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인 천료작 -

 귀화식물

                                                                                       이 승 민

 정선 숙암 계곡을 지나는 도로 옆에서 외국인이 루드베키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이런 깊은 산 계곡까지 외국인이 놀러 온 것이 놀라웠다. 금발의 외국인과 노란 루드베키아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원도에서도 오지에 속하는 이곳 정선 길은 아직 오염을 모르는 데다 그 경관이 비경이라, 지나는 차량의 속도가 느리기만 하다. 나 역시 즐겨 이 정선 길을 달리면서 짙푸르러지는 원시림과 산야초를 감상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는데, 얼마 전부터 이질감이 느껴지는 풍경이 하나 나타난 것이다.

이런 외진 곳에서 외국인이 아주 낯설게 보이듯이, 길 옆에는 외국식물인 루드베키아가 샛노란 색으로 활짝 피어 산천의 풍경을 낯설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 닦은 길 옆 빈터에 루드베키아를 심어 가꾼 모양인데, 이제는 아주 무성하게 자라 그 노오란 꽃무리가 녹음을 뭉텅뭉텅 잘라내고 있다. 그리고 주변의 다른 야생 풀꽃들을 제압해 버려서 드문드문 핀 패랭이꽃이나 하얗게 핀 까치수염이 되려 풀죽은 모습이다.

루드베키아는 북아메리카가 고향인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우리 이름으로 삼잎국화이다. 루드베키아는 도시 주변의 도로나 철도 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공해에 강하며 꽃이 크고 화려하여 도로변 조경으로 들여와 많이 심어진 것 같다. 철길과 신작로를 따라서 가녀린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던 곳은 이제 이 삼잎국화가 자리바꿈하여 많이 자라게 되었다. 그러나 빼어난 자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이런 심산의 지방 도로에서까지 귀화식물을 보는 것은 왠지 마음이 언짢다.

오늘 삼잎국화를 배경으로 활짝 웃고 서 있는 외국인의 모습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 것도, 외국인과 귀화식물, 아무래도 우리 산야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남의 풍경 같아서였을 것이다.

색깔이 너무 강렬한 탓일까. 물론 색깔이 강렬한 산야초도 있다. 주홍색의 원추리나 노란색의 물레나물꽃, 남청색의 용담과 진홍색의 동자꽃 등도 화려한 빛깔로 피지만, 그것들은 주위의 푸름과 잘 어울려 아름답다고 생각했을 뿐 야단스럽게 화려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귀화식물이라면 곧잘 거부 반응부터 보이는 내 습관 때문일까. 귀화식물이 고향의 꽃들을 침범하고 우리 꽃이 사라져가는 것이 못내 안타까워서 일부러 멀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 집 베란다에는 베고니아와 제라늄 그리고 이름 모를 외국 꽃들이 있다. 꽃이 아름다워 꺾꽂이를 해오고 싹을 분양받아 이식한 것들인데, 물을 주고 정을 주고 기르다 보니 이질감을 느끼기보다 어느 새 내 마음의 한 부분이 되었다.

나는 그 꽃들을 보며 가끔 김동명 시인의 ‘파초’를 떠올린다.

‘남국을 향한 불타는 향수/너의 넋은 수녀보다 더욱 외롭구나!/… 나는 샘물을 길어 네 발등에 붓는다//이제 밤이 차다/나는 또 너를 내 머리맡에 있게 하마’

이 시를 읽고 나면 나는 파초에게서 마치 첫 이민 세대가 느꼈음직한 고독함을 느끼게 된다.

시인이 물을 주고 정성을 다하여도 언뜻언뜻 비치는 고독함, 그리고 국적이 다른 파초와 시인간의 이질감, 그것이 바로 외국 식물이나 외국인에게서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파초는 예전에는 주변에서 보기 힘든 희귀한 식물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시인이 쓴 이 시를 외우면서부터 파초는 내 마음 속에서 나의 정서로 녹아 우리의 식물로 생각이 들게 되었다.

루드베키아는 아직 나와 긴 시간을 보내지 않아서 이질감을 느끼는지 모른다. 얼마나 긴 시간이 흘러야만, 얼마나 가슴 깊이 들어와야 ‘우리’가 될까.

일제 때 외국에서 들여와 전국의 사방지나 황폐지 복구용으로 심었다는 아카시아나무와 족제비싸리는 내게 고향의 꽃처럼 기억된다.

아카시아나무 꽃을 따다 먹기도 했고, 소엽을 훑어낸 줄기로 파마를 하기도 했다. 전국 어디서고 마구 번져 나간 아카시아나무를 이제는 쓸모없는 나무라고 하여 마구 잘라내고 있는 것이 섭섭하기까지 했다.

숙암 계곡 길가에는 암자색의 족제비싸리 꽃이 줄지어 피어 있다. 어릴 때 강변 모래사장을 걸으면서 한아름 꺾기도 했고, 이른 봄에 그 새순을 잘라 붉은 진액을 손톱에 매니큐어처럼 바르기도 했다.

싸리꽃 아래엔 개망초도 보인다. 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야산과 들을 가득 메우고 피어 있던 정겨운 꽃. 한꺼번에 필 때는 마치 들판에 하얗게 눈이 내린 듯했다.

그런데 어린 시절부터 함께 보아 왔기 때문에 이런 꽃들은 귀화식물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우리 민들레의 자리를 차지한 서양 민들레, 물봉선화보다 먼저 친했던 봉숭아꽃, 길가 어디서나 흔히 보이는 달맞이꽃, 이제 그 꽃들의 고향이 어디냐고 족보를 따질 필요가 없게 되었다.

가을이면 길을 따라 코스모스가 활짝 필 것이다. 마치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가을 꽃인 양 오랫동안 우리의 정서를 담아온 꽃이다. 외래어를 그대로 부르는데도 익숙해진 만큼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향수를 자아낸다.

앞으로 십 년이 더 지난 뒤에도 저 루드베키아꽃이 낯설게 보일까. 삼잎국화란 우리 식의 이름까지 달고서 이곳 심산유곡까지 번식하고 있는데…….

처음엔 낯설어서 너 누구니? 너 어디서 왔니? 하고 거리를 두고 대하다가도 그것들이 묵묵히 적응하여 살게 되면 그만 식구처럼 정들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귀화식물에 무슨 외래문화의 무분별한 수용이니, 외국산 제품의 선호니 하며 배척할 일은 아니고, 또 고유문화니, 전통이니 하며 꺼릴 일도 아니지 않는가.

근래 우리 꽃 가꾸기 모임이 활발한 것은 참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라지고 잊혀져 가는 우리 꽃을 보호하고 보급하여 그 아름다움을 계속 즐기자는 마음에서이지, 그렇다고 귀화식물을 무조건 배척하자는 뜻은 아닐 것이다.

지금은 낯설어도 왕성한 자생력으로 계속 우리 산천에서 함께 살 것이 분명한 루드베키아, 내가 루드베키아 앞에서 사진을 찍어도, 아카시아나무 아래서나 망초 앞에서 사진을 찍을 때처럼 어색하지 않게 된다면, 그 곁에 원추리나 패랭이꽃이 함께 어울려 자라는 풍경도 더 이상 어색하지 않게 되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푸른 길을 따라 이어진 루드베키아의 노란빛이 다사롭게 느껴진다. 마음을 열고 한 걸음 다가선다. 흐릿한 날씨 속에서 루드베키아들은 땅에서 햇살을 가득 피워 올리는 것 같다. 환한 대낮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