 버리고 책상 위에 혼자 끝까지 눈을 크게 뜨던 꽃송이도 감겨버리고 나중에는 나를 심산(深山)에 옮겨다 놓는다.

그러나 나는 벌레 우는 소리를 만나고 이제 찾아올 꿈을 기다리고 그리고 이슥하여선 닭 우는 소리를 먼 마을에 듣기도 한다. *

 

芭 蕉

 

작년 봄에 이웃에서 파초 한 그루를 사 왔다. 얻어온 것도 두어 뿌리 있었지만 모두 어미뿌리에서 새로 찢어낸 것들로 앉아서나 들여다볼 만한 키들이요 ‘요게 언제 자라서 키 큰 내가 들어선 만치 그늘이 지나!’ 생각할 때는 적이 한심하였다.

그래 지나다닐 때마다 눈을 빼앗기던 이웃집 큰 파초를 그예 사 오고야 만 것이다. 워낙 크기도 했지만 파초는 소 선지가 제일 좋은 거름이란 말을 듣고 선지는 물론이고 생선 씻은 물, 깻묵물 같은 것을 틈틈이 주었더니 작년 당년으로 성북동에선 제일 큰 파초가 되었고 올 봄에는 새끼를 다섯이나 뜯어내었다. 그런 것이 올 여름에도 그냥 그 기운으로 장차게 자라 지금은 아마 제일 높은 가지는 열두 자도 훨씬 더 넘을 만치 지붕과 함께 솟아서 퍼런 공중에 드리웠다.

지나는 사람마다 “이렇게 큰 파초는 처음 봤군!” 하고 우러러보는 것이다. 나는 그 밑에 의자를 놓고 가끔 남국의 정조(情調)를 명상한다.

파초는 언제 보아도 좋은 화초다. 폭염 아래서도 그의 푸르고 싱그러운 그늘은, 눈을 씻어줌이 물보다 더 서늘한 것이며 비오는 날 다른 화초들은 입을 담은 듯 우울할 때 파초만은 은은히 빗방울을 퉁기어 주렴(珠簾) 안에 누었으되 듣는 이의 마음에까지 비를 뿌리고도 남는다. 가슴에 비가 뿌리되 옷은 젖지 않는 그 서늘함, 파초를 가꾸는 이 비를 기다림이 여기 있을 것이다.

 

오늘 앞집 사람이 일찍 찾아와 보자 하였다. 나가니

“거 저 파초 파십시오.” 한다

“팔다니요?”

“저거 이젠 팔아버리서야 합니다. 저렇게 꽃이 나온 건 다 큰 표구요, 내년엔 영락없이 죽습니다. 그건 제가 많이 당해본 걸입쇼.” 한다.

“죽을 때 죽더라도 보는 날까진 봐야지 않소?”

“그까짓 인제 둬 달 더 보자구 그냥 두세요? 지금 팔면 파초가 세가 나 저렇게 큰 것 오 원도 더 받습니다. …누가 마침 큰 걸 하나 구한다죠. 그까짓 슬쩍 팔아버리시죠.”

생각하면 고마운 일이다. 이왕 죽을 것을 가지고 돈이라도 한 오 원 만들어 쓰라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마음이 얼른 쏠리지 않는다.

“그까짓거 팔아 뭘 하우.”

“아 오 원쯤 받으셔서 미닫이에 비 뿌리지 않게 챙이나 해 다시죠.”

그는 내가 서재를 짓고 챙을 해 달지 않는다고 자기 일처럼 성화하던 사람이다.

나는 챙을 하면 파초에 비 맞는 소리가 안 들린다고 몇 번 설명하였으나 그는 종시 객쩍은 소리로밖에 안 듣는 모양이었다.

그는 오늘 오후에도 다시 한 번 와서,

“거 지금 좋은 작자가 있는뎁쇼…….” 하고 입맛을 다시었다.

정말 파초가 꽃을 피면 열대지방과 달라 한 번 말랐다가는 다시 소생하지 못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마당에서, 아니 내 방 미닫이 앞에서 나와 두 여름을 났고 이제 그 발육이 절정에 올라 꽃이 핀 것이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그가 한 번 꽃을 피웠으니 죽은들 어떠리! 하물며 한마당 수북하게 새순이 솟아오름에랴!

