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남은 地上樂園

─ 바누아투 기행 ─

                                                                                      金 秉 權

 여행이란 경이와 감동을 창출하는 인생의 예술이다. 예술의 진수를 터득한 사람만이 인생의 참 즐거움을 알 수 있듯이 여행을 통해 경이와 감동을 맛 본 사람은 예술이 지향하는 미(美)와 순수(純粹)를 만끽하게 된다. 아름다움과 순수를 갈구하는 마음, 어쩌면 이것은 자연귀의(自然歸依) 사상으로 통하는 본능적 여정(旅情)이라 해도 좋으리라.

나는 지난달 남태평양 한가운데 떠 있는 바누아투라는 섬나라에 다녀왔다. 일찍이 그 국명(國名)조차 들어보지 못한 이 생소한 나라를 방문하게 된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지금껏 외부세계와는 높은 담을 치고 철저하게 쇄국(鎖國)해 온 나라 바누아투공화국. 이 나라는 1980년 7월에 독립을 선포한 당당한 독립국이지만 워낙 국력(國力)이 열세하다 보니 아직 우리 나라와는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나라의 이름이 무엇인지 또 위치가 어디쯤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터에 나의 문우(文友)인 ㄴ박사가 이 바누아투공화국의 명예 영사로 추대됨에 따라 그 임명장을 받는 자리에 초청되어 이 진귀(?)한 여행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여행 알선을 전담하는 꽤 큰 여행사에서조차 이 나라에 들어가는 경로를 모르고 있었으니, 이 어찌 진귀한 여행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김포공항을 떠난 지 만 21시간만에 도착한 곳은 이 나라의 수도인 포트빌라 공항이었다. 중간 기착지인 호주의 브리스반과 시드니 공항에서의 체류 시간을 뺀다 하더라도 꼬바기로 19시간을 기내에 있었으니 여간 피곤한 여행이 아니었다.

그러나 목적지인 바누아투의 포트빌라 공항에 내리는 순간 그간에 쌓였던 모든 피로는 한꺼번에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살갗으로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결이 한결 시원했고, 눈앞에 전개되는 모든 풍정(風情)이 말 그대로 지상낙원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아마 성서에 나오는 에덴동산을 비유한다면 이곳 말고 또 어디를 들 수 있을까 할 정도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가는 곳마다 나그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화초에서 꽃이 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십 미터가 훨씬 넘는 울창한 나무들이 흡사 나비 모양의 빨간 꽃떨기를 머리에 인 채 하느적거리고 있는데는 정말 감탄사 없이는 볼 수 없는 경이로운 정경이었다. 더구나 이 나라는 국민들로부터 일체 세금을 받지 않는 무세국(無稅國)이라니 가히 지상천국이란 말이 그냥 나온 말은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은 곧잘 문명의 아름다움을 예찬한다. 그러나 문명의 이름으로 파괴되어 버린 자연과 그로 인해 황폐화된 인정세태를 바라보고 있는 현대인은 오히려 문명의 대안(對岸)을 동경하며 태고와 원초의 순수를 갈망한다. 문명의 발달이 아무리 인류의 삶을 풍요롭고 편리하게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배사면에서는 온통 ‘문명’이 배설한 오물의 찌꺼기들이 우리의 정신과 육체를 병들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선이 노니는 선경(仙境)에 어찌 병자(病者)가 있겠는가. 그곳에서 일주일간을 지내다 보니 어느 새 머리 속을 어지럽히던 온갖 세속의 티끌들은 말끔히 씻기워지고 수면 부족인 상태에서도 원기는 샘솟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에서 일주일간만 지나면 가벼운 신경통이나 소화불량증은 간단히 치유될 수 있다고 기염을 토하는 C회장(현지 교민회 대표)의 말이 한결 실감으로 다가왔다.

옛날 우리 나라를 찾은 중국 사신이 가는 곳마다 천하제일강산(天下第一江山)이라고 감탄을 했다지만 이곳 바누아투야말로 그 어디를 가나 천하제일의 지상낙원이라는 감탄사를 쏟아 놓지 않을 수 없었다. 보이는 것은 다 그림이요 들리는 것은 다 멋진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오랜 동안 영국과 프랑스의 공동 통치령이었던 이 나라는 13개 주도(主島)를 비롯한 총 83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여기엔 무인도(無人島)가 하나도 없다.

먼 옛날 화산(火山)으로 융기(隆起)된 산호초대(珊瑚礁帶)로 형성된 이 섬은 고온 다습한 해양성기후로서 연평균 기온은 섭씨 26도를 유지하고 있다. 아무리 더운 여름철에도 28도를 넘지 않고 또한 겨울이라고 일컫는 3~4월에도 17도 이하로 내려가는 일이 없어, 기후면에서도 뭇사람들로부터 지상낙원이라는 애칭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 원시의 낙원 바누아투에도 문명의 허울을 쓴 인간 공해의 발굽 소리가 서서히 들려오고 있다. 지금까지는 ‘외인 입주 금지’라는 간판을 높이 걸어 놓은 덕분에 이 정도의 순수를 지켜왔다. 하지만 내년부터 타민족을 받아들이는 ‘이민법’이 발효하게 되면 이 아름다운 순수를 어떻게 지켜나가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우리가 그곳에서 체류하는 동안 필리핀 청년이 렌터카를 몰고 질주하다가 다리에서 떨어져 즉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이 뉴스가 연 이틀간이나 주요 뉴스거리로 장식되고 있었으며, 특히 수상과 대통령을 면담할 때에도 이 이야기를 화제로 떠올리는 것만 보아도 이 나라의 뉴스의 질과 양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치 1백여 년 전 우리 나라 독립신문의 사건 기사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라고나 할까…….

이와같이 태고의 숨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자연과 문명의 진애(塵埃)에 찌들지 않은 고운 심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물신(物神) 놀음’의 광란극을 보여 준다면 어떻게 될까…….

그냥 사람이 사람을 죽였다는 것은 뉴스감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세상,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임신한 여인이 자기 자식 같은 어린이를 유괴해다가 무참하게 살해해 버리는 이 천인공노할 인정세태를 우리는 과연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도 우리는 이 퇴락하는 문명을 그저 예찬만 하고 있을 것인가.

이제 문명의 표면으로 부상하게 될 바누아투의 내일을 생각하니 그저 연민의 정을 금할 수 없다. 문명은 욕심을 부추기고 욕심은 다시 죄악을 낳게 될 것인즉 머지않아 저곳에서 쏟아져 나올 문명의 부스러기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자못 궁금해진다.

이 지구상에서 마지막 남은 낙원 바누아투를 온 인류의 이름으로 보존할 길은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