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  론 ─

李泰俊의 수필

                                                                                         김 용 구

1. ‘하늘’

2. ‘산’

3. ‘고독’

4. ‘설중방란가’

5. ‘해촌일지’

6. 평론 ‘참다운 예술가 노릇’

 

이태준(아호 尙虛, 1904 ~?)은 어딘가 예술지상주의자 같다. 그는 문인으로 탄탄한 자리를 잡아가고, 문단에서는 그의 작가론 또 예술론을 운위하고 있을 때에도 “나는 아직 작가생활이 아니었다. 실험적으로 습작을 해왔다.”며 “이제부터는 정말 예술가 노릇을 시작해야겠다.”는 말을 했었다. 문학작품을 예술로 완성하려 한 그의 지향과 정열을 엿보게 하는 말이다.

차제에 그의 명저 『문장강화』에서 그의 수필관을 살펴보자.

 

“…단적이요 疎野해서 필자의 면목이 첫 마디부터 드러나는 글이 이 수필이다. 그 사람의 자연관, 인생관, 그 사람의 습성, 취미, 그 사람의 지식과 이상. 이런 모든 ‘그 사람의 것’이 직접 재료가 되어 나오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있어서나 수필은 자기의 심적 나체다. 그러니까 수필을 쓰려면 먼저 ‘자기의 풍부’가 있어야 하고, ‘자기의 美’가 있어야 할 것이다.”

 

또 “수필은 엄숙한 계획이 없이 가볍게 손쉽게 무슨 감정이나 무슨 의견이나 무슨 비평이나 써낼 수가 있다. 인생을 말하고 문명을 비평하는데서는 적은 논문일 수 있고, 偶感이나 서경, 서정에 있어서는 모다 소작품들일 수 있다.”면서 ‘예술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태준의 수필집 『무서록』(3판, 1944, 박문서관)은 수필의 고전으로 많은 독자를 갖는다. 『문장강화』와 함께 오늘도 수필 지망자의 필독서 격이다. 그는 『무서록』 외에도 『상허문학독본』, 그리고 신문, 잡지에 써낸 많은 기타 수필들을 남기고 있다. 따라서 수필에 대해 이 소설의 匠人이 토로하는 속내얘기는 우리도 경청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수필처럼 쉬워 보이면서 어려운 글은 없을 것이다. 수필은 그렇게 쉽게 써지지는 않는다. 수필처럼 꾸밀 수 없는 글이 없고, 그러니까 수필처럼 참말을 쏟아 놓을 글이 없고, 그러니까 수필처럼 작자를 체온에서부터 영혼까지 드러내는 글이 없고, 그러니까 수필처럼 생활이 아직 익지 못한 풋인생으로는 살 수 없는 글은 없을 것이다.

─ ‘路傍草’를 읽고

 

나는 이 소고에서 『무서록』, 『상허문학독본』 및 기타의 상허 수필 중에서 소설의 발취, 평론, 기행을 제쳐놓고 몇몇 수필을 읽으며 떠오르는 감상을 적고자 한다. 그러니까 비평 같은 것을 시도하자는 건 아니다. 필자 나름의 감상법과 그렇게 얻은 감회를 적음으로써 글 빚을 갚아볼까 한다.

 

1. ‘하 늘’

 

이 수필은 『문학독본』 첫머리에 실려 있다. 이 수필을 모두에 실은 것은 작가가 그랬건 편집자가 그랬건 그럴 듯하다. 글도 그렇지만  무엇이 책머리를 장식하느냐는 작자의 고안(디자인)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특히 동방인은 하늘을 태초요 근원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상허의 시절까지도 어린이의 조학 교본인 『천자문』을 펴면, ‘하늘 천 따 지…’로 시작하고 있지 않은가.

작자는 나름으로 하늘에 대한 찬송을 적고 있다.

‘안윽한 맛과 우리를 덮어 보호하는 맛과 그리고 그 위에 하느님이 계시고 모든 것을 우리 인간을 위해 총찰하시고… 그래 믿었고 감사한 하늘이었다. 가늘은 빗발과 따스한 햇볕은 하늘의 즐거우심이요, 사나운 번개와 우뢰는 하늘의 성나심이었다.’

이것은 하늘에 대한 작가의 감정인가 생각인가. 여기서 이런 물음을 던지는 것은 상허 자신이 문학에서 우선할 것이 감정이냐 사상이냐를 열렬히 가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허가 던진 이 물음을 다시 생각할 계제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상허는 우리말에 대한 남다른 감각으로 흥미있는 생각거리를 들고 나온다.

