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쇳경

                                                                                             石 一 均

 할머니는 작달막한 체구에 살갗이 분결같이 흰 노인이었는데, 평생에 아이를 못 낳아보신 탓이었는지 나를 귀한 화초 가꾸듯 키워주셨다. 내가 어머니의 품을 떠나서 그 양할머니의 손에서 잔뼈가 굵은 데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다.

요새 젊은 사람들이 들으면 놀라 자빠질 일일는지 모르지만, 나의 어머니는 아이를 열넷이나 낳으셨다고 한다. 내 위아래로 여덟이 죽고, 사남 이녀인 육 남매를 겨우 건졌노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눈시울 붉히시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요새처럼 인위적으로 산아 조절을 할 생각은 엄두도 못냈을 터이고, 게다가 부귀다남(富貴多男)을 복으로 치는 시속에 젖어 사내아이   라도 많이 낳아 기르는 것을 부녀자의 미덕으로 여기던 시절이라 다산(多産)을 예사로 알았던지.

대충 따져 보아도 나의 어머니는 이십 전에 출산을 시작하여 마흔셋에 나의 막내 아우를 낳고 단산을 하셨다고 하니, 출산과 힘겨운 가사에 매달린 채 인생의 꽃 시절을 몽땅 소진하신 셈이다.

낯을 익히고 이름도 짓기 전에 손에 세 놓이더라고 하니 참으로 기막힌(어찌 보면 무지몽매한) 인생을 살다 가신 인간사가 아닌가!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내가 태어났는데 또 무슨 괴질(지금 같으면 대수롭지 않았을?)을 앓았던지

“또 틀렸구나.”

하고 이불을 덮어씌워 윗목에다가 밀어놓았는데, 두서너 시간이 지난 후에 꼬물꼬물하더니 살아나더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살아는 났지만 젖이 떨어지기 전에 또 아우를 보게 되었단다. 넉넉한 집 같으면 유모라도 대었으련만 그럴 형편이 못 되었던지, 할머니에게 나의 양육을 내맡기셨던 모양이다. 모름지기 우리 나이로 두 살 때쯤의 일이요, 살고 죽는 건 제 명이거니 하는 막다른 결단이셨겠지.

어머니의 품에 안겨 젖꼭지[母乳]를 물고 자랄 때인데, 무엇을 먹고 그 고비를 넘겼는지는 확실한 기억이 없다. 지금처럼 갖가지 우유가 지천일 때도 아니었다.

훨씬 나중에 안 일이지만, 어른들의 말로 양젖(우유의 별칭?)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일본 북해도(北海道)에서 생산되는 우유에다 설탕을 가미하여 깡통에 넣어 팔던 값비싼 연유(煉乳)였다.

나도 한동안은 그것으로 연명을 하였다는데 고무로 만든 젖꼭지를 빤 기억은 까맣게 잊어버렸고, 할머니가 밥을 꼭꼭 씹어서 내 입에 넣어 주시던 일만은 잊혀지질 않는다. 일종의 이유식인데, 요새 젊은 엄마들이라면 비위생적(!) 운운하며 펄쩍 뛸 일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부터 TV에서 방영되는 ‘재미있는 동물의 세계’라는 프로를 보니까, 둥우리 안에서 입을 벌리고 먹이를 기다리는 새 새끼들에게 암놈이 자기가 물어온 먹이를 입 안에 넣어 주는 장면을 볼 수가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볼 때마다 할머니가 나를 저렇게 해서 키우셨거니 하는 까마득한 회상에 젖어들곤 한다.

그 다음에 내가 먹은 것은 홍합(紅蛤)을 두서너 개 넣고 폭폭 끓인 암죽이었다. 투가리에 담긴 뜨거운 암죽을 할머니가 후후 불어가며 숟가락으로 떠 먹여 주셨다. 다 먹고 나면 할아버지는 나의 양쪽 겨드랑이를 두 손으로 잡으시고 좌우로 흔들며 두 다리를 번갈아 콩콩 구르게 하시면서

“세상 마상 부라 부라 우리 애개…….”

이렇게 흥얼거리시면서 부라질을 하셨다. 식후의 가벼운 실내운동이었다.

이렇듯 할아버지 할머니의 알뜰한 정성으로 유아기를 넘기고 성장하였건만, 반포지효(反哺之孝)는 고사하고 그 무덤조차 자주 돌보지 못하고 있으니, 나는 까마귀만도 못한 놈이로구나 하는 자괴(自愧)를 느끼곤 한다.

그 무렵(60여 년 전)의 일들을 곰곰이 되짚어 보노라면 어린 시절의 만화경을 펼쳐보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 같다. 또 나는 장난이 심하였다고 하니, 엉뚱한 일을 저지르기도 하고 웃음이 절로 터지는 작희도 가지가지였을 것이다

그 중의 한 가지는 쇳경에 얽힌 한 사건이었다. 쇳경이란 석경(石鏡)의 평안도 사투리로 거울을 가리킨다.

그 무렵 할머니는 화장품이라고 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의 기억으로는 세수할 때 쓰시는 팥비누 한 병, 치아를 닦는 고운 소금 한 접시, 조그마한 문갑 위에 놓고 쓰시는 미안수(美顔水:수세미 줄기에서 받은 즙) 한 병, 그리고 얼굴을 들여다보시는 쇳경 정도였던 것 같다. 쇳경이라야 문고판 크기의 얄팍한 유리조각으로 만든 장난감 같은 거울이었다. 할머니는 그것을 문갑 모서리에 기대어 놓고 미안수를 바르시고 얼굴을 쓰다듬으시곤 했다.

그런데 어느 해 봄날, 나는 그 쇳경을 들고 나와 햇빛을 반사시켜 헛간에서 아슬랑거리는 고양이를 뒤쫓다가 그만 댓돌에 떨어뜨려 박살을 내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세수를 하시고 들어오신 할머니가,

“얘, 내 쇳경 봤니? 여기밖엔 둘 데가 없는데 어딜 갔지……?”

“……….”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그렇다고 거짓말로 둘러댈 길도 없었다.

“할머니, 내가 깼어. 헛간에 고양이 비치다가 떨어뜨려 깨졌어.”

할머니는 뜻밖에도

“그거 잘됐다. 그 누메 쇳경만 보면 내 늙어가는 얼굴이 보기 싫더니…….”

내가 할머니의 그 심경을 알 턱이 없었다. 꾸지람은 고사하고 그거 잘됐다고 하시니, 그 심사를 내가 어떻게 알았겠나. 그런데 6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뇌까리고 싶은 쇳경과의 사연이 내것이 되어 버렸다.

좋으나 싫으나 쇳경 속의 나를 볼 때마다

“어느 새 내가 이 지경이 됐나! 아이고 흉한 몰골이여! 피골이 상접한 저 꼬락서니! 주름살, 주름살…….”

만약에 거울의 요술이 없어진다면

‘아이 잘됐다. …내 늙어가는 얼굴이 보기 싫더니…….’

할머니는 그 무렵 60여 세이셨으니, 나는 철이 늦게 든 셈인가?

인생의 무상에는 피할 길도 없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