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폿집 마포댁

                                                                                         김 수 현

 어린 시절, 가족들이 둘러앉아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는 시간이 좋았다. 채널 선택권은 아버지에게 있었다. 식구마다 물론 취향이라는 것이 있었지만, 아버지가 모처럼 텔레비전을 보시는데 한낱 우리들의 취향 따위가 무엇이랴.

무서운 호랑이로 통했던 아버지는 연속극에 고두심이 나오면, 이  말만은 참지 못하겠다는 듯 텔레비전에 다가 앉으시며,

“야, 이쁘다. 정말 잘생겼어.” 하셨다.

고두심은 젊었을 때부터 품격 있는 미모로 눈길을 끌었던 모양인데, 아버지는 아내와 자식들의 묘한 눈길 따윈 아랑곳없었다. 그래서 나의 은밀한 기억 속에 고두심은 아버지의 애인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고향에 두고 온 아버지의 하나뿐인 여동생, 나에게는 고모되시는 분이 고두심과 많이 닮았다는 말을 후에 듣긴 했는데, 한 번 연결된 고리가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사실 예쁜 고두심이 어떻게 홀로 이 땅에 엉버티고 일어서는 아버지와 허리띠를 졸라맬 것이며, 아버지의 구박에 가까운 무뚝뚝한 애정 표현을 견딜 것인가가 좀 의문이긴 했다.

고두심을 아버지의 애인이라 여겼던 것은 겉멋들린 나의 터무니없는 추측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술이 얼큰하게 취해 들어오셔서 고백하셨다.

“나의 애인은 마포댁이다. 이 녀석들아!”

거의 매일 약주를 즐기셨던, 아니 즐기신다기보다 술에 쩔어 자정이 되어 비틀비틀 들어오셨던 아버지.

“얘들아, 마포댁이 보고 싶어. 마포댁한테 다시 갈까? 마포댁이 이 아버지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니들은 몰라. 아무것도 몰라.”

그리고 쓰러져 잠이 드셨다. 그 날만이 아니고 마포댁 부르는 소리는 후에도 되풀이되었다. 아무리 술이 과하셨다 해도 술기운에 하시는 농담이려니 해도 은근히 집안의 기둥이 걱정되었다.

 

세월 지나고, ‘마포댁’이란 북녘 땅에 두고 온 모든 것들의 암호명임을 알게 되었다. 우습지는 않지만, 아니 생각할수록 가슴 아프지만 아버지로서는 유머였다.

컴퓨터에 내장된 기억들을 모두 들추어 낼 때 ? 왏?찍는 것처럼 아버지는 마포댁으로 꿈에도 그리던 고향집과 부모님과 친구들 모두를 불러 내셨던 것 아닐까.

“흥남 부둣가에 막 잡아온 생선들이 퍼덕퍼덕 뛰는데, 그놈들을 구워 먹으면 맛이 기가 막혔지.”

나는 사실 그런 이야기는 재미없었고, 마지못해 시큰둥하게 듣다가 ‘마포댁’ 이야기라도 나오면 두 눈을 반짝였다. 자식들에게 들려주는 고향 이야기, 그것은 아버지를 한결 쓸쓸하게 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아버지는 또 그 이야기를 반복하셨다.

 

내가 아버지의 애인이라고 놀렸던 왕대폿집 마포댁.

마포댁은 보고 싶고 가고 싶은 곳, 아버지를 가슴으로 사랑했던 이들이 언제까지라도 온전히 살고 있는 아버지 마음의 고향임을 나는 언제인가 알게 되었고, 그 후로 오랫동안 나 또한 마포댁이 보고 싶었다.

지금은 기억 속에 아버지의 혀꼬부라진 소리가 맴돈다.

“니들은 몰라. 아무것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