“해, 달, 별, 비, 눈, 땅, 뫼, 들, 흙, 돌 이런 것을 보면, 하늘도 혹은 태초 그냥 ‘한’이었는지 ‘울’이었는지, 또는 달리라도 어떤 외마디 명칭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작가는 우리말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고, 어휘 그 중에도 외마디 어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고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말로 자연계의 명칭이 많은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의 수필 제목을 유심히 일별하니, 그의 수필 제목으로 외마디 말이 여럿임을 알게 된다. 이를테면 『무서록』에 ‘벽’, ‘물’, ‘밤’, ‘산’, ‘발’, ‘돌’, ‘성’, ‘난’, ‘책’, 『문학독본』에 ‘강’, ‘꽃’과 ‘책’이 중복되고, 그리고 기타 수필에 ‘소’가 있다. 그 가운데서 인공은 ‘벽’, ‘성’, ‘책’뿐이다.

하늘에 대해 작자는 “일대 궁륭이다. 이 궁륭감 때문에 우리는 하늘을 친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독자의 욕심 같아서는 그래서 하늘을 쳐다보는 기쁨을 왜 한 마디라도 하지 않았나 해서 궁금하다.

 

 

2. ‘산’

 

상허는 알다시피 산, 산도 깊은 산 출신이다. 그런 작자의 산 수필이니 반갑다.

작자는 자기 내력을 말한다.

“산은 슬프다. 강원도는 워낙 큰 산이 많다. 청원 용담(龍潭)이란 촌에서 안협(安峽) 모시울이라는 촌까지 70리 길은 내가 열 살, 열한 살 때 여러 차례 걸은 길이다.”

그런데 ‘산은 슬프다’고 한다. 그 한 마디로 작자는 할 말을 다 했다. 어떻게 산이 슬플 수 있는가. 산이 희로애락을 알 수 있는 건가. 아니다. 산이 슬픈 게 아니고 작자가 슬픈 거다. 어려서 산을 가면  슬펐고, 장성한 작가가 산을 제재로 글을 쓰자니 산의 회상이 슬픈 것이다.

“산협길이라 산 너머 물이요 물 건너 산인데다, 제일 큰 물 ‘더우내’를 건너서 올라가기 시작하는 새수목 고개는 올라가기 십 리, 내려가기 십 리의 큰 영이다. 그 영을 나는 여름철에 혼자도 몇 번 넘어 보았다.”

산지의 생김새를 작자는 짧은 글로 그럴 수 없이 표출한다. 비록 산들이 높고 험준하더라도 그 고장에 사는 소년이 슬픈 사연이 아니라면 산이 슬프지 않고 오히려 우람하고 장하기만 할 수도 있다.

철원 용담은 작자가 소년 시절 한때를 보낸 시골이다. 그는 철원 땅 구장면 산명리에서 나서 여섯 살 때 집안이 러시아령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해 간 직후 아버지가 객사하자, 유가족은 우여곡절 끝에 고향으로 되돌아온다. 아버지를 여윈 뒤 삼 년만에 어머니마저 타계했다. 큰딸 12세, 외아들 태준 9세, 둘째 딸 세 살을 남겨두고.

이리하여 삼 남매는 고향 용담의 일가에 맡겨졌다. 태준은 열한 살 때 안협의 일가 집에 입양했지만, 오래 머물지 못하고 용담으로 되돌아가 사립 봉명학교에 다녔다. 이런 처지의 소년이 용담과 안협을 오가는 길이 슬플 수밖에 없었다. 그런 불행한 소년에게는.

 

‘저희끼리만 뜻있는 새 소리도 길손의 마음에는 슬픈 소리요, 바위 틈에 스며 흘러 한 방울, 두 방울 지적거리는 샘물 소리도 혼자 쉬이며 듣기에는 눈물이었다. 더구나 산마루에 올라 천애에 아득한 산 갈피들이며, 어웅한 벼랑 밑에 시퍼런 강물이 휘돌아가는 것을 볼 때 나는 어리었으나 길손의 슬픔에 사무쳐 보았다.’

 

그러니 수필 ‘산’의 결구는 ‘산은 무섭다’가 되고 만다.