소를 길러 일을 시키고 늙으면 팔고 사간 사람이 잡으면 그 고기를 사다 먹고 하는 우리의 습관이라 이제 죽을 운명엣 파초니 오 원이라도 받고 팔아준다는 사람이 그 혼자 드러나게 모진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무심코 바람에 너훌거리는 파초를 보고 그 눈으로 그 사람의 눈을 볼 때 나는 내 눈이 뜨거웠다.

“어서 가슈. 그리구 올가을엔 움이나 작년보다 더 깊숙하게 파주슈.”

“참 딱하십니다.”

그는 입맛을 다시며 돌아갔다. *

 

 

 

사회 : 『무서록』에 실린 57편은 대체로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에 쓰여진 것입니다. 이 작품들도 상허가 동경에서 돌아왔던 1927년에서 1928년에 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두 작품을 함께 엮어 주제를 먼저 탐색해 주십시오.

윤모촌 :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개인적인 소감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상허의 글을 오늘 합평회에 올려놓고 느끼는 소감은 우리가 참으로 불행한 시대를 살았고 그것을 아직도 곱씹어야 하는구나 해서 가슴이 아픕니다. 저쪽에서도 대접을 못 받았고, 이쪽에서도 제대로 대접을 할 수 없었던 우리의 불행이 억울하기까지 합니다. 새삼스럽게 시대적 아픔이 되살아나서 한 말씀드렸습니다.

‘밤’은 원고지 5장에 불과할 짧은 글 속에 시대적 상황과 그 정황까지도 다 담았다고 생각합니다. 조국을 잃어버린 식민시대의 한 지식인의 좌절과 절망, 그러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점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파초’는 주제의식이 ‘밤’과는 다르게 문사의 운치가 드러나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옛 선인들이 정원수로 흔히 벽오동과 파초를 심었었는데, 이 ‘파초’를 읽으며 그런 문사다운 냄새와 향기를 느꼈습니다.

최병호 : ‘밤’에서 작자는 어둠을 ‘닫힌 문을 들어서는 완연한 발걸음’이라는 놀라운 표현을 했습니다. 그 어둠은 벽에 걸린 어머님의 얼굴을 데려가고 눈을 크게 뜨던 꽃송이도 감겨버리고 나를 심산에 옮겨 놓아, 나는 벌레우는 소리를 만나고 이제 찾아올 꿈을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즉 어둠 속에서 나의 뜬눈 의식을 확인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밤’의 주제는 어둠이 주는, 또는 어둠 속에 깃든 생명감이나 모태감이라고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또 ‘파초’는 이해타산을 초월한 반세속적인 것에 주목하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까짓 팔아서 뭘 하우’ 하니, ‘한 오 원쯤 받으셔서 미닫이에 비뿌리지 않게 챙이나 해 다시지요’ 등의 대화체에서 알 수 있듯이, 파초 잎을 두들기는 빗소리, 다시 말하면 자연의 소리에 젖고 싶은 깨끗한 관조적인 서정, 서정감이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유혜자 : ‘밤’에 대해서는 두 분 선생님들과 생각이 같아서 반복하는 느낌이 듭니다만, ‘밤이 오는 것을 날마다 보면서도…’에서부터 끝 문장까지는 시(詩)로 착각할 정도로 시적 상상력이 풍부합니다. 이 글을 쓴 연대로 볼 때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지만, ‘밤’은 식민지 시대의 불 없고 어두운 시대이지만, 애국심을 바탕에 깔고 새벽닭처럼 희망을 갖는다 라는 것이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또 ‘파초’에서는 주제이자 매우 특징적인 것이 적절한 대화체를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그 대화체가 주는 설득력이 매우 강합니다. 현실적 삶을 초탈한 여유 있는 사람들의 풍류라고나 할까, 지조에 살고 신념으로 죽고 미덕으로 살자는 등의 삶의 참 의미를 찾는 마음을 그려냈다고나 할까요. 우리네 선인들이 그 동안 써오시던 그런 것들을 잘 그려낸 문인화같이 느꼈습니다.

