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계

                                                                                             안 인 찬

 마음을 비웠다는 말을 가끔 듣는다. 무엇인가 큰 일을 해보겠다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아무런 욕심이 없다는 뜻으로 하는 말이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말 그대로 모든 욕심을 버렸다고 생각했다가는 실망하기 쉽다. 오히려 더 큰 욕심을 들어앉히기 위하여 자질구레한 욕심을 버리고 자리를 넓혀 놓았다는 말로 듣는 편이 옳을 것이다. 욕심을 버렸다느니, 마음을 비웠다느니 하는 고백이 요란한 경우일수록 커다란 욕심들로 속이 꽉 찬 사람으로 나중에 알려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흔한 말로 마음을 비우고 푹 쉰다는 구실로 캐나다의 한 유원지 별장에서 여름 한 달을 지낼 때의 일이다. 내 딴에는 욕심을 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욕심이 그렇게 쉽게 버려지는 것이 아니었다. 겉으로 보면 평상시의 산행보다 홀가분한 차림으로 외국까지 날아간 마음에 욕심이 끼어들었다 한들 대수로울 것이 없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처남은 별장을 예약해 놓고 차까지 한 대 내주며 마음대로 타고 다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런 번잡스러운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다. 그저 공기 좋은 곳에서 조용히 쉬고 싶은 욕심만을 남겨두고 마음을 정말로 비웠었다.

별장이라고 하니까, 우리 나라의 콘도 정도로 상상할지 모르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부엌과 침실이 함께 붙고 자그마한 욕실이 문

하나로 막혀 있는 오두막집이었다. 그래도 더운 물이 나오니까 큰 불편은 없었지만, 출입문의 자물쇠조차 변변치 못한 집이었다. 집에 들어가던 날 주인이 열쇠를 넘겨주면서 열고 잠글 때 문을 약간 들면서 열쇠를 돌리라고 시범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그 약간이라는 것이 상당한 경험이 없이는 가늠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나마 자물쇠를 다루는 일이 나의 손에 겨우 익었다 싶을 무렵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주말에 놀러온 처조카가 몇 차례 장난을 하다가 자물쇠를 아주 고장냈던 것이다. 어른들이 문짝을 약간 들어올리고 내리고 하면서 교대로 재주를 부려 보았다. 그러나 부속이 엉클어진 자물쇠가 우연한 손놀림으로 고쳐질 리가 없었다. 결국 고장난 자물쇠를 그대로 매달아 놓고 지내는 수밖에 없었다.

주인에게 고쳐 달라고 해야 할 일이었지만, 그 동안 재주껏 사용해 온 것을 한국 사람이 며칠만에 고장냈다는 말은 듣기가 싫었다. 외출을 하는 것도 아니고 도둑이 염려되는 시장통도 아닌 터에 출입문을 잠그지 않았다고 그게 불안할 것도 없었다.

그럭저럭 며칠이 지나갔다. 매일 집 주변만 맴도는 생활을 하다 보니 그 동안에 자연스럽게 별장 주인과 자주 마주치면서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하인스라는 별장 주인은 독일 태생으로 고희를 눈앞에 두고 은퇴를 계획중인 몸집이 자그마한 사람이었다. 별장의 주인이 된 지 25년이 지났다는 그가 타고 다니는 차는 놀랍게도 한국산 포니였다. 녹이 슬어 외모가 말이 아닌데 손님들이 타고 온 고급 차들 옆에 버젓이 세워놓고 조금도 기죽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나에게 한국산임을 강조하는 일도 없고 18년째 타다 보니 이제는 고속도로에서도 제멋대로 서는 일이 있다는 말을 남의 이야기처럼 할 뿐이었다.

그 나이에 여남은 채의 별장과 손님들을 관리하는 일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기회를 보다가 마주친 길에 자물쇠가 고장났으니 고쳐 달라는 말을 어렵사리 건넸다. 그 말을 듣고도 그럴 때가 되었다는 듯 담담하게 알았노라는 대답을 하였다. 그러면서 언제쯤 틈이 날지는 모르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로부터 열흘쯤 지나서 가랑비가 내리는 날 하인스가 마침내 자물쇠를 고치러 왔다. 공구상자를 들고 오는 모습이 마치 왕진을 오는 의사처럼 반가웠다. 고장났다는 말을 듣고 열흘이나 지났으니 미안하다거나 혹은 한 마디 변명의 말이라도 할 법하건만 그런 것도 없었다. 반대로 내가 미안하여 문짝을 잡아주고 망치를 집어주고 하면서 조수 노릇을 열심히 하였다.