이 수필의 기필과 결구는 짜임새와 균형을 나타낸다. 글에는 낱말 하나, 점 하나 군더더기가 없다. 이런데서 상허는 서방적인 균제감각을 풍긴다. 서방적이라고? 상허라고 서방적인 데가 없을라고.

그는 도쿄에서 소피아(上智) 대학에서 수학했다. 그의 수필 ‘바다’의 결구를 보라.‘바다는 영원히 희랍으로 즐겁다’ 한다. 어찌 바다가 난데없이 ‘희랍으로’ 즐거운가. 그의 즐거운 바다는 그리스를 둘러싼 에게해를 연상케 하는가 보다. 나에게 수필 ‘산’의 언어 균제미는 그리스 미학의 균제미를 풍긴다고 말하고 싶다.

 

3. ‘고 독’

 

이 수필은 ‘뎅그렁! 가끔 처마 끝에서 풍경이 울린다’는 말로 분위기를 잡는다. 그리고 이어 ‘산에서 마당에서 벌레 소리들이 비처럼 온다’고 한다. 상허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감각적 표현이다.

그리고 옆에서 자고 있는 가족의 숨 소리.

 

‘아내의 숨 소리, 제일 크다. 아기들의 숨 소리, 하나는 들리지도 않는다. 이들의 숨 소리는 모두 다르다. 지금 섬돌 위에 놓여 있을 이들의 세 신발이 모두 다른 것과 같이, 이들의 숨 소리는 모두 한가지가 아니다. 모두 다른 숨 소리들은 모두 다를 이들의 발 소리들과 같이 지금 모두 저대로 다른 세계를 걸음 걷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꿈도 모두 그럴 것이다.’

 

아내와 아기들의 숨 소리, 섬돌 위 신발들, 다른 숨 소리와 다를 발 소리, 다른 세계와 그럴 꿈 ─ 어쩌면 이렇게 자상하고 아름다운 상념일까.

고독 같은 것이 끼여들 자리는 아니다. 그런데도 작자는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앉았는가 하고 물으며, 그들을 깨우기만 하면 외로움이 물러갈 것인가 하고 되묻는다.

 

‘아내와 아이가 옆에 있되 멀리 친구를 생각하는 것도 인생의 외로움이요, 오래 그리던 친구를 만났으되 그 친구가 도리어 귀찮음도 인생의 외로움일 것이다.’

 

이 수필은 결국 쓸쓸하고 고요한 데로 돌아가야 할 것 아닌가 하고 끝난다.

나는 한 장의 빛바랜 가족 사진을 간직하고 있다. 신문에서 오린 것인데 이태준 일가의 것. 상허 가족의 장면이 나오는 이런 수필을 읽다간 꺼내 보곤 한다. 사진에는 상허와 처 이순옥씨와 나란히 차녀 소남, 장녀 소명, 차남 유진(상허가 안은), 삼녀 소현, 그리고 장남 유백이 웃음띤 얼굴들을 하고 서 있다.

어쩌면 그렇게 단란하고 행복한 가족의 모습인가.

글에서 상허가 식구들의 신발이 섬돌 위에 ‘셋’이라 한 걸로 미루어 사진은 글보다는 여러 해 뒤에 찍은 듯하다. 그런데 일가의 행복한 분위기만은 여전하다.

사진의 배경을 자세히 보니, 창호지를 바른 미닫이 위에 ‘賞心樓’란 편액이 보인다. ‘상심’은 경치를 즐기는 마음이니 그런 높은 방이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사진의 집을 찾아보았다. 서울 성북동 길로 가다가 태고사 못 미처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바른쪽 언덕에 단정한 한옥 한 채가 서 있다. 풍상을 말하듯 목재는 거므스름한 빛이 되었지만, 기와부터 집 전체가 얌전하게 가꿔져 있다. 널찍한 뜰에는 화목도 보인다. 상심루 반대쪽엔 ‘閒香樓’요. 대청마루의 유리문 위에는 완당의 필체로 ‘耆英世家’ 또 ‘壽硯山房’이라 새긴 나무 현판들이 걸려 있다. 집 안에 들어서면 방문마다 위에 현판이 걸려 있다는데 나는 볼 수 없었다.

이 집 뜰에는 바른쪽에 통용문이 있고, 왼쪽에 새로 자그마한 한식 목조 문이 세워졌다. 놀라운 것은 1933년 나이 서른에 상허가 지은 이 집이 고스란히 남아서 단정하고 알뜰하게 가꿔져 있다는 사실이다. 결혼 삼 년만에 이 집을 지어 살면서 다섯 남매를 두었다. 상허는 대표작들을 대개 이 집에서 썼고, 『무서록』에 실린 수필들도 여기서 많이 쓴 것이다. 그러니 이 집은 상허 이태준 문학의 산실인 것이다.

