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素雲의

‘중절모자(中折帽子)’

 

일  시:1998년 3월 21일

장  소:수필문우회 회의실

참석 인원:25명

사  회:허세욱

정  리:권일주

 

사회 : 안녕하십니까? 1998년 『계간 수필』(통권 제12호)를 위한 합평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합평 작품은 한국의 대표적인 비평수필가로 알려진 김소운 선생의 ‘중절모자’입니다. 김소운 선생은 중수필, 비평수필의 특색을 지니신 분입니다. 그런 분의 작품 가운데 이 작품 ‘중절모자’를 합평 작품으로 선정한 것은 이 작품의 시대 배경이 50년대, 즉 전쟁 기간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는데다 대화체가 들어 있는 작품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또 작품의 길이가 합평회에 올리기가 적당하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합평회를 진행하기 위해서 세 분의 지정토론자를 모셨습니다. 윤모촌 선생과 고봉진 선생, 김영만 선생입니다. 윤모촌 선생께서는 이 작품의 구성과 기교면에 대해서 특히 관심을 표해 주십시오. 그리고 고봉진 선생께서는 생애의 절반 정도를 일본에서 사신 김소운 선생의 작품과 일본과의 연관관계에 대해 특별히 조명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또 평소 비평수필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지신 김영만 선생께서는 비평수필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말씀해 주십시오.

먼저 주제에 대한 토론을 하고, 다음에 이 작품의 구성과 기교 문제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이 작품을 통해 본 김소운 수필의 위상, 더 나아가서 김소운 문학의 위상을 광범위하게 조명해 볼까 합니다. 이 세 번째 문제는 무척 광범위합니다. 따라서 약정된 세 분 이외에 여러 회원들께서 많이 참여를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먼저 김소운 선생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분의 생년에 대해서는 1907년과 1908년,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만 제 생각으로는 1907년이 맞지 않나 싶습니다. 이분의 생애를 저는 세 갈래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첫째는 1907년에서 1920년까지, 대단히 불행했던 소년기입니다. 일찍이 부모 중 한 분과 사별하고, 또 한 분은 생이별한 불우한 환경 속에서 꿈 많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두 번째 시기는 한일 내왕기, 문학 성장기로 표현할 수 있는 1920년에서 1965년까지의 45년입니다. 본인 스스로도 ‘나는 절구공이다. 나는 넝마주이 공부를 했다.’라고 표현한 그 45년 동안 29년을 일본에서 거주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시기는 1965년에서 1981년, 그분이 작고하기까지의 마지막 시기입니다. 59세에서 75세까지로 저는 이 시기를 귀국 후의 안정기이며 수필에 전념한 시기라고 보았습니다.

이분은 한일 양국을 오가며 많은 직업에 종사했습니다. 제국통신의 지사 기자, 조선일보 통신원, 매일신보 기자, 왍틉옘섟? 및 왆晝텪의 발행인, ‘백광’이라는 그릴의 주인, 가축 원예 및 주간지인 왆맬?幣?의 발행인 그리고 일본에서는 ‘Korean Library’라는 한국자료 도서관까지 설립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이분은 초등학교를 중퇴했고, 중학교도 일본에서 다니다가 말았습니다만 평생 13권의 수필집과 5가지 종류의 번역집을 남기셨습니다.

이분의 문학세계를 저는 다섯 가지로 분류해 보았습니다. 첫번째, 그는 1924년 시대일보에 ‘신조(信條)’를 발표하여 시인으로 등장했습니다. 두 번째는 『조선 민요집』, 『조선 동요선』 등을 낸 민요 수집가, 그리고 『현대 한국문학선집』, 『한국미술선집』의 번역자, 네 번째는 왍틉옘섟?, 왆晝텪 등의 잡지 발행인,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가 13권의 수필집을 낸 수필가로서의 족적입니다. 대표적인 수필집으로 왆뗌絹옳냉툧, 왏瞿뼈?두 얼굴? 왇? 한 그릇의 행복? 왞晝좇?아직 버릴 수 없다? 왂염? 등이 있지만 역시 그분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은 왆呪芼戮힇이라고 봅니다. 현재, 1978년에 나온 전 5권의 옼雍奴?수필선집왏? 그분의 대표전집인 양 남아 있습니다.

