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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의 장례식

                                                                                 이 경 은

 올 한 해에는 주위에 세상을 뜬 사람들이 많았다. 친구나 아는 분들의 부모님이 노환으로, 또는 괌 비행기 사고로 슬픔을 당한 일들이 그런 것이다. 손으로 대충 꼽아도 열 번이 넘는다.

처음엔 해[年]의 운수가 사나워서인가 했더니 그도 아니다. 연배가 같은 친우들이니 자연 부모님들이 노환으로 세상을 뜬 것이다. 전에도 이런 일들이야 없지 않았지만 마음이 쓰이질 않았다. 허나 세상사에 그나마 철이 들어서인지, 이젠 들으면 그냥 넘기지 않고 일일이 챙기게 된다.

지난해 개인적으로 인연이 큰 두 분의 장례식이 있었다. 한 분은 90세에 돌아가신 외조모이고, 또 한 분은 불교계의 거목으로서 학술 열반을 한 스승 이기영 박사이다.

사십이 넘도록 결혼식이나 무슨 축하연에나 가보았지 장례식장에는 거의 가 본 일이 없는 나로서는, 모든 일들이 남달리 마음에 와 닿았다. 예전 같으면 죽은 사람들 보러 간다는 것은 괜시리 무섭고 꺼림칙하여 장례식장에 가 볼 생각은 엄두도 안 냈다. 부득이 한 경우 조의금만을 인편에 보낼 뿐이었다.

그런데 두 분의 장례식에는 웬일인지 마지막으로 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자식을 열이나 기르면서 힘든 세월을 살아 내신 외조모의 일생과 학술적으로 치열한 구도의 길을 걸어오신 스승의 마지막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보고 싶었다. 전혀 다른 두 길을 걸어오신 분의 마지막 모습은 어떻게 다를까 하는 것이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사실 그 동안은 그저 삶의 탄생이나 생명력, 기쁨, 이런 희망적이고 환상적인 것들에 마음이 더 이끌렸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그런 자리는 피했다. 사람의 마지막 순간을 본다는 것이 참으로 무섭고 견디기 힘들 것 같았다. 그런 장면들을 보고 나면 삶이 너무 허무하고 쓸쓸해서 무기력해질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인생의 숨겨진 뒷모습을 똑바로 보기에는 나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 젊었다.

우연히 두 분 다 화장으로 모셨다. 스승이야 불교에 뜻을 둔 분이시니까 다비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지만, 외조모는 산소 자리도 외조부 곁에 다 마련해 두었는데도, 살아 생전 자식들에게 꼭 화장할 것을 고집스레 유언하셨다. 그 이유인즉 외조모는 암 말기였는데, 돌아가시기 전 두 달 정도 무척 고생을 하셔서 거의 진통제 주사로 버티셨다. 외조모 말씀이 병을 심하게 앓다가 죽은 이가 산소에 묻히면 자손들에게 좋지 않다고 하시며, 굳이 깨끗하게 화장을 해 달라고 한 것이다.

부부란 살아서도 헤어지기 싫은 법이건만, 죽음을 앞에 두고 남편 곁에 묻히기보단 자손들을 더 생각하느라 홀로 외로운 길을 떠나신 것이다. 속 좁은 나로서는 그 깊은 속내를 아직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외조모는 병이 깊어지자 병원에서 받기를 거부해 집에서 장례를 치뤘다. 처음으로 사람을 염하는 것을 보았는데, 삼베옷을 입은 모습이 어찌나 고운지 마지막 인사를 하느라 얼굴을 만질 때에도 전혀 무섭지 않았다. 평온한 모습으로 누워 계신 모습을 보고, 저 작은 몸 속에서 이 많은 자손들이 태어났구나 하며, 사람의 일생에 대해 다시 돌이켜보았다.

스승은 살아 생전 많은 국내외 제자들을 두었고, 불교계에서 하신 일들의 발자취가 큰 덕에 모든 이들이 단 오 년만이라도 더 살아 주셨으면 하며, 그리 바삐 가심을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나는 화장터 특유의 차가운 분위기 속에서, 그 많은 지식과 큰 정신을 지니시고 길을 떠나시는 스승이 우리에게 어떤 모습을 보이실까 하며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다비가 다 끝나고 쓰레받기에 한 줌 재로 남았다. 내가 그토록 정신적으로 믿었던 스승이 다 타올라 한줌의 재로 화한 것이다.

그 순간 송구스러울 정도로 이상하게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참으로 담담하였다. 그리고 어떤 형태로건 한 세상을 살다간들 결국 인간은 한 줌의 재로 남게 될 것이라면, 무엇을 아웅다웅하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같이 간 사람들을 돌아보며, 이 사람들은 스승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했다. 사람마다 각기의 마음 그릇대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 던져진 스승의 마지막 가르침은 잡혀지지가 않았다.

한동안 그런 생각들이 마음에 꽉 차 가슴 언저리가 무거웠다. 사람의 삶과 죽음에 대해 헤쳐 들어가면 갈수록 아무것도 알 수 없고 말할 수가 없다. 그렇게 나는 지난 일년을 보냈다.

아직도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삶의 무상인지, 사람의 끝이 그러하니 마음을 비우라는 건지, 사람 사는 일 그저 사람의 대를 잇는 단순함일 뿐이라든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리저리 한참을 생각하다 그냥 덮어두기로 했다. 다만 어느 날 한 줄기 깨달음이 머리를 탁 치고 지나갈 때까지 마음 닦음을 계속하리라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 두 번의 장례식 이후, 예전보다 인생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지는 것 같다. 마치 모든 것을 다 버린 뒤에 오는 후련함이 주는 여유 같은 것이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