자물쇠가 신통치 않은 것을 전부터 알고 있었던지 하인스는 새 자물쇠를 사 가지고 왔다. 그러나 그 방향이 고장난 것과는 반대로 되어 있는 것이었다. 하인스는 부속의 일부를 뒤집어서 써보려는 눈치였지만 그렇게 될 일이 아니었다. 이것저것 다루는 솜씨로 보아 그의 손재주가 나보다 나아 보이지도 않았다. 하인스를 도우면서 새 것과 헌 것의 부속품을 비교해 보니까, 헌 자물쇠에서 무엇이 문제인지가 내 눈에는 훤히 보였다. 하인스가 새 자물쇠를 들고 궁리를 하는 동안 나는 헌 자물쇠를 주물렀다. 구조가 복잡한 것도 아니어서 빠진 부속을 제자리에 끼우고 나사를 조여 주고 나니 이미 길이 잘 들었던 자물쇠인지라 아주 말을 잘 듣게 고쳐졌다.

내가 고쳤다고 하면서 열쇠로 자물쇠를 두어 번 열였다 닫았다 해 보였다. 멀쩡한 새 것을 뜯어 놓고 머리 속이 복잡하던 하인스는 멋쩍었던지 “당신, 열쇠 수선 기술 디프로마를 받을 만하군.” 하며 손을 털었다.

뜻밖의 말이었지만 디프로마(diploma)라니, 그 위에 석사(master)가 있고 또 박사(doctor)도 있다는 것을 아는 나로서는 농담일망정 도저히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왕이면 박사 학위를 달라고 떼를 썼다. 하인스는 자기 집은 박사 학위를 줄 만큼 권위 있는 기관이 아니라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내가 떠날 때까지 자물쇠가 고장나지 않으면 그때는 박사 학위를 내놓아야 한다고 입씨름을 하면서 자물쇠 수선을 마쳤다.

별장을 떠나기 이틀 전 오다가다 마주친 길에 또 농담을 시작하였다. “자물쇠는 아직 이상이 없소. 모레면 떠나는데 내 학위증서는 준비가 되고 있소?” 하고 묻는 말에, “곧 도착할 것이오.”라고 하인스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였다. 나로서는 인사 대신 건네는 말일 뿐 실제로 기대하는 바는 없었다. 그런데 별장을 떠나는 날 아침 하인스는 비닐에 씌워진 빳빳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자기 별장 이름을 기관의 이름처럼 무지개 모양으로 구부려 쓴 밑에 내 이름을 금색을 입혀 적은 것이었다. 그런 용지가 있을 리 만무하고 일부러 만든 것이었다. 내용인즉 자물쇠 수선공 디프로마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을 인정한다는 증명서였다. 날짜를 쓰고 하인스가 멋지게 싸인을 하여 증명서의 격식을 제대로 갖춘 것이었다.

그것을 받아들고 고맙다고만 하였으면 좋았을 것을 욕심 때문에 그만 실수를 하였다. “아직도 자물쇠가 멀쩡한데 왜 박사 학위를 안 주느냐?”고 박사 학위 타령을 다시 내놓은 것이다. 마음을 비운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푸념이었다. 어차피 장난인데 디프로마 주면서 박사 학위를 못 줄 이유가 무엇이냐는 나의 속셈이었지만, 하인스로서는 장난중에도 분명한 한계를 지키고 있었다.

그렇게 얻어온 자물쇠 수선공 자격증이 대단한 증명서라도 되는 듯 책상 위에 놓여 있다. 그것을 들여다 보노라면 조랑말 뛰어 다니듯 분주하던 하인스의 모습이 떠오르고 “이제 욕심을 좀 버렸소? 농담에도 한계가 있소. 당신의 한계를 아시오.” 하는 그의 충고가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