훨씬 따뜻한 겨울

                                                                                                     최 소 원

 따스함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그런데 우리 집은 요즘 같은 날씨에도 창문을 열어 보지 않으면 겨울인지 여름인지 모를 정도로 덥기(?) 때문에 사실 따스함이 별로 그립지 않기도 하다. 어쩐 일인지, 아마도 지역 난방이 너무 잘 되는 탓인지 한겨울인데도 집안에서는 반팔을 입고 아이들은 땀띠로 고생을 할 지경이다. 방마다 달린 온도 조절기를 제일 밑으로 내려놓기도 하고, 관리 아저씨를 불러 난방기를 고쳐 보기도 하지만 별 효과가 없어서 베란다 한쪽 창문을 한 뼘 정도 열어놓고 산다. 누군가 손님이라도 오시면 ‘이렇게 덥게 해 놓고 창문까지 열고 살다니 정신이 나갔군.’ 하고 흉을 보는 것 같아 민망하기 짝이 없다.

이 추운 겨울날, 창문으로 허무하게 솔솔 빠져 나가는 더운 공기를 바라보고 있노라면(내 눈에는 꼭 보이는 것 같다) 뭔가 큰 죄를 저지르는 것만 같고 어딘가에는 틀림없이 있을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지나치게 남아 도는 따뜻함을 전할 방법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대학에 다녔던 때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월동 준비를 위한 난로 미팅’이라는 것이 성행했다. 친구 중 하나는 바로 그 난로 미팅에서 만난 사람과 결혼까지 하게 되었는데, 그네들은 ‘겨울에는 따따시한 마음을 가진 사람과 함께 있으면 훨씬 안 춥기 때문에’라는 이유로 만나기 시작했다가, ‘겨울 한 철을 함께 보내고 나니 정이 들어서’라고 하며 계속 만났고, 몇 번인가의 겨울을 따뜻하게 함께 보내고 나서 결혼을 하였다.

요즘에도 그런 미팅이 유행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말처럼 겨울에는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줄 사람이 하나 곁에 있다면 춥지 않다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진리인 듯하다.

내가 추위를 무척 많이 타면서도 겨울을 좋아하는 것도 겨울에는 그렇게 ‘모든 따뜻함’이 더욱 소중하게 보인다는 데에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쩐지 따스한 것이 그립고 따스한 사람이 보고 싶어지고… 외부적인 싸늘함이 우리들 마음 속은 더욱 따뜻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찬바람이 몰아치는 거리를 웅크리고 걷다가 따뜻한 불빛이 보이는 찻집을 보면 얼른 들어가고 싶어진다. 차 한잔 시켜 놓고 몸을 녹이면서 뜨거운 물이 담긴 컵을 손으로 감싸 꽁꽁 언 손도 녹이고, 신발 속에서 발도 꼼지락거려 본다.

학교에 다닐 때는 수업을 들으러 가다가 너무 추워서 강의실까지 다 못 가고 중간에 ‘따뜻한’ 찻집으로 샌 적도 무척 많았다. 나는 원래 추운 것이라면 질색을 해서 남들 보기에 답답하고 둔해 보여도 옷을 많이 입고 중무장을 하고 다녔다. 옛날에도 여학생들은 멋을 낸다고 덜덜 떨면서도 얇은 옷을 입고 다녔는데, 나는 11월부터 3월까지 변함없이 두꺼운 코트를 입고 다녔다. 강의실이 춥다고 수업도 빠지고, 추운 게 싫다고 무거운 옷을 한 짐이나 입고 다니면서도 겨울이 좋다고 하는 나를 친구들은 이해가 안 간다고 하며 웃었다.

사실, “겨울을 좋아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무척이나 부끄럽고 사려깊지 못한 짓이다. 코트에 부츠를 신고 장갑에 목도리까지 완전무장을 한 내가 매서운 바람에 “추워서 죽을 뻔했다.”고 해 보아도 그것은 그저 잠깐씩 추위를 ‘즐기는’것에 지나지 않고, 추위에 떨다가도 따스하고 안락한 곳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좋아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긴 겨울 내내 추위와 정말 지긋지긋하게 ‘싸워야’하는 사람들에게도 겨울이 좋아하는 계절이 될 수 있을까.

대학 1학년 겨울의 어느 날 친구에게 ‘겨울이 좋다’는 말을 했다가 호된 비난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때 ‘가난한 이웃의 겨울’에 대해 돕고 싶은 마음은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의 겨울을 이해하는 것과 내가 겨울을 좋아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해서 친구를 지나치게 편협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 후 1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겨울이 되어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면 언제나 친구의 말이 생각났고, 편협했던 것은 친구가 아니라 나였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해마다 겨울이 시작되면 나는 가난한 겨울을 지내야 하는 사람들에게 무언의 격려를 보낸다. 그러나 따뜻하고 평온한 현재에 이대로 안주하고 싶은 소시민적인 모습뿐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언의 격려뿐, 어떻게 하면 ‘더불어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을까 하고 열심히 생각을 해 보아도 그럴듯한 생각은 떠오르지 않는다.

아파트 복도를 걸레질하는 청소 아주머니에게

“아주머니, 들어와서 뜨거운 차 한 잔하고 가세요.”

하고 차를 끊여 대접하고, 그것으로 따뜻한 겨울을 누리고 있는 미안함을 애써 누르며 나는 점점 더 마음이 가난한 겨울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