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취미

                                                                                              류 달 영

 영국에서는 사람을 채용할 때에 면접에서 반드시 그의 취미를 물어본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두드러진 능력이 무엇인가를 묻고, 프랑스에서는 통과한 시험과 소유하고 있는 자격증을 묻는다고 한다.

영국인들은 사업을 경영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간성이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능력과 기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인간성에 큰 결함이 있다면 사업의 건전한 발전은 기대할 수가 없다고 확신하는 것 같다. 섬나라의 영국인이 전 세계를 지배하였던 것도 인간을 보는 이러한 안목이 크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나도 내 나름대로의 취미가 있다. 등산, 여행, 서예, 미술품 감상, 그리고 돌, 불상, 화병, 우표, 동전과 지폐, 작은 조각품 등의 수집이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따위의 수집은 하나도 없다. 어느 것이나 마음 편한 즐거운 취미들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등산을 좋아했다. 산에 올라서서 사방을 바라보는 것이 더없이 즐거웠다. 눈 아래 펼쳐지는 대자연을 바라보노라면 가슴에 호연(浩然)의 기가 벅차 오른다.

일본 식민지 통치시절에 나는 기회 있는 대로 무전 여행을 하면서 우리 나라의 여러 명산을 올라갔다. 천마산, 마이산, 한라산, 금강산, 묘향산 그리고 백두산 천지도 올라갔다. 내 조국의 아름다운 산천을 두루 살려보려는 의도에서였다. 양정고등보통학교(養正高等普通學校) 재학 시절에 5년 동안 학급 담임이었던 김교신(金敎臣) 선생이 지리 강의를 맡았었는데, 그분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생각된다. 등산은 육체의 건강은 물론 정신건강에도 더없이 좋다. 더구나 한국은 산의 나라이다. 하느님의 걸작품인 금수강산이다.

수집에 관한 나의 취미를 한두 가지 밝히겠다. 내가 오래 전부터 수집하는 것 중의 하나는 불상이다. 나의 그림과 조각 등 미술품을 좋아해서 지금도 외국에 나가면 그 나라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빼놓지 않고 관람한다. 서울에서도 틈만 나면 저명한 화랑을 순회하면서 그림과 조각들을 감상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조각은 불상이다. 일반 조각은 아름다움만을 추구하지만 불상은 아름다움과 착한 불심(佛心)이 함께 표현되어야 한다. 불상은 아무리 서투른 솜씨의 작품이라도 그것을 조각한 이는 최고의 착한 정신을 표현하고자 정성을 다한 것들이다.

그런데 옛날 불상들은 그 가격이 너무도 비싸서 가난한 나의 형편으로서는 수집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나는 고가의 불상들은 즐겁게 감상하는 것으로 그치고 겨우 수천 원에서 몇만 원 정도의 값싼 작품들만을 수집한다. 말라 죽은 노송의 관솔에 조각한 불상은 우리 나라 관광지에서는 어디서나 팔고 있다. 비록 몇천 원짜리의 관솔에 조각한 불상이지만 싫증내지 않고 볼 만한 것들이 더러 있다.

내가 인도, 타이, 네팔, 스리랑카, 중국, 일본 등 불교 문화의 뿌리가 깊은 여러 나라를 여행할 때에는 뒷골목의 상점들을 뒤진다. 뜻밖의 값싸고 좋은 불상들이 발견되어 수집할 때는 아주 즐겁다. 대추씨 크기의 불상으로부터 호주머니에 들어갈 정도의 작은 불상들을 주로 수집한다. 값이 싸고 작은 것들이어서 운반에 어려움이 없고, 공항에서 말썽되는 일도 없다.

불상을 만드는 소재는 흙, 나무, 동물의 뼈, 상아, 각종 금속 등 다양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불상 중에는 금속으로 만든 것, 흙으로 빚어 구은 것, 나무를 깎아 만든 것, 화석(化石)에 새긴 것, 낙타 동물의 뼈나 상아에 새긴 것, 돌과 옥돌을 깎아 만든 것들도 있다. 우리 집에도 사무실에도 방마다 책상마다 작은 불상들이 놓여 있다. 불상들의 착한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저절로 평안해진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어떤 부인이 우리 집에 왔었는데 크리스천인 내가 방마다 불상을 진열해 놓고 있는 것이 못마땅한 눈치였다. 고루한 신앙의 그들이 나의 불상 수집의 진심을 알 리가 없다.

다음은 돌멩이의 수집이다. 작품이 될 만한 수석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밤톨만한 돌에서부터 호주머니에 들어갈 만한 작은 돌멩이들을 주로 수집한다. 유명한 명소나 사적지에 가면 반드시 돌 한 개씩을 주워서 호주머니나 손가방에 넣어 가지고 온다. 그리고 주워온 돌에는 반드시 수집한 지명과 시일을 기록하여 둔다. 우리 집과 사무실에는 수백 개의 돌멩이가 있다. 돌의 모양새와 색깔과 질은 각양 각색이다. 화석도 있고, 석기(石器)도 있고,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도 있다. 돌의 질도 다양하지만은 무늬가 있는 돌들도 보기 좋다. 어느 것이나 다 오랜 세월에 걸친 대자연의 작품들이다.

그 많은 돌 가운데 특별히 두 개의 돌을 나는 따로 보관하고 있다. 하나는 경주 석굴암에서 동쪽으로 바라다 보이는 문무대왕(文武大王)의 해중능(海中陵)에 참배하러 가서 주워온 푸른 돌과 아프리카의 카이로 기제의 피라미드 밑에서 주워온 붉은 돌이다. 둘 다 주먹 안에 들어가는 작은 돌이다.

문무대왕은 신라의 화랑도로서 나당(羅唐)연합군에 가담하여 7년 동안 백제와 고구려와 싸웠고, 그 후에는 왕위에 올라 8년 동안을 동양 제일의 강대국인 당나라와 싸워서 육해군이 모두 큰 승리를 거두었다. 무열왕(武烈王)의 아들로 통일 신라를 이룩한 30대 임금이다.

삼국 통일을 완성한 그가 임종할 때에 자기가 죽은 후 10일 안에 화장해서 그 재를 동해바다에 뿌리라는 유조(遺詔)를 내렸다. 자신의 혼백이 동해의 용이 되어 왜적을 방어하겠다는 것이다. 화룡호국(化龍護國)의 신이 되겠다는 것이다. 그의 유조에 따라서 화장한 유해를 모신 곳이 대왕암(大王岩)의 해중능침이다. 만일 문무대왕의 8년 항전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우리는 존재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 금수강산 한반도에도 중국인들이 들어와서 방방곡곡을 차지하고 살아 왔을 것이다.

기제의 피라미드는 거대한 세계적 명물이다. 그 안에는 왕의 미라 하나가 들어 있다. 10만 명이 20년 걸려서 쌓아 올린 웅대한 왕릉이다. 그 공사를 위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고, 거액의 재정이 탕진되었다. 바다의 작은 대왕암과 사막의 거대한 피라미드는 참으로 좋은 대조이다.

나는 가끔 두 개의 돌을 나란히 놓고 나라의 흥망 원리를 되씹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