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막(山幕)을 마련하고

                                                                                          金 鎭 植

 농사일이 싫어서 아버지께 대들었던 십대의 소년이 이순(耳順)의 문턱을 밟으면서 전원을 기웃거리고 있다면 여간 철늦은 것이 아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태 전부터 산전(山田) 한 뙈기를 마련하고 주말마다 나들이하며 자연과 전원의 맛을 만끽하고 있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반 남짓한 거리의 외딴 곳,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은 아니지만 산줄기가 흘러내려 마을을 막고 있다.

나는 이곳을 감싸고 있는 산세와 그 아늑함에 이끌리면서 산막(山幕) 하나라도 매고 싶었다. 이 뿐만 아니라 밭일을 위하여 더욱 급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농구(農具)를 저만큼 떨어진 마을까지 끌고 가서 맡겨야 하고, 연휴의 나들이에도 거처할 곳이 없으니 공연한 수고로움만 더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당장 농막을 짓고 농사일에 매어 달릴 형편도 아니고 보면 임시 방편의 산막이 제격으로 여겨졌고, 아내와 의논 끝에 서둘기로 하였다.

먼저 우물을 파는 일부터 시작하였다. 파이프를 꽂은 곳의 지반이 바위로 되어 있어 작업이 어려웠고, 40미터나 뚫어서야 물을 찾아내었다. 암반을 뚫는 어려움은 있었지만 맥반석에 고인 물임을 확인하고는 다행으로 여겼다. 그 다음에 전기를 끌어들이고, 콘테이너 박스 하나를 맞추어 좁은 산길로 나무와 부딪치며 어렵사리 끌어들였다.

좋은 물이 있고 전기가 들어오고 거처할 공간을 마련하였으니, 산막치고는 훌륭한 것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이곳을 찾는 사람마다 산막이라는 말은 아예 접어두고 별장이라는 말로 격을 높여 준다. 굳이 그렇지 않다고 변명할 필요는 없다. 사실 호화로운 별장을 짓는다고 하더라도 이만큼 마음이 편할 것 같지가 않다.

그러나 농사일은 힘든 것이다. 낯선 얼굴인 채로 농구를 들고 가는 나에게 어떤 아주머니가 던진 말, “아저씨, 아무나 농사 짓는 줄 아세요.” 자못 힐난조였지만, 농사일의 어려움을 알고 있는지라, “참 웃기지요.” 하고 화답을 하면서 웃었다.

아마 그 아주머니의 눈에 비친 인상으로는 땀 몇 방울 흘리지 못하고 그만 둘 사람쯤으로 보였기 때문이리라.

나로서도 그렇지 않다고 부정할 만큼 자신감을 내어 보일 수가 없다. 사실 이순의 나이로 일이 몸에 밴 그런 농사꾼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단지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농사를 버린 불효를 뉘우치며, 마음으로나마 전원을 아끼고 그 생명력에 귀기울이며 순리를 굽어보고 싶을 따름이다.

산막인지 별장인지를 마련한 뒤론 주말뿐만 아니라 틈이 나는 대로 들리게 된다. 이상하게도 그곳에만 가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무엇보다 한적함이 마음을 끌고, 묵힌 밭 구석에 심은 채소를 손보는 일도 즐겁다. 그래서인지 마을 사람들의 눈빛도 부드러워졌다. 처음에 밭을 팔지 않겠느냐고 묻던 사람이 지금에는 오히려 밭에 붙어 있는 논이 문전옥답이라면서 사지 않겠느냐고 은근히 떠본다.

지금 있는 밭도 반 이상 묵히고 있는 얼치기가 어떻게 농사를 짓겠느냐고 하면, 지금 하는 것을 보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켜준다. 그 말이 맞을는지 모른다. 모내기도 기계가 하고, 수확도 기계가 한다. 옛날처럼 일일이 사람의 손이 가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그런 만큼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마음가짐도 그렇다.

나는 그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지만 그 동안 내가 생각해 봐도 달라진 것은 틀림없다. 우선 마을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지 않기 위해서도 움직였고, 스스로에 대한 채찍으로도 땀을 적시려 했다. 그래도 지금은 처음 흙을 묻힐 때처럼 그렇게 피곤하지 않고, 푹 자고 나면 거뜬해진다. 이러는 가운데 조금씩 나아지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 나이만을 탓할 것이 아니구나 하고 용기를 얻게 된다.

그러나 밭두렁에 서면 부끄럽고 볼 낯이 없다. 우거진 잡초로 묵밭을 이루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밭 아래 논배미를 돌보는 농사꾼의 말로는 봄에 잡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 거처를 정하고 열심히 하고 있으니, 내년 봄을 준비하면 된다는 것이다.

봄에 제대로 잡아놓으면 그 뒤에는 어려울 것이 없다면서 안심시켜 준다. 이제 내년 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나보다 아내가 더 봄을 기다리고 있다. 한 가지 종자라도 제때에 심어서 묵밭을 면하겠다면서…….

오는 주말에도 그곳을 나들이할 것이다. 들깨도 한 번 더 털고, 김장 채소에도 물을 주어 싱싱한 수확을 채비하도록 할 작정이다. 그리고 돌아가는 계절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한적하고 쓸쓸함을 마음껏 채우며 계절의 목소리에도 귀기울일 것이다.

농사일이 싫어서 아버지께 대들었던 십대의 소년, 그때의 아버지 연륜을 훌쩍 넘겨서야 전원을 찾으며 땀을 적시고 싶어하다니, 세월의 유전이 새삼스럽기만 하다.

마음먹기에 따라 산막이 주택으로 바뀔 수도 있고, 그렇다면 산전 또한 텃밭이 될 것임에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