그런데 임자들은 어데 가서 무얼 하고 있는가. 올해 11월 4일은 상허 탄생 94주년인데, 지금 그의 생사조차 감감하다. 그리고 그의 아내며 자녀들은 어찌 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현재 성북구 성북동248번지의 아름다운 집에는 그의 생질녀인 이애주씨가 거주하고 있다.

나도 이 집 밖에서 서성이다 돌아섰지만, 기나긴 세월 동안 그 집의 내력을 알고, 또 상허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얼마나 찾았을 것인가. 그런 마음들이 모아져 그 집은 서울의 민속자료 11호로 등록돼 있다.

상허는 수필 ‘고독’에서 인간적 고독을 말했다. 한데 그의 인생의 역운(歷運)에 비춰 본다면, 그 인간적 고독도 희망에 부풀어 있을 때의 행복 속의 고독이었다. 어떤 뜻에서 그것은 문학적 고독이라고도 하겠다. 문학적 상념으로서의 고독이란 말이다.

상허는 다른데서 성격이 다른 ‘고독’을 말하고 있다.

 

목전에는 독자가 없어도 좋다. 아니 한 사람도 없어도 슬플 것이 없다. 그 고독은 그 작가의 운명이요 또 사명이다. 고독하되, 불리하되, 자연이 준 자기만을 완성해 나가는 것은… 예술가만의 영광인 것이다. ─ ‘누구를 위해 쓸 것인가’에서

 

이것은 예술가 또는 작가의 고독이다. 예술, 문학의 천직이 요구하는 고독이라 해야 한다. 그것은 창조의 고독이라 할 것이다.

 

 

4. ‘설중방란기’

 

이 수필은 상허 수필의 큰 줄기를 이루는 고아풍에 속하는 한 일품이다.

휘문고보 때 스승이면서 상허의 문재를 발굴하여 키워준 은사인 국문학자 가람 이병기 선생이, 난초 꽃이 피었으니 어느 저녁 오라는 기별이 있어서 시인 정지용과 작가 이태준이 함께 가람 댁을 방문한다.

그리하여 상허가 가람 댁에 가서 스승과 문우와 함께 옛 사람이 말하는 ‘문향십리’에 젖는 호사를 적은 것이다.

난초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학문의 스승과 제자의 만남이며 때가 세모여서 스승을 중심으로 향내와 이야기와 웃음이 가득한 망년 모임이 되었다.

좌중에서 주인 가람 선생은 이야기를 잘 하고, 객 중에서 정지용은 웃음소리가 맑다고 그 분위기를 전한다.

난초 꽃으로 하여 사제의 교환이 이뤄지는 이런 풍습도 이제는 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이 수필이 풍기는 고아한 맛(‘맛’은 상허가 좋아하는 말)은 한결 더한다.

이 수필은 당시로서는 선구라 할 『시와 소설』(1936)이란 제목의 구인회(九人會) 무크지에 나왔다. 삼 년 전에 발기된 구인회의 회원은 변동이 생겨 이 무크지가 나온 때의 동인은 김기림, 박태원, 이무영, 이태준, 정지용과 새 회원 김유정, 김환태, 이상, 조용만이었다.

 

 

5. ‘해촌일지’

 

이 글을 초하며 ‘해촌일지’를 읽었다. 날짜로는 7월 2일(목)부터 7월 22일(수)까지 일기를 책에 네 쪽 분량으로 하고 있다. 작자가 일지를 수필집에 엮어 넣은 것이 좋았다. 그의 어떤 글 부제로 일기문학의 대가 아미엘의 이름을 부친 것을 보고 반가웠다.

읽어가며 나는 여기저기 밑줄을 그었다.