대략 이상과 같이 김소운 선생의 문학 생애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럼 정선모 선생이 본문을 낭송해 주십시오.

 

(본문)

中折帽子

 

어리수군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나이 한 50 가량 되는 중노인 하나가 기찻간에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가 변소에 갔다 온 틈에 그 자리를 남에게 뺏겨 버렸다.

보통 상식이면 그 자리는 당연히 그 앉았던 임자가 도로 찾을 것이다. 빈 자리에 잠시 앉았던 이도 먼저 임자가 오면 일어서서 자리를 비켜 주는 것─, 아무리 혼란하고 두서 없는 오늘날의 도덕으로도 이 정도의 상식은 지켜지고 있다.

내가 본 그날 찻간의 사정은 좀 다르다. 여섯이 마주 앉은 그 좌석의 다섯까지는 일행이요, 노인의 뒷자리를 차지하고 내어주지 않는 그 청년도 역시 이 일행의 한 사람이다. 이 일행은 대체 몇이나 되는지, 그 밖에도 다른 자리에 앉은 사람 ─ 자리가 없어 서 있는 사람 ─ , 오징어니 엿, 캬라멜들이 왔다갔다 하는 것으로 보아 대개 짐작으로는 한 십여 명쯤은 되는 듯하다.

그 중에 시골 농부 차림인 중노인 하나가 끼어 있었던 것이다. 그 자리가 잠시 빈 새 불법 점거를 한 그 일행 중의 하나는 응당 내심으로는 좀 미안도 했을 것이나 세를 믿고 한 번 버티어 보자는 판이다.

게다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중노인 ─ ,아무리 재 보아야 시골 촌뜨기로 밖에는 안 보이니 상대는 만만한 상대이다.

일행은 모두 군복 차림이다. 군인은 아니고, 그렇다고 프레스를 붙인 신문 기자도 아니다. 25, 6에서 3십 전후 ─ , 승승하고 기세 등등한 데다 모두 웃녘 말씨다.

그 웃녘 말씨들이 자리를 돌려 달라는 중노인을 경상도 사투리로 놀려대 보인다. 사투리 흉내 낸다는 것이 혼선이 되어서 더러는 전라도 말씨도 튀어 나온다.

 ─ 자리를 달라꼬요? 자리는 못주겠읍니데이……. 안 주면 엇짤낭기요?

 ─ 그늠의 영감쟁이 바래이……, 자리가 어디 당신 자린기요? 돈주고 샀읍니께이……?

 ─ 나도 좀 앉아 보장께로……. 나도 돈 내고 표 삿습니뎅이…….

중간 중간에 폭소 흥소가 반주를 한다. 물론 사태를 여기에 이끈 근본 책임은 중노인 쪽에 있다. 엄연한 태도나 어조로 한 마디 주장만 하면 아무리 낯가죽 두꺼운 친구라도 선뜻 자리는 비어낼 것이다. 그런데도 이 경상도 친구의 표정이란 비굴과 아부(阿附), 요령 부득의 미고소(微苦笑) ─ , 군복 차림에 기를 눌린 탓도 있으려니와, 적으로 하여금 엿볼 틈을 얼마든지 가지게 하는 그런 흐리멍덩한 태도인데, 그렇다고 양보도 단념도 하는 것은 아니다.

 ─ 모자를 놓고 갔는데요. 내 모자는 어디 있소. 비끼주이소(싱글벙글 히죽히죽).

 ─ 헤헤 ─ 그늠의 영감이 야, 인제는 모자 달라카네……, 모자는 언제 매꼈던기요(와 하하하 깔깔깔깔).

한 친구가 저 앉은 뒤를 더듬더듬하더니 구겨진 중절모자 하나를 집어 낸다.

 ─ 보이소야 ─ , 이게 당신 모잔기요? 참 그 모자 좋네……. 이런 모자 하나, 요새 얼마나 한는공…….

