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림과 갇힘의 혼란

                                                                                                김 창 진

 미국 서부영화에서 자주 보는 장면에, 보안관의 어벙한 조수들이 갇혀 있는 죄수나 용의자들에게 오히려 갇힘을 당하는 꼴이 있다. 죄수나 혐의자를 유치장에 넣고 자물쇠를 채우고, 그 열쇠를 치렁치렁 허리께에 차고 다니다가 되레 그 열쇠로 해서 자유로워야 할 처지가 구속으로 바뀌는 그런 기가 차는 ‘전환의 극적(?) 국면’ 말이다. 그러니까 이는 무엇을 풀기 위해서 만든 열쇠가, 그야말로 열쇠가 자기를 풀기는커녕 자기를 가두어 버리는 역기능으로 작용하는 경우이다.

내가 P 시에서 오후 느지막이 출발하는 새마을호 열차를 탄 상경 길에서였다. 중간 역 T 역에서 일군(一群)의 젊은이들이 올라와선 내 건너쪽 옆 넷 자리에 진을 쳤는데, 젊었고 그래서 싱싱해 보였다. 그들은 내내 발랄한 몸짓으로 재미나는 이야기에 열중했다. 그래서 이 친구들 얘기는 나에게까지 들려 왔는데, 그들 넷은 모두 동급의 의과대학생이었다. 그들은 체격도 잘 빠졌고 하나같이 인물이 이른바 준수한 편이었다. 나는 저들의 싱싱함과 거리낌없어 보이는 자유 ─ 그런 것이 참 부러웠다. 늙으면 어깨가 처지면서 표정이나 몸이 짜부라지기 십상인데, 그들은 피어나고들 있으니까.

밤 열시 가까이 열차가 한강 철교에 오르자, 승객들이 내릴 차비를 하기 시작한다. 넷 젊은이 가운데 웃통을 벗고 있던 와이셔츠 바람의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왔던 두 친구가 선반 위의 옷을 챙기기 위해 동시에 일어섰다.

내 시선이 그리 우연히 갔을 때, 나는 그들의 허리춤 어디께에선가 부딪치는 어떤 금속성을 들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 몇 개씩의 열쇠들이 그들의 허리띠에 공히 매달려 있었기에서였다.

나는 그걸 보자, 대번에 언뜻 기묘한 생각에 사로잡힘을 느꼈다.

여태껏 내내 저들 젊음에게서 발하던 그 싱싱함과 무한한 자유의 빛이 스러지고 어두워지는, 즉 자물쇠가 철커덕 잠기는 서부극에서 자주 보는 그 어벙한 조수가 겪는 ‘기가 차는 전환의 극적 장면’이 떠오른 것이었으니, 내 이 얼토당토않은 상상은 어디서 왔지.

근래 한국 사회에 우글거리는 졸부(猝富)들은 몇 개의 열쇠들을 가지고 저런 젊은이들의 싱싱함과 자유를 어김없이 박탈하고 구속하려는, 즉 사냥꾼의 의도를 많이도 갖고 있다고 하지. 그 성공률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로는 다들 자신만만하다고들 한다.

그건 어벙한 보안관의 조수들이 많기 때문이겠다. 그들은 그 잘난 총각, 이른바 고가(高價)의 신랑감은 모든 면에서 똑똑한데, 하나의 진리에만은 영 어둡기 때문에 그들은 틀림없이 거의 그 열쇠들로 해서 철커덕 갇히게 되는 것이다.

그 하나의 진리란 간단하다. 세상엔 그것이 연인의 관계이든 남이든 ‘공짜란 절대로 없다’는 그 뻔한 이치이다. 물론 졸부들은 열쇠를 내밀 때에 절대로 공짜라고 우긴다. 아니, 우기는 것이 아니라, 이건 자식(딸)의 문제이기 때문에 가슴에 손을 얹고도 그리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졸부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열쇠를 몇 개나 받은 쪽에 있다.

1%의 도둑 심보를 제외한 99%의 양심의 소유자는 이제 그들(졸부)에게 기어 주는 차례인 것이다. ‘얻어먹고 안 기어?’ 그건 말도 안 되지. 자기 신부가 안 이뻐도, 자기 처남이 마음에 안 들어도 장인 장모의 돈 많은 거들거림이, 다 절로 이뻐 보이든지 아니면 이쁘게 보아야 하는, 그런 구속에 잠기는 것이다. 문제는 이쁘고 안 이쁘고가 아니기 때문이지. 열쇠를 몇 개나 받고도 이리저리 간섭하는 장모 앞에서 밥상을 걷어차다니, 그런 간 큰 남자가 있었다고 하지.

판사가, 검사가, 변호사가, 의사가 된 그 똑똑한 젊은이들이 왜 그리 어벙한 보안관의 조수처럼 되었지.

똑똑한 이들이여, 세상에 공짜가 있거든 그 공짜를 한 번 가져와 보아라. 그건 받은 자의 양심이 있는 한 100% 그럴 수는 없으렷다 싶다.

내 열쇠 얘기를 들으면서, 아까 나와 기차를 함께 타고 왔던 그 젊은이들은 아마 흥분할 것이다. 그들의 허리에 채여 있던 그 열쇠는 아직 총각 시절의 조그마한 자동차의, 그리고 아파트 방 한 칸의 열쇠 구멍에 꼭 필요한 것에 지나지 않겠지.

그렇지, 내가 너무 흥분했나 보다.

그러나 그것이 그런 열쇠 ─ 졸부들에게 그들의 고귀한 자유를 판 ─ 가 아니더라도, 허리춤에 달려 있는 모든(?) 열쇠는 그것이 무엇을 푸는 열쇠 본래의 기능의 것으로 보이지 않고, 나도 갇혀 있다는, 아니면 갇혀 가고 있다는, 또는 갇힐 수 있다는 그런 상징(象徵)으로 나에게는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면 그건 당신의 시각(視角)이 문제지 하고, 그 열쇠를 허리에 매달고 있는 자기 모습에 개의치 않으려 하겠지만, 그래도 내 눈에는 그것이 여전히 ‘갇힘’으로만 보이니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데, 이런 시각의 소유자가 제발 나 혼자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