 

사회 : 대체적으로 세 분 모두 ‘밤’은 시대적인 상황으로, 그리고 ‘파초’는 문인적인 정취로 보셨습니다. 일반 회원들께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정진권 :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저는 ‘밤’을 읽고 그것이 밤의, 어둠의 아늑함을 그린 것이 주제라고 생각했는데, 지정 토론자들께서는 한결같이 시대상황을 그린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느 장면이, 또 어떤 표현이 그 시대를 상징하거나 비유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윤모촌 : 앞엣 부분에 ‘밤, 어둠의 밤 그대로구나! 하고 밤의 사진이 아니라 밤의 실물을 느끼곤 하였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시대상황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은유적으로 시대상황을 표현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밑줄 ‘그리고 정말 고향에 돌아오는 것 같은 아늑함을 그 잠잠한 어두운 마을 속에서 품이 벌게 받는 듯하였다’라는 문장도 조국에 대한 애정을 반어적으로 표시한 부분이라고 보았습니다. 그 외에도 아래로 좀더 내려가서 ‘그때부터 나는 불 없는 캄캄한 밤을 즐겨 버릇하였다’ 이하 부분에도 조국을 잃어버린 사람의 일종의 자학이랄까 절망이 배어 있습니다. 어둠 속에 몸과 마음이, 정신과 육체가 얼마나 깊이 잠겨 있으면 이렇게 반어적으로 표현을 했겠습니까? 그 외에도 전체적인 글의 정황이, 이 글이 지니는 정황이 식민지 백성이 아니고서는 이런 표현이 안 된다고 봅니다. 그런 울분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유혜자 : ‘그때부터 나는 불 없는 캄캄한 밤을 즐겨 버릇하였다’ 이 부분에 모든 것이 함축되었다고 봅니다.

정진권 : 질문 하나를 더 하고 끝내겠습니다. 만약 그 어둠이 식민지 시대의 어려운 상황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한다면, 어둠 속에 싸여 있는 마을을 보고 비애를 느껴야지 어떻게 아늑함을 느낄 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윤모촌 : 그것은 반어적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둠 속에 살던 습성이 별안간 밝은 곳에 나가면 오히려 거부반응이 오지요. 어둠 속에 살던 습성 때문에 차라리 어둠 속에 있는 것이 마음 편하다 라는 것으로 조국애를 반어적으로 표현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견강부회(牽强附會)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아까 상허의 연보에서도 나왔듯이 이분의 사상이라든가 여러 가지 사정을 볼 때 드러내놓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것인데, 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 그것을 압축해서 이렇게 은유적으로 또는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고봉진 :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면 읽는 사람의 몫입니다. 읽는 사람이 어떻게 읽고 해석하느냐가 중요한 것 아닙니까. 저는 이 글을 두 가지 측면으로 다 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괴로운 시대, 그 괴로운 상황을 이야기할 수도 있고, ‘참 어둡구나’ 하는 어두운 밤 그 자체를 이야기 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밤’의 주제를 시대적 어둠이라고 해석한다면, 이 작품은 그렇게 뛰어난 작품이 되지 못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석하면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한다든가, 그런 것에 대한 주장이 아무것도 없고 또 그 상황의 비참함을 이야기한 구석도 없습니다. 읽는 사람이 추측할 뿐이지요. 그것이 바로 작품으로서 뛰어난 것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점이지요. 반면에 이 작품을 밤, 어둠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보면, 굉장히 공감이 가고 아름다우며 뛰어난 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해석은 여러 가지일 수가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밤 그 자체를 이야기한 것으로 밤과 같은 조선, 그런 조선의 정겨움 같은 것을 이야기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오히려 문학적인 해석이라고 봅니다.

 

사회 : 아무튼 지금 말씀하신 고봉진 선생께서도 낮은 동경으로 보았고, 밤은 조선으로 본 것에는 동의하시는 것이지요. 일단 시대상황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말씁입니다.

