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의 토끼춤

                                                                                              劉 庚 煥

 중동 신도시로 가는 길이 넓게 트였다. 포장된 지 얼마 안 되는 새 길이라 차선으로 그은 흰 줄이 산뜻했다. 이 길로 다니다가 옛길과 엇갈리는 네거리 모퉁이에 주유소가 생긴 것을 보게 되었다. 신장 개업을 한 지 얼마 안 된 것이 분명했다. 만국기가 내걸렸고, 또 바람에 뱅그르르 도는 바람개비도 줄줄이 내걸렸다.

그런데 며칠 뒤 걸어다니는 키 큰 토끼가 주유소에 등장했다. 디즈니 만화의 토끼처럼 앞니 두 개가 돋보이고, 귀는 쫑긋 곤두 섰으며 수염도 몇 가닥 뻗쳐 있다. 멀리서 차가 나타나기만 하면 허리를 굽혀 절을 하고서 한 팔을 꺾어 주유소를 가리켰다.

“기름 넣고 가세요.”

토끼는 몸으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내가 이곳을 지나다니는 동안 기름을 넣고 있는 차는 한 대도 본 적이 없다. 이곳에 주유소가 생겨났다는 것을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겠거니와, 대부분 출발지 가까운 곳에서 미리 기름을 넣고 떠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며칠이 지났다. 새 길로 들어서면서 그 토끼가 아직 있을까 싶어 궁금했다. 주유소가 가까워지고 분홍색 토끼가 보이자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토끼는 허리를 꺾어 절을 하는 것만이 아니라 덩실덩실 춤까지 추었다. 토끼춤 구경을 하는 차가 속력을 늦추면 뒷차들도 속력을 늦출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그래도 짜증을 내지 않고 지나갔다.

토끼를 주유소에서 본 지 3주일쯤 되는 때였다. 춤이 세련되었을 뿐만 아니라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것이었다. 간간이 기름을 넣고 있는 차가 내가 지날 때 시야에 들어왔으니 그런대로 영업이 되는 듯싶었다.

며칠 전이다. 나도 이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으려고 차를 바짝 갖다 붙였다. 기름을 넣는 청년들은 안 보이고, 대신 단발머리의 앳띤 아가씨들이 다가왔다.

“토끼는 왜 안 보이지?”

“사고가 났어요.”

“사고라니?”

“뺑소니차에 치었어요.”

“원!… 저런.”

아가씨의 설명은 대강 이러했다.

토끼는 주유소 주인이 데려온 것이 아니라 토끼 차림을 하고 제발로 걸어왔다. 주유소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애원했으나, 주유소 아저씨는 한마디로 거절했다. 하루 기름을 넣고 가는 차가 서너 대에 불과한데, 어떻게 사람을 더 쓰느냐였다. 그래도 토끼는 매일 아침부터 나와 저녁까지 토끼춤을 추었다.

개업한 지 한 달이 지나서야 겨우 하루 평균 여섯 대가 기름을 넣었다. 토끼는 더 열심히 춤을 추고 물구나무서기를 하였다. 토끼의 열성에 주유소 주인이 지고 말았다. 하루 30대가 기름을 넣으면 그날부터 일당으로 고용하겠다고 위로 겸 언질을 주었던 것이다.

기름 넣는 청년들을 해고하고 그 대신 주인아저씨의 친척인 이 아가씨와 친구에게 임시직으로 일을 시켰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뺑소니차가 생긴 것이다. 아가씨들로서는 어찌 할 수가 없었다.

그날도 해질녘에 스포츠카 한 대가 와서 기름을 만탱크로 넣더니, 구멍마개를 닫자마자 갑자기 후진으로 내달렸다. 네거리에서 이를 바라보던 토끼가 길 한복판으로 달려왔다. 스포츠카는 토끼를 옆으로 스치고 지나면서 방향을 꺾어 달아났다.

주유소 아저씨와 함께 소리 소리치며 달려가 쓰러진 토끼의 가면을 벗기려 지퍼를 잡아당겼다.

“아, 우리 학교 교감선생님이었어요. 명예 퇴직하신 교감선생님!”

“아니, 아가씨는 지금 학생이란 말야?”

“아뇨, 지금은 졸업했어요.”

주유소 주인은 경찰에 전화했고, 구급차가 와서 백발의 옆머리에 피를 흘리는 교감선생님을 태우고 갔다.

“이제 얼마 있으면 퇴원하신데요.”

“참, 큰일날 뻔했구나.”

“그보다도요, 학교 선생님들과 그리고 소문을 들은 학부형들이 이곳에 와서 기름을 넣기 때문에 하루 30대가 넘었어요.”

“아이구, 저런……”

“우리 주인아저씨가요 약속은 지키신데요. 퇴원하면 여기서 일하게 하신대요.”

“거, 참 잘 되었다.”

“엊그제 동창들과 병문안을 갔었거든요. 병실 문을 여는데 주인아저씨와 교감선생님이 주고받는 대화가 들렸어요.”

“………”

“교감선생님이 눈물을 다 닦을 동안 우린 밖에서 멈칫 멈칫 기다릴 수밖에 없었어요.”

오늘 아침 새 길 네거리 주유소에서 분홍토끼의 춤을 다시 보았다. 슬며시 눈에 고여드는 것이 어른거려 운전을 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