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과 제비꽃

                                                                                            은 옥 진

 브뤼셀에서 워털루(Waterloo)로 가는 버스를 탔다. 한 시간쯤 달리다가 잠시 들른 곳은 18세기에 축조된 고성인데 울창한 숲속에 있어 정취가 그윽했다. 안팎을 둘러보고 버스에 오를 즈음에 하늘이 낮추 내려앉더니, 한적한 시골길에 접어들면서는 후두룩 빗방울이 듣는다. 앞 유리창의 와이퍼가 바쁘게 움직이면서 마주 오는 차 두어 대를 비킨 후에, 버스는 큰 길 옆 작은 레스토랑 뒤켠에 멈추었다.

주차장이라 하기에는 조금 엉성한 공지 한쪽에 자그마한 조상(彫像)이 서 있다. 이름이나 안내문도 따로 없이 서 있는 프랑스 군복 차림의 나폴레옹. 관광버스 사이에, 관광객 틈새에 있어서 그런지 파리에서 보았던 것만큼 힘차고 용맹스럽지가 못하다.

들이치는 비바람에 실그러져 보이는 그 옛날의 제왕은 1미터가 조금 넘는 작디작은 모습으로 먼 하늘을 향해 서 있다. 구름 낀 하늘이어서 그런지 그림자는 짧기만 하다. 그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을까.

불가능은 없다고 호언하던 나폴레옹은 이곳 워털루 들녘에서 영국의 웰링턴 장군이 이끄는 연합군에 패했다. 격전지 자리에는 군데군데 구조물이 남아 있고, 잘 가꾸어진 잔디만이 푸르러 지난날의 이야기는 귀설게 들릴 뿐이다.

맑게 걷힌 하늘에 구름이 덮인다. 6월인데도 옷섶을 파고드는 찬바람이 몸을 웅크리게 한다. 간간히 들려오는 음악 소리가 있어 두리번거렸더니 길 건너편에 있는 기념관 스피커에서 행진곡이 울려나온다. 언덕으로 바람이 치불 때면 병정들의 구둣발 소리처럼 들리고, 바람이 멎으면 희미한 함성이 되어 하늘에 흩어진다.

마주 보이는 건물 벽에는 나폴레옹 포스터가 붙어 있어 바람이 스칠 적마다 퍼르르 떤다. 되돌고 되나는 사람은 많아도 누구 하나 눈 여겨 보는 이가 없다.

워털루에 오기 며칠 전, 파리 루브르 미술관에서 ‘나폴레옹 대관식’이라는 그림을 보았다. 너비가 10미터나 되는 루브르 미술관에서 두 번째 큰 그림이다. 1백여 명도 더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뒷배경으로 서 있어 웅장하게 보일 뿐만 아니라, 화폭에 흐르는 빛에 따라 변화하는 낱낱의 얼굴 표정이 생동감 있게 그려졌다.

로마 황제밖에 쓸 수 없다는 월계관을 머리에 얹은 나폴레옹. 그 뒤로는 어딘가 불안스럽게 앉아 있는 교황이 보이고, 나폴레옹은 또 하나의 관을 들고 서 있다. 그의 발 아래 다소곳이 두 손을 모아 쥐고 무릎을 꿇은 조세핀. 그들 두 사람이 입은 붉은 빛에 금빛 수를 놓은 긴 가운은 화려함이나 장엄함이 그 큰 화면에서 역력히 드러나 보인다.

대관식이 있던 날, 가톨릭 교회와 사이가 좋지 않던 나폴레옹은 그날을 기해 화해하고, 대관식을 주재할 교황 비오 7세는 자기 앞에 무릎 꿇은 나폴레옹을 생각하면서 식장에 나아간다. 그런데 교황이 씌우려는 왕관을 받아든 나폴레옹은 관중들에게 돌아서서 스스로 월계관을 자기 머리에 얹었다. 그리고 나서 조세핀의 머리에는 황후의 관을 직접 씌워준다.

루브르 미술관에 있는 그림은 바로 이 순간을 그린 다비드의 작품이다. 파리 시내 어디를 가도 크고 화려한 동상들은 나폴레옹과 관련된 것들이며, 곳곳에 있는 문화유적들은 그가 펼친 원정의 부산물이 아닌가. 그런데 오늘 그런 휘황한 빛과는 정반대인 패전지, 워털루의 몽생장(Mont Saint Jean)을 찾아왔다.

빗줄기가 조금 그치는가 싶더니, 큰 길 쪽에서 버스 한 대가 들어와 주차장에 선다. 출입구를 빠져 나온 사람들은 길 건너편 언덕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끝없이 넓게 펼쳐진 들녘 한 모퉁이에는 흙을 돋우어 만든 피라미드 모형의 언덕이 있다. 2백여 단의 가파른 돌층계를 오르면 꼭대기에 이르는데, 거기에는 돌로 만든 사자상이 있다.

사로잠근 철책을 밀고 들어서니, 뒷다리 사이로 꼬리를 감아 넣고 금방이라도 포효할 듯이 오연(傲然)한 자세로 멀리 프랑스를 내려다 보고 있다. 비온 뒤끝이라 그곳 들녘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해도, 광활한 초원에 물결치는 바람은 한가롭기만 하다. 천천히 돌층계를 내려와 건물 모퉁이를 막 돌아서는데 풀섶에 핀 제비꽃 몇 송이가 바람에 흔들린다.

나폴레옹은 제비꽃을 좋아했다고 한다. 엘바섬으로 유배되어 가면서 제비꽃이 필 때 다시 오겠노라고 했던 그의 말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그 약속대로 파리에 다시 입성할 때는 제비꽃이 한창 피어 있었다.

그러나 워털루 결전이 있던 1815년 6월, 또 한 번의 패배를 겪은 그가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유배되면서도 다시 한 번 제비꽃이 필 것을 가늠했는지. 그의 생애를 마치던 날 밤은 비바람이 몰아쳤다 한다. 더불어 영화를 누렸던 화가 다비드도 브뤼셀로 망명하여 죽었다 한다.

기념관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다. 날씨는 다시 기운다. 버스 한 대가 사람들을 싣고 주차장을 떠난다.

지금은 풀섶으로 넓어진 옛 전장터는 양떼와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말없이 흘러가는 저 하늘의 구름처럼 오늘도 바람은 무심히 지난다. 그 옛날에도 지났을 바람이.

버스에 올랐다. 곧이어 출발한다는 안내 방송이다. 아까부터 쥐고 있던 손을 폈다. 벽걸이용의 작은 접시에는 말을 타고 달리는 나폴레옹의 얼굴이 선연하다.

창 밖으로 사위의 푸르름 속에 서 있는 조상은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