유경환 : 저도 이 글은 상징에 대한 해석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암시에 대한 해석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한참을 둘러보면 어느 끝에고 깜빡깜빡하는 남폿불도 보인다’라고 했는데, 여기의 남폿불은 식민지 시대의 사회상황을, 즉 어두움을 상징적으로 쓴 것이라고 봅니다. 또 ‘파초’에서는 파초는 꽃이 피고 나면 곧 죽으니까 팔라고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한 오원쯤 받으셔서 미닫이에 비뿌리지 않게 챙이나 해 다시지요’ 했습니다. 챙이라는 것은 비 가리개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파초를 팔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곧 전멸해 버리고 말 조국의 운명이지만 그래도 지키겠다 라는 것의 암시입니다. 그리고 ‘불 없이 노는 회’를 만들었다는 중요한 대목도 있습니다. 불이 없이 어떻게 놀겠습니까? 어둠에 대해, 어둠 속에서 토론을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식민지 시대상황의 어둠을 토론했다는 것을 암시한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시헌 : 이분은 수필보다는 소설을 더 잘 쓰고 또 많이 쓰셨다고 하는데, 소설 속에는 조국에 대한 이분의 정신이 어떻게 나타나 있는지 종합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분이 해방되기 전에 친일단체에 가담했다고 하는데, 그 사실과 이분의 조국애를 어떻게 관련시켜야 하는지도 의문 사항입니다.

 

사회 : 제가 보고드린 사항 가운데 이분의 친일활동이라는 것은 표현이 좀 다릅니다만, 친일적인 성향을 띄었다는 말이지 친일활동을 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 시기도 2차대전 후기에 그런 활동이 있었지 일본에서 돌아왔을 이 당시에는 상당히 애국적이었다고 합니다.

박재식 : 저도 처음에는 이 글이 식민지 시대의 배경, 거기에서 오는 자괴감, 억울함 등을 나타냈고, 마지막에는 새벽을 기다리며 희망을 거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썼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그런 주제의식을 가지고 썼다기보다는 불이 밝은 동경에서 살다가 어두운 조선에 돌아오니, 아아 참 어둡구나! 하고 밤을 의식하게 되었고, 그런 의식을 문학적으로 접근하여 이런 글이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흔히 이태준 문학의 문학성을 어둠의 느낌이라고 합니다. 어두운 조선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이태준 개인 속에 내재해 있던 어둠과 만나 이런 글이 나왔다고 봅니다. 개인 속에 있던 어둠이 시대적 배경의 어둠을 상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는 것입니다. 또 ‘파초’에는 방금 유경환 선생께서 말씀하셨듯이 실용주의와 예술주의에 대한 갈등이 잘 묘사되었다고 봅니다. ‘챙을 달자’ 하는 것은 실용주의, 현실주의 쪽이며, 자기의 낙이라든가 풍류 등이 고집 쪽으로 나타났다고 보기 때문에 단순히 문인화나 풍류만으로 보기에는 좀 옅은 느낌이 듭니다.

 

사회 : 작가의 기질론과 시대적 상황론을 연결시켜서 보신 말씀이군요. 상허의 의식 속에 잠겨 있던 그늘이 결국 상허 문학에 관여를 했다는 말씀입니다. 이태준의 문학 분위기로 접근하는 것이 낫다는 말씀입니다.

김영만 : 평론가 김윤식씨는 이태준을 말할 때 딜레탕티슴(Dile-ttantisme)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문학을 향락과 문취, 즉 문학 자체를 즐기고 거기서 홍취를 느끼는 것으로 하는 사람이지 어떤 지조나 신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작품화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선비적 기질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저 역시 그 말에 동감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이분의 글은 시대적인 것과 너무 관련시켜 볼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산문으로 순수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분이 문학 외적으로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이 글도 그런 것을 떠나 순수하고 아름답게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 글의 주제를 이야기하는데 서로 다른 국면이 나온 것은 오늘 토론이 처음입니다. 시대적 상황으로 볼 것이냐 순수한 문학으로 볼 것이냐 하는 문제인데요, 이 문제는 다음 문제를 좀더 토론하다가 다시 한 번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윤모촌 : ‘밤’은 분명히 시대적 상황을 의도적으로 집어낸 글입니다. 그러나 ‘파초’에는 상징적인 면이 없습니다. 조선의 지배 계급, 양반 계급, 부르주아적 근성, 이런 습성에 젖은 지식인의 순수한 취향을 단순히 그린 것입니다.

