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치고 사는 기쁨들

                                                                                              백 임 현

 경복궁 건너편에 있는 금호 갤러리에서는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큰 연주회에서나 만나 볼 수 있는 저명한 연주자들을 가까이 접할 수 있어서 많은 음악 애호가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좋은 콘서트이다.

우리도 9월과 10월 두어 번 그곳에 참석하여 초가을 밤, 모처럼 아름다운 선율에 젖어 볼 수 있었다. 매달 모임을 갖는 회원 중에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이 있어서 이런 기회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밤 시간인데도 객석은 빈자리가 없었다. 유치원 정도의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관객은 다양했고, 무대 없는 앞자리에서 연주자들의 작은 표정까지 살피면서 생음악을 듣는 것은 각별한 경험이었다. 사람들은 감동적인 도취 속에 몰아의 경지에 이른 듯 숙연해 있다가 곡이 끝날 때마다 환호하며 갈채를 보내곤 하였다. 그 얼굴들은 모두 만족하고 행복한 기쁨이 가득해 보였다.

나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관객들의 그런 모습을 남의 일인 양 바라보면서 세상에 중요한 어떤 부분을 놓치고 산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전혀 그 방면에 문외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렵고 수준 높은 음악에 심취하는 사람들을 보면 무엇보다 부럽고 행복해 보인다. 이것이야말로 얼마나 위대한 정신적인 자산인가. 그들은 참으로 가슴이 풍부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우리가 젊었을 때는 전문적인 음악 감상실이 있었다. 종로에 있는 ‘르네상스’와 ‘돌체’ 다방이 그 중에서 잘 알려진 곳이었다. 전쟁중에 고아가 된 불행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차이코프스키를 듣기 위해 날마다 그곳을 찾아가곤 했다. 나도 그 친구를 따라 여러 번 그곳에 갔으나, 그때도 친구만큼 도취하지 못하였다. 그 친구는 아무래도 귀가 트이지 않는 내가 딱해 보였는지 음악에 관한 책도 빌려 주고, 감상하는 태도와 요령을 설명해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선천적인 음악성이나 감각을 타고나야만 되는 것 같았다. 억지로는 되지 않는 것이어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음악을 들으면서 느끼는 희열이나 감동도 좋은 책을 읽었을 때, 갖게 되는 기쁨과 같으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책 속에서 기막히게 절묘한 한 줄의 시를 만났을 때, 인생과 사물을 분석하는 작가의 날카로운 통찰을 발견했을 때, 반론의 여지가 없는 명쾌한 논리, 삶을 사랑하는 작가의 따뜻한 마음 등을 읽게 될 때, 나는 가슴저린 감동을 느끼며 감탄하고 또 감탄한다. 그리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한다. 만일 책을 못 보았다면 이 기쁨을 놓쳤을 것 아닌가. 마치 음악을 몰라서 세상 한쪽의 즐거움을 모르고 사는 것처럼…….

음악 말고도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알 수 없는 것이 또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야구 경기이다. 프로야구가 날마다 화면에서 뛰어다니고, 미국의 박찬호 선수, 일본의 선동렬 선수의 소식이 그처럼 팬들을 열광시키며 화젯거리가 되어도 나는 도무지 그들이 어떻게, 왜 그처럼 유명한지 잘 알 수가 없다. 경기 진행도 알고 규칙도 대강 아는 것 같은데 무엇 때문에 관중이 열광하는지 그 까닭을 모르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어느 문우에게 하였더니 “아니 정말 모르세요?”하며 허리를 잡고 웃으면서 그것은 너무나 간단해서 설명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설명할 도리가 없다는 말은 우리 식구들에게도 수없이 들은 말이다. 처음에는 남편이 기회 있을 때마다 야구장의 도표를 그려가며 열심히 설명을 되풀이했다. 그래도 내가 이해를 못하자, 할 수 없는 노릇이라고 포기한 상태였다. 몇 해 후 아이들이 자라서 야구팬이 되었을 때, 나는 또 아이들에게 야구 경기의 즐거운 묘미가 무엇인가를 물었다.

아이들은 남편이 지난날 내게 한 것과 똑같이 처음부터 시작하자며 도표를 그리면서 경기 내용과 운용에 대해 제법 자상하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것이었으나 한심하게도 이해 못하기는 그때나 이때나 마찬가지여서 곤혹을 느끼며 포기하고 말았다. 이런 경우 나도 쉽게 단념을 하면 될 것을 관중이 뜨겁게 열광할 때, 나도 같이 그 기쁨에 참여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이제는 아이들 말대로 야구맹으로 지낼 수밖에 없다. 이것도 현대를 살아가면서 중요한 기쁨 한 가지를 놓치고 있음이 분명하다. 물론 사람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고, 다 내 것으로 소화하며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이쯤 나이에 이르러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신념이 부족하거나 노력이 부족해서 놓쳐 버린 것이 많다. 아직도 망설이고 있는 신앙의 세계, 꿈으로 끝나 버린 공부에의 열망, 그리고 이미 시력이 흐려 더는 읽어 낼 수 없는 좋은 책들, 이러한 속에 얼마나 많은 기쁨들이 있었을 것인가. 그리고 이것들은 얼마나 내 삶을 풍부하게 하였을 것인가. 그러나 이것은 이미 내 것일 수 없는 놓쳐 버린 것이다. 생각하면 모든 것을 다 놓치고 지금 내게 남겨진 것, 그것은 참으로 작고 하잘 것 없는 일부분일지도 모른다. 허지만 이것만이 확실한 내 것이 아닌가. 비록 작지만 이것들은 사금을 줍듯 이 황량한 세상에서 하나 하나 놓치지 않고 모아온 소중한 내 존재의 편린이며 확인일지도 모른다.

지난 가을에 갔던 금호 갤러리의 음악회도 내 생활을 윤기 있게 해 준 아름다운 감동이었다. 그것이 음악 때문만은 아니다. 연주회는 아홉 시가 조금 넘어서 끝났다. 그런 시간에 인적이 드문 도심의 거리에 서 본 것이 얼마 만인가. 산산한 바람이 스쳐가는 가을 밤 하늘에 초열흘 반달이 등잔같이 맑게 걸려 있었다. 음악은 잘 몰랐지만 무엇인가 가슴 벅찬 감흥을 느끼며 마음이 흐믓하였다.

좋은 밤이었다. 아름다운 음악이 있고, 정서가 일치하는 친구들이 있고, 고궁의 지붕 위에 달이 있고, 잠시 어지러운 세속을 잊을 수 있는 밤이었다. 하마터면 놓쳤을지도 모를 소중한 기쁨이었다.

큰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일상에서 놓쳐 버릴 수도 있는 작은 기쁨들, 음악을 모른다고 스포츠를 모른다고 어찌 내 생활이 삭막하기만 하랴. 더러는 놓치고 더러는 얻으면서 오늘도 작은 기쁨을 찾아 그렇게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