 

‘아침 다섯 시 이슬비를 맞으며 안변역에서 청진행을 내리니, 주위를 한 번 둘러 볼 새도 없이 간성행이 들이닿았다. … 바다! 손뼉을 치고 싶었다. 쪽빛으로 푸르면서도 운무(雲霧)에는 꿈속같이 아득한 동해, …내려서 밟아 보고 싶은 모새밭이 군데군데 나온다. 송전까지는 작년 여름에 잠깐 왔더랬었다.’ ─ 7월 2일

 

‘낮에도 텅 비었던 길, 밤에도 사람의 그림자는 하나도 없다. 달빛만이 꽉 차 있었다. …길뿐 아니라 솔밭 위에도 철로 위에도 으리으리한 바다 위에도 달은 또한 큰 바다다. 이 달의 바다 아래에서 물의 바다는 너무나 조그맣구나!’ ─ 7월 3일

 

‘내 방 앞이 바로 울타리도 없는 보통학교 운동장이다. 종치는 소리에 나도 나갔다. 운동장 밖 솔밭에 들어서서 조회를 구경했다. …그러다가도 코훌쩍이들은 땅만 보고 노는데, 이들은 갑자기 새침해 가지고 하늘을 쳐다보는 소녀도 더러 있다. 그런 때 그의 총명한 동공에는 무엇이 그리어질까?’ ─ 7월 4일

 

‘개성으로 서사정(逝斯亭)을 보러 갔던 길에 집에 들러 친구들과 함께 송전으로 오다.’ ─ 7월 11일

 

“이웃 할머니는 칼을 달래 들고 삼밭머리로 갔다. 그런데 한식경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닭을 놓쳤나 하고 찾아가 보니 이 딱한 노인, 한 손엔 닭을 붙든 채, 한 손엔 칼을 잡은 채, 눈물이 글썽해 가지고 그냥 멍청하니 앉아 있는 것이다.

‘왜 어태 안쥑이고 앉아만 있소?’

‘차마 내가 기르던 걸 못 찌르겠세유.’

하고 일어서는 것이다.” ─ 7월 14일

 

‘소설 사흘치를 써가지고 고저로 부치러 가다. 송전에 우편소가 어서 생겨 서류(등기)나 환전이 여기서도 되었으면.’ ─ 7월 22일

 

 

6. 평론 ‘참다운 예술가 노릇’

 

‘나의 작품에 애수는 있고 사상이 없다는 것은 가장 쉽고 정확한 표현들이다. 그러나 이 작가는 이런 범위 내에서만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은 속단이다.’

이 말은 『상허문학독본』에 평론으로 분류되어 들어 있다.

‘문학은 사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감정이기를 주장해야 할 것이  철학이 아니라 예술인 소이다. 감정이란 사상 이전의 사상이다. 이미 상식화된 학문화된 사상은 철학의 것이요 문학의 것은 아니다.’

이 글은 『무서록』에 들어 있는 글 ‘누구를 위해 쓸 것인가’에 나오는 말인데, 같은 글이 『상허문학독본』에도 평론으로 분류되어 들어갔다.

첫째 인용은 상허에 대한 비평에 대한 본인의 응답인데, 전반은 스스로 정확하다 했는데, 후반은 그렇게만 보지 말라는 불긍정이다.

둘째 인용은 상허의 아주 명확한 수신 표명이다. 여기서도 첫 문장은 분명하고 필자도 그의 주장에 참견할 생각이 없다 . 다만 셋째 문장에 대해서는 요약하여, 사상은 철학의 것도 될 수 있고 문학의 것도 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상허는 다른데서도 쓰고 있다. 『문학독본』에서 평론으로 분류된 글 ‘창작의 고심’에서다

‘문학작품에서는 사상보다는 먼저 감정이다. 사상으로 학문화하기 이전의 사상, 즉 사상을 거친 감정이라야 할 것이다.’

상허가 여기서는 ‘사상을 거친 감정’으로 사상에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

필자가 상허의 수필을 좋아하는 것은 그의 ‘문장이 좀 나은 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독특하게 표현하려고 애쓴 문장에다 하늘, 산, 고독, 난, 해촌이건 또 무엇이건 담고 있는 상허의 생각에 끌려서 좋아하는 것이다. 나는 상허의 생각을 상허의 사상이라 여긴다. 상허의 글이라도 그의 생각, 즉 사상이 없는 글이라면 외면하겠다. 아니 생각과 사상이 없는 글이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나는 여긴다. 왜냐하면 말과 글이란 어떤 의미를 실어 표출하는 그릇이고, 어떤 의미란 생각과 사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상허는 그의 수필로 독자와 우리 문학을 그럴 수 없이 풍요롭게 하고 있다.

 

 

 

김용구

전 한국일보 논설위원.

저서 『동과 서 어디서 만나는가』, 『서광이 비칠 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