정진권 : 이 두 작품에는 둘 다 시대적인 배경을 나타내는 말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밤’을 시대적인 상황으로 보시고, ‘파초’를 그렇게 보시지 않는 이유를 윤선생님께서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윤모촌 : ‘밤’의 끝 부분 ‘그러면 나는 벌레우는 소리를 만나고 이제 찾아올 꿈을 기다리고 그리고 이슥하여선 닭 우는 소리를 먼 마을에 듣기도 한다’에서 시대를 나타내는 상징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파초’에는 그런 면이 없습니다. 그는 선비적 취향을 추구한 사람입니다. 조선조 백자 칠첩 반상기를 사용할 만큼 풍류를 즐긴 사람입니다. 파초, 벽오동, 비 떨어지는 소리 등 문인다운, 문사다운 취향을 지닌 사람이지요. 일부러 유추해서 상징성을 구태여 말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고봉진 : ‘파초’에 나타난 것은 청빈사상 아닙니까. 일종의 청빈예찬 같습니다만…….

유경환 : 글을 읽고 작가의 의도를 따지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작품을 감상할 때 어떻게 해석하면 문학적인 가치를 제대로 부여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인데, 이 작품에서는 시대적인 배경이나 상황을 빼버리면 문학적인 가치가 희석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글을 감상하는 방법에서 시대적인 상황을 넣고 감상하는 것이 이 글의 문학적 가치를 올릴 수 있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윤모촌 : 그렇지요. 바로 그렇습니다.

 

사회 : 시대 문제는 어떠하든간에 한 작품의 가치 부여를 위해서라도 작품을 시대와 연결짓는 것은 중요하다고 봅니다. 상허를 민족주의자로 보느냐 아니냐 하는 상허에 대한 평가에는 많은 층차가 있습니다. 상허의 아버지가 개화주의자였기 때문에 상허가 그렇게 쉽게 정치파도를 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 작품의 밑바닥에 있는 시대성과 상허의 철학성이 서로 연관이 있겠느냐, 만약 있다면 어떤 면에서 그렇게 보이느냐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서 말씀을 해주십시오.

윤모촌 : 상허는 철저한 공산주의자가 아닙니다. 일제 시대, 특히 일제 말기에 붓을 꺾은 문학인은 거의 없었습니다. 거의 친일적인 글을 남겼지요. 그 결과 해방이 되자 상허는 자책을 면하기 어려웠고, 해방된 조국에 속죄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별로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북으로 가는 길만이 상허 앞에 깔려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상허는 공산 세계에 가서도 적응이 안 되었고, 대접을 받지 못했었습니다. 자연히 숙청을 당했지요.

박재식 : 상허가 <문학가 동맹>의 책임자로 있던 1945, 46년에는 문단이나 사회나 헤게모니를 좌익에서 쥐고 있을 때입니다. 문단의 상황으로 보아 상허가 그 속에 휩쓸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봅니다.

 

사회 : 그런 문제는 우리가 합평회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에서 너무 멀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토론하고 싶은 것은 그런 바탕이 이 작품과 연관성이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있다면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이지요. 그러나 굳이 가린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면 그 문제는 이것으로 끝을 내겠습니다.

김태길 : 이태준 문장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야 합니다.

변해명  : 상허는 그 당시 산문의 제1인자였습니다. 문장가 면에서 또 그의 문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편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 상허의 문장론은 오늘 합평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는 실천적으로 문장을 간결하게 썼으며 주장도 뚜렷했습니다. 그는 문장이 일상의 생활도구가 아니라 창조의 도구라고 했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상허가 조선어를 가장 숭배하는 사람이며, 조선어를 가장 잘 구사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상허에 대한 이런 찬양과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또 이분의 이론이나 창작 속에 결함 요지가 있다면 그런 것은 어떤 점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윤모촌 : 먼저 문장가로서의 상허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간결하고 소박한 것을 좋아했으며 짧은 문장 속에 함축된 의미, 그 상징적 수법이 탁월한 분입니다. 또한 사유의 세계가 깊어 성숙된 삶의 세계를 지녔던 분입니다. 30대에 이런 글을 썼는데, 오늘날의 30대와 비교할 때 놀라운 점이 있습니다. 이 두 작품에서도 은유의 방법이 탁월했으며 표현력이 놀랍습니다. 두 글이 성격은 다릅니다만, 간결한 문장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고, 간결미의 미학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문장 형태상의 길이에 대해서 참고를 해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밤’의 경우 끝 부분은 한 편의 시 같은 느낌입니다. 깔끔한 압축미를 드러낸 글입니다.

