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져서 아름답다

                                                                                          金 壽 鳳

 오늘 아침, 늘상 마주 서서 대하던 거울 앞에서 나는 놀랐다. 거울에 두 줄기의 금이 가 있었다.

이유인즉, 어제 가구를 옮기다가 부딪쳤다는 것이다. 유리점에 연락을 해 놓았으니 오늘 낮에는 새것으로 갈아 넣을 거라며 곁에서 아내가 미안해 했다.

거울에 비친 나의 얼굴은 어제 아침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눈이 짝짝이 되고 이마와 볼이 굴곡져 나타났다. 더구나 입술이 치켜 올라가서 묘하게 웃고 있는 표정을 연출해 내고 있었다. 나는 분명 웃음기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는데.

깨진 거울 속을 보면서 나는 생각해 보았다. 나의 얼굴이 본래 저랬을지도 모른다. 저렇게 우락부락하거나 묘한 웃음이 담겨진 얼굴이었다면 나의 운명은 아마도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아내에게 말은 안했지만 서둘러서 새 거울을 갈아 넣을 필요가 없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내일은 또 다른 나의 얼굴을 비춰 보고 더 많은 좋은 상상을 보태어 볼 수 있겠기에.

 

거울같이 푸르고 투명한 하늘은 아름답다. 마음의 티끌까지를 쓸어내 준다. 하지만 틈진 구름 사이로 비치는 파란 하늘 조각은 더욱 아름답다. 온통 맑기만한 하늘은 어쩐지 막연하고 허한 느낌이지만 구름 사이의 하늘은 미완의 여백이 있기에 우리의 가슴을 상상으로 출렁이게 한다.

신라 와당(瓦當)인 둥근 수막새에 새겨진 무늬는 옛 사람의 넉넉한 마음씨를 엿보게 한다. 특히 원형(圓形)으로 만들어진 사람 모습의 문양에서 그 오묘한 미소를 볼 때마다 나는 가슴이 출렁인다. 그 오묘한 미소가 전해 주는 어떤 힘이 내 마음 안에까지 그칠 줄 모르는 웃음샘을 솟게 해주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 수막새의 그림이 너무나 유명한 걸작으로 알려진 탓에 실물을 대할 기회보다는 사진으로 그림으로 또 그래픽으로까지 복사되어 퍼져나가서 도처에서 볼 수 있어 흐믓하다. 하지만 이 그림을 대할 때마다 아쉬움 또한 간절하다.

이 수막새는 원형대로 보존되어 발견된 것이 아니다. 파손되고 남은 부분이다. 한쪽의 턱과 볼, 머리 부분이 떨어져 나간 모습으로 참 아슬아슬하게도 남은 조각이다. 아쉬운 대로 두 눈과 아미(蛾眉), 코와 입술이 온존할 뿐이다. 더구나 그 눈과 볼과 입술에 담겨진 웃음, 그 오묘한 미소가 다행히 살아 남았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른다.

나는 이 깨어진 수막새를 보면서 많은 생각의 끈을 당겨본다. 그 숱한 세월을 내려오는 동안 하찮은 기와쪽으로 이리저리 팽개쳐지고 굴려지면서도 이나마 남았다는 사실이 대견하고, 이 걸작의 생명이라고 할 미소의 부분들이 어쩌면 이렇게 역력할까. 그리고 이 걸작품을 그 어느 흙더미 속에서 발견했을 미지의 그 심미안이 부럽다. 그 눈은 오늘의 우리에게 실로 큰 선물을 남겨준 것이다.

또 이 와당이 조금도 손상 없는 원형대로 남았다면 어땠을까. 물론 그렇다면 훨씬 더 비싼 값의 문화재 예술품으로 인정받고 욕심낼 물건일 수는 있다. 그러나 거기에선 세월의 흔적이나 수난의 자취를 찾아보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더구나 이 걸작을 보는 우리에게 상상의 날개를 퍼덕이게도 의미의 샘물을 퍼올리게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파손되었기에 없어진 부분이 있기에 아쉬움을 간절하게 하는 것이며, 여백으로 되어 버린 손상 부분에 대해 보는 이 스스로가 상상  속에서 완성시켜 보려는 기쁨을 가지게 하는 것은 아닐지.

도대체 나는 ‘완성의 미학’이란 걸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신(神)만의 영역이니까. 인간이 만들어 낸다고 하는 모든 것은 언제나 미완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다만 인간 스스로가 완성이라는 착각에 빠지는 때가 많을 뿐이다.

미완에 대한 완성에로의 안간힘이 사람에게 있기에 사물들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삶은 아름다운 것이다. 없는 것을 있게 하고 싶고, 안 된 것을 되게 하고 싶고, 모자란 것을 채우고 싶은 생각(상상)이 보태어지면서 감동의 출렁임은 끝없이 일어나리라.

깨어져야 아름답다.

모든 알이 깨어지면서 새 생명을 탄생시킨다. 그래야 아름답고 귀여운 새끼를 얻는다. 아무리 혐오스럽고 징그러운 동물류라도 그 새끼는 모두 아름답다. 그것들의 탄생은 깨어짐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리라.

소설에서 완성되는 사랑보다 깨지는 사랑이 재미있고, 연극도 파국으로 치달아야만 극이 산다. 권투 시합을 볼 때도 어느 한 선수가 깨지지 않으면 그 관전은 싱겁다.

원형대로 잘 보존된 옛 도자기 예술품이 있어 그 값이 엄청나게 비쌀지라도 거기에서는 그 자체가 지닌 완벽성 때문에 ‘미 감상’ 이외에는 얻어낼 것이 더 없으리라. 더 보태고 완성하고 싶은, 보는 이의 상상력을 거부당해 버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