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선 모

 마을버스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 사라진 풍물 사진첩에서 방금 걸어나온 듯 까만 뿔테의 동그란 돋보기 안경을 쓰고, 흰 두루마기에 갓을 쓴 노인이었다. 수염까지 길러 옛 선조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계셨다. 마을버스에 탈 때부터 그분의 걸음은 유유한 팔자걸음이었다. 차가 도착하기 무섭게 재빨리 올라타는 다른 승객들에 비해 그분은 기사에게 행선지를 재차 확인하며 느릿느릿 차에 올랐다.

그분이 채 오르기도 전에 성미 급한 기사가 차를 출발시킬까봐 마음이 조마조마할 정도였다. 30여 명 가까운 승객들이 차에 오르던 시간과 그분이 차를 타는데 걸린 시간이 거의 맞먹었다. 노인이 차에 올라 양보받은 자리에 앉을 때까지 기사는 용케도 기다려 주었다. 노인의 갓은 겨우 형태만 갖춘 것이었다. 양태도 매우 작고 성글게 짜서 갓이라 부르기엔 민망할 정도로 어설퍼 보였다.

갓은 이조시대 때부터 쓰기 시작했던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관모였다. 예전에는 흰 도포에 검은 갓을 쓴 어른들을 뵈면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발걸음이 조신해졌다. 의관 정제하고 반듯하게 앉아 계신 것만 보아도 천방지축이던 행동거지에 제동이 걸렸다. 별다른 말씀이 없어도 눈빛 한번으로 집안의 질서가 잡혔다.

살아가면서 익혀야 할 법도를 어른들의 삶을 통해 저절로 배웠다. 어렸을 땐 갓을 쓴 어른들이 한없이 어렵게만 보였다. 어린 내게 갓은 근엄의 상징이었고 살아 있는 교과서였다. 몇 년 전 갓 만드는 공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적이 있었다. 갓은 대나무 껍질을 실같이 가늘게 쪼개어 만든다. 작은 두레상처럼 생긴 양태판에 머리카락같이 가는 대올을 햇살처럼 둥글게 펴놓고 돌림줄로 돌려 차양 부분인 양태를 엮는다.

상품은 양태판에 깔아놓은 대올이 360여 날, 돌림줄은 100줄 가까이 된다고 하니 얼마나 섬세한 공정인지 짐작조차 되질 않는다. 잘 보이지도 않는 대올을 두 날씩 떼어 가며 돌림줄로 엮어 가는 재빠른 손놀림이 지금도 눈에 보이는 듯하다. 머리가 들어가는 부분인 갓대우는 유연한 말총이나 쇠꼬리 털로 만들었다. 양태와 갓대우를 조립해 갓을 완성하는 일을 갓모으기라고 한다. 만들어진 것을 쪄내고 아교풀을 칠하여 말리고, 먹칠하여 옻칠을 입히고, 명주를 입혀 말린 다음 인두로 마무리하는 모든 과정은 정신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지 않으면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작업들이다. 아교풀이나 옻칠을 할 때 구멍이 막히지 않도록 입김으로 불어 대는 건 갓에 혼을 불어넣는 일에 다름 아니다. 만드는데 오랜 시간과 정성이 들어야 하니 값이 비싸고, 많은 값을 치르고 구입한 물건이니 평생 동안 소중하게 다루었다.

갓이 지니고 있는 멋스러움은 두둑하게 휘어잡은 양태의 느슨한 곡선에 있다. 이 양태의 넓이가 한때는 75cm에 달하였다고 한다. 그런 갓을 쓰면 책상다리로 앉은자리를 뒤덮을 정도여서 한옥의 좁은 방에서는 세 사람이 앉을 수 없었다던가, 갓끈 채로 겸상을 하지 못했다는 재미있는 일화를 남기고 있다. 갓으로 한껏 호사를 누린 선조들의 큰기침 소리가 금세라도 들려올 듯하다.

갓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일은 트집잡는 일이다. 양태를 인두로 지져서 오그라지도록 휘어잡는 것을 트집잡기라고 하는데, 우리가 흔히 쓰는 ‘남의 조그만 흠집을 꼬집어 공연히 귀찮게 군다’는 트집잡다의 어원이 갓 만들기에서 시작된 것은 아닐까? 인두가 너무 뜨거우면 자칫 대올이 타고 마니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차양이 너무 평면으로 뻗어도, 지나치게 오그라들어도 모양이 좋지 않으니 고도의 숙련을 요하는 작업이다. 부드럽고 수굿한 곡선을 이루어내는 양태의 모양새가 되려면 트집잡기를 잘 해야 한다.

그런데 멋들어진 갓을 쓰고 앉아 쓸데없는 트집잡기로 일생을 보낸 선조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챙기려 당쟁을 일삼던 이들로 인해 우리의 역사는 얼마나 흔들렸는지…….

이제는 사라져 가는 갓이지만 제대로의 트집잡기는 계승되어야 한다. 지나치게 오만하여 쳐들리거나 비굴하여 우그러들지 말고 알맞게 트집잡아 완만한 곡선을 이루듯 모든 사람들이 겸손한 자세로 남을 존중해 준다면 제대로 만들어진 양태처럼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이다.

의로움을 위하여 아낌없이 목숨을 바치던 선비들의 당당함을 상징하듯 빳빳이 고개를 든 갓. 이러한 선비 정신이 손상되는 것을 돌이킬 수 없는 수치로 여겨 예전에는 죄를 지으면 관모부터 벗겼다. 벼슬과 품계를 빼앗고 벼슬아치의 명부를 적은 사판(仕版)에서 그 이름을 없앴다.

어떤 옷이든 제 몸에 맞아야 보기 좋은 것처럼 갓은 스스로 격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 써야 품위가 돋보인다. 간혹 돈으로 벼슬을 산 사람이 거들먹거리며 없는 수염 쓰다듬고 헛기침 해댈 땐 머리에 올라앉은 갓도 거덕치게 보였다. 남의 걸 얻어 쓴 것처럼 대롱대롱 까딱까딱 제멋대로 들까부는 갓을 보면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실상 갓은 보온효과도 없고, 햇빛을 가리는 데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길을 가다 비를 만나면 고스란히 머리가 젖을 수밖에 없다. 동서남북에서 불어오는 모든 바람이 제 집인 양 넘나든다. 그래도 워낙 꽁꽁 상추를 틀어 맸기에 머리카락 하나 갓의 틈새로 날리지 못한다. 모든 향방으로 열려 있지만 꼿꼿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갓.

아직도 우리에게 기대할 만한 정신이 남아 있다면 그건 가볍고도 무거운 갓이 주는 이러한 의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