최병호 : 상허는 이야기의 내용보다 이야기의 방법에 더 많은 예술적 성취를 두었던 작가로 알고 있습니다. 이야기 자체의 짜임새에서 아름다움을 보여 주려고 했던 작가이지요. “대중작을 쓰기보다는 내 작품의 문장을 써보고 싶다.”라고 그분 자신이 말을 했듯이, 문장의 구성에도 의태어, 의성어 등 성향미를 추구하는 데 역점을 두었으며, 사물에 대한 감각을 새로운 언어의 형태 속에서 정밀하게 나타내는 데 기술적인 능력이 있던 분입니다. 한 마디로 문장에 정취가 있으며 짜임새가 있고, 인물 묘사에 뛰어나며 아름다운 문장을 쓰셨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분 속에 너무 깊이 빠져 있기 때문에 흠을 집어낼 수가 없고 오히려 그분의 문장을 익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유혜자 : 저도 부정적인 지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분의 문장은 압축과 정제된 아름다움, 뛰어난 묘사력, 그리고 비유와 은유의 탁월함 등으로 특징지울 수가 있습니다. 풀어서 말씀드리면, 불필요한 수식을 배제하고 문장이 깔끔, 단아하면서도 거기에 내재된 호소력은 강하다고 느꼈습니다. 작품을 쓴 연대상 구투가 좀 있기는 하지만, 그것들조차도 몇백 년 후에 읽어도 좋은 문장으로 여겨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짧게 쓴 수필 속에서 함축과 상상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생각이 깊고 뛰어나서 넓고 풍부한 견식을 드러내는데, 읽는 사람이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정제되고 아름다운 문장을 썼기 때문에 우리들 후학들이 교과서로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경환 : 당대 제일 가는 문장가가 쓴 글로는 의혹이 가는 부분이 몇 군데 있어서 질문을 하겠습니다. ‘밤’에 ‘잠잠한 어두운’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형용사가 겹쳐 있습니다. 또 ‘날마다 모르는 새다’라는 말과 ‘파초’에서 ‘기운으로 장차게 자라’ 하는 말이 나옵니다만, 이런 것들은 글의 묘미입니까, 아니면 당시 흔히 쓰이던 표현입니까? 요즈음 우리가 흔히 쓰는 표현은 아니지 않습니까?

정진권 : ‘모르는 새다’는 ‘모르는 사이이다’이지요. 제가 보기에도 어색한 부분은 여러 군데에 나타납니다. 우선 ‘밤’에서 보면 ‘불시정차 같은 캄캄한 곳’과 ‘그때부터 나는 불 없는…’에서 그때부터는 과연 언제부터인지, ‘크게 뜨던 꽃송이도 감겨버리고’에서의 주어는 어둠인데, 이 표현들도 어색합니다. ‘파초’에서 ‘남국의 정조를 명상한다’, ‘가슴에 비가 뿌리되 옷은 젖지 않는’ 등의 표현도 그렇습니다. 물론 ‘밤’에서 ‘박쥐처럼 오락가락 하는 역원들이 있고 한참 둘러보면 어느 끝에고 깜빡깜빡하는 남폿불이’의 부분과 ‘파초’ 끝 부분에 ‘그러나 무심코 바람에 너훌거리는 파초를 보고 그 눈으로 그 사람의 눈을 볼 때 나는 내눈이 뜨거웠다’는 정말 기가 막힌 표현입니다.

 

사회 : 초반의 열띤 토론 때문에 아직 한 말씀도 하시지 못한 분이 계십니다. 몇 분 말씀해 주시지요.

강호형 : 의문 사항이 있습니다. 대부분 수필에서 대화체를 금기시하고 있는데, 이 글에서는 대화체가 적절히 사용되었다고 봅니다. 성격이나 신분, 그런 것들이 몇 마디 대화 속에 전부 나타나 있습니다. 수필에 있어서 대화체의 도입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윤모촌 : 저는 가급적이면 대화체를 쓰지 말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문장이 서툰 사람들이 쓸데없이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대화체가 문장의 주제를 드러낼 만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 기능을 가질 수만 있다면 대화체를 써야지요. 쓸데없이 쓰지 말라는 말입니다.

