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고 배우는 일

                                                                                               강 소 벽

 초등학교 6학년인 영천이는 내가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알게 된 아이다. 처음 만났을 때, 글쓰기를 왜 따로 공부해야 하냐면서 어머니께 불평을 했다는데 눈물까지 흘리고 왔다. 그 애는 본래 타고난 재능이 있어선지 또 순수한 성격을 지녀서인지 내 이야기를 잘 받아들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마음을 글로 표현하게 되었고, 어제는 ‘간디’에 대한 책을 읽고는 독서일기를 길게 썼다. 그것을 다시 독후감으로 옮겨 쓰는데 쉽지 않을 간디의 정신세계를 제법 이해하고 있었다. ‘진리란 무기는 그다지도 힘이 센지’라고 써나간 글에 나는 흐뭇한 기분이 되었다. 그러면서 가르치는 사람의 마음은 이런 것인가 하였다.

내게 글을 가르쳐 주시던 분도 내게서 이런 기분을 느꼈을까 하고 생각해 보는데 고개가 흔들어진다. 나는 왜 그렇게 스승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지 못했을까. 소심한 내 성격 탓에 안부 전화조차 잘 드리지 못할 정도로 어려워만 한다. 꿈에서는 가끔 뵙지만 마음만 있고 행동은 더디기만 할 뿐이다.

함장(函丈)이란 스승을 일컫는 옛말이다. 스승과 제자는 서로 거리를 두라는 것으로 한 길(약 3m)의 간격을 둔다는 뜻이다. 물론 그 거리란 정신적인 거리로 스승을 받들고 여지(餘地)를 둔다는 뜻일 것이다. 스승을 너무 어렵게만 대해 온 나는 오히려 그 간격을 멀어지게 한 게 아닌가 싶다.

사람과 사람과의 여러 관계 중 가장 바르고 이상적인 것을 들라면 사제지간을 든다. 그런 스승과 제자하면 먼저 위당(爲堂) 정인보 선생의 일화가 떠오른다.

비가 억수로 퍼붓는 어느 날, 위당은 서대문 네거리에서 전차를 타려다 허수룩한 차림의 노인을 보고 황망히 달려간다. 빗물이 흥건한 땅바닥에 그대로 무릎을 꿇고는 절을 하였다. 그 노인이 바로 위당의 스승인 난곡 이건방(蘭谷 李建芳)이었다. 그 당시는 을사오조약 체결로 나라를 잃은 슬픔에 우국지사들이 한 분 한 분 죽어가던 시절이었다. 난곡은 죽지 못한 자신을 한탄하면서도 “내 생애에 남아 있는 것은 오직 그대 하나뿐(一生惟汝在)”이라며 위당을 아꼈다고 한다.

그분들을 생각하면 나는 너무 부족한 사람이라 느껴지고 스승을 대하는 요즘의 세태가 안타깝다. 그렇긴 해도 스승을 갈구하는 마음은 간절하다. 그 동안 학창 시절을 거쳐오면서 공부하는 이에게 가장 큰 기쁨은 좋은 스승을 만나는 일이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쉽지 않은 것이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일이 아닌가 한다.

나도 지금에서야 두 분의 스승을 말할 수 있다. 아무것도 이룬 것은 없지만 가슴 속에 스승이 있다는 기쁨은 뭔가를 이루어 놓은 것 이상으로 흡족하다. 한 분은 글을 쓰면서 만나게 된 분이고, 한 분은 복식문화원 ㄹ박사이다. 한 분은 인품과 문학이 일치되는 삶을 살아오신 것으로 보이고, ㄹ박사는 학식과 덕망이 있는 분으로 보인다.

사실 복식에 관심이 없던 내가 우리 전통 복식사를 계속 공부하게 된 것은 ㄹ박사의 영향이다. 몇 년 전 어느 강좌에서 처음으로 그분을 뵈었을 때 한국의 여인상을 보는 듯했다. 조용한 목소리와 한복 차림의 단아한 자태,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 않는 듯한 인품에 이끌렸다. 그러한 분을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뵙게 되었는데 그럴 때마다 마음이 흐뭇해지곤 했다. 늦깎이와도 같은 내게도 학문에 대한 열정을 일깨워주고, 그분의 겸허한 태도는 무언의 감화력으로 다가왔다. 누구에게나 온화하게 대하시는 고아한 자태를 보고 어느 목공예가는 여래상을 조각하였다. 이런 분을 가까이 하면서 그 향훈을 어찌 느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란 말이 실감난다. 근래에 들어 혼자 사시는 그분을 나는 곁에서 모시고 싶다는 생각조차 든다.

내 스승을 떠올리다 공부하는 아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무얼 생각하는지 고개를 갸웃하며 글을 쓰는 모습이 기특해 보인다. 쪽풀에서 나온 청색이 쪽풀의 색깔보다 더 푸르다고 했듯이, 영천이는 나보다 더 좋은 글을 썼으면 한다. 하지만 저 아이의 순수한 마음 속에 투영되는 나의 모습은 어떠할까. 자못 두렵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배우고 가르치지만 스승이 되기도 어렵고, 제자가 되기도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