공덕룡 : 여러분 말씀을 듣고 보니 꿈보다는 해몽을 잘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태준 본인이 이 자리에서 여러분이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면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세 분의 지정 토론자와 또 몇 분이 이 문장들이 본받을 만한 명문장이다 라고 하셨고, 두어 분이 그 반대 의견을 말씀하셨는데, 저는 후자의 의견에 따르고 싶습니다. 이 글에는 어색하고 불합리한 표현이 많습니다. 산문적인 표현이 아니고, 추상적이며 지나치게 시적(詩的)입니다. 이 글은 60 ~ 70년 전의 글입니다. 오늘날에는 문장을 쓰는 수법이나 문장체가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한형주 : 우선 문장이 간결하다는 것과 문장력에 있어서 예지가 번득이는 문장을 쓰셨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요즈음의 수필이 쓸데없는 이야기를 자주 끌고 나오고 주제와는 거리가 먼 지루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많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런 생각이 난 것 같습니다. 앞에서 다른 선생들께서 하신 말씀의 되풀이가 될지 모르지만 ‘밤’에는 시대성을 은근히 대비시킨 마음 속의 우울한 저항감이 잘 배어 있습니다. 그리고 ‘파초’에서는 짧은 문장과 대화 속에서 완전히 할 말을 다 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문장력, 문장의 응집력이 대단하다고 보았습니다. 물론 요즈음 잘 통용되지 않는 문장, 즉 ‘그 잠잠한 어두운 마을 속에서 품이 벌게 받는 듯하였다’ 등의 시대에 맞지 않는 문장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종합적으로 볼 때 당대의 문장가라는 이름에 손색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시헌 : 표현 문제에 대해 한 마디 하겠습니다. ‘즐겨 버릇하였다’, ‘죽을 운명엣 파초’, ‘혼자 드러나게 모진 사람은 아니다’ 등의 표현이 묘하고 특수하다고 생각합니다.

김태길 : 오늘 합평회를 하면서 나는 첫째, 남의 글을 바르게 읽는 자세가 무엇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확실한 것을 읽어야지 상징성이다 뭐다 해서 확대 해석을 한다거나 견강부회를 하는 것은 좋은 독서의 자세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태준 선생이 이 글을 쓸 당시에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시대에 쓴 글은 행간을 읽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대의 울분이나 민족의 비애를 직접 쓸 수 없는 시대에 쓴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분이 순수문학자냐 아니냐 하는 문제인데, 제가 보기에는 양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그 다음에 그가 좌경한 동기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말씀이 있었는데, 내가 알기로는 그 당시에 부유한 지주의 아들이나 손자들이 좌경을 많이 했습니다. 공산주의와 휴머니즘을 혼동한 것이지요. 백자 반상기에 음식을 먹는 사람이 좌경을 했다면 논리적인 모순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때는 그럴 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외의 것은 지금 시간이 많이 갔기 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

 

사회 : 그 동안 회원 여러분께서 말씀하신 것을 간추려 보겠습니다.

먼저 주제 문제에 관한 것입니다. 일부 회원들께서 ‘밤’은 단지 어두운 밤의 신사적인 묘사이다 라는 말씀을 하셨지만, 대부분의 회원들이 암울한 시대상황과 인간의 좌절을 그린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파초’는 상징성이나 철학성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순수한 문사의 정수로 보아야 한다는, ‘밤’과는 상반되고 대립된 견해를 보이셨습니다.

토론 중간에 잠시 이 글의 주제와 그 당시 시대상황의 연결을 시도했던 것을 화제가 비약할 수 있는 사항이어서 중간에 멈추고 말았습니다. 끝으로 문장에 관한 것을 정리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이태준 선생은 그의 『문장강화』를 통해서도 ‘산문은 첫째가 문장이요, 둘째도 문장이고 셋째도 문장이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비록 그의 문투 속에 형용사가 중복된 곳이나 문법에 맞지 않는 부분, 시제의 불분명함, 부자연하고 불합리하며 비산문적인 문체가 있다 라는 지적도 있었습니다만, 대부분이 이 글의 간결성, 압축성, 은유성을 말씀해 주셨고, 의태어라든가 의성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간결하고 단아한 문장을 쓰셨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그 밖에도 대화체의 도입이라든가 감각이 있는 문장은 높이 살 만하다는 의견이었습니다.

끝으로 사회자로서 한 말씀드리면, 그 동안 우리는 2, 30년대 산문 작가들을 많이 다루어 왔는데, 그분들의 글과 이분의 글을 비교하면 결론이 자명하리라고 봅니다.

긴 시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