 ─ 그 영감이 그래 볼 영감이 아니랑께로, 나가오리를 쓰고……. 참 저런 영감이 속 내용은 진짜 하이까라랑이께……(하하하하, 킥킥킥킥).

이런 수작이 오가고 십여분 ─ , 나는 최대의 인내력으로 이 비겁한 일당의 작전 효과와 경상도 친구의 그 늑직늑직하고 우유부단한 응수를 보고 있었다.

보려고 보는 것이 아니다. 눈을 감고 싶고 귀를 막고 싶으나 내가 선 자리가 바로 그네들의 옆이요, 내 앞에선 역시 푸른 군복 외투를 입은 그 일행의 하나도 이 연극에 한 몫 끼어서 낄낄대고 있는 터이다. 시선이라도 돌려 보려니 발을 움직일 도리가 없고 찻간은 꼼짝 못할 정도로 초만원이다.

그러자 한바탕 박장대소가 일어나면서 그 중절모자가 한 친구의 손에서 뽈처럼 획 하고 저쪽 건너편 좌석으로 던져진다. 거기 앉았던 그 좌석의 일행이 모자를 집더니 이번에는 또 이쪽으로 던진다. 세 번째는 그 모자가 방향을 고쳐 <아라비안 나이트>의 비행 담요처럼 승객들의 머리 위를 날아서 내가 서 있는 훨씬 뒤에 가서 떨어진다. 또 폭소다.

 ─ 그라지 마이소, 남의 모잘 갖다가…….

경상도 양반은 잘못 걸렸다는 난처한 표정인데, 그래도 그 히죽히죽하는 비굴한 웃음은 입가에서 떠나지 않는다.

내 주먹이 앞에서 낄낄거리며 웃고 섰는 그 군복 외투의 등을 한 대 내려 갈기려고 우쭐거린다. 내 의식이 간신이 그것을 누른다.

아무리 따져도 이것은 심심풀이의 찻간 유머는 아니다. 웃음과 농담으로 철면피의 심리를 캄프라지하자는 비루한 책략이다. 게다가 세를 믿고 흥청대는 그 방약무인. 「야, 이 육시(戮屍)를 해서 구어먹을 놈들아, 지금 네 형제 네 조카들이 전선에나 병원에서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떤 고초를 겪고 있는데…… 네놈들이 입고 있는 그 옷이 부끄럽지 않으냐!」

그렇게라도 소리를 질렀으면 속이 시원하련마는, 한강 투석(投石) 같은 정력의 낭비를 내 50 고개의 이성분별(理性分別)이 인제 좀 참아 두라고 한다.

나는 앞에 선 친구의 등을 가볍게 두어 번 두들기면서,

「여보시오, 장난들이 좀 심한데요. 인제 그쯤 해 두지요. 곁에서 보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아 두시구려…….」 하고 목소리만 좀 크게 그 일행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한 마디했다.

앞에 선 친구가 고개를 뒤로 돌려 일순 나를 노려 보더니, 내 눈초리가 좀 험했던지 슬그머니 고개를 도로 돌려 버린다. 일행들의 시선이 내 쪽에 일제히 쏠렸다가 그것으로 잠잠해 버리고 이 차중 촌극은 끝이 났다.

그 경상도 친구가 자리를 도로 찾은 것은 내가 알 바 아니다. 찾았다 하더라도 그 친구의 뱃심으로는 거기 앉아서 견딜 재간은 없었으리라.

나는 수신(修身) 교사도 사회 개량가도 아니다. 이런 경우에 내게 상관 없는 일이라 하여 보아 버리고 잊어 버릴 수 있다면 오죽이나 신경이 편하랴. 그러나 남의 나라 아닌 내 나라에서 이러 광경을 한 번씩 목도할 때마다 입술이 마르고 살이 내린다. 필경 나는 도회인의 생리와는 거리가 먼 영원한 촌뜨기일 수밖에 없다.

(1952년)

 

 

 

사회 : 먼저 이 작품의 주제에 대한 토론입니다.

윤모촌 : 이 작품뿐만 아니라 김소운 선생의 다른 작품에서도 이와 같은 성격의 글을 많이 대해 왔습니다만, 주제라고 한다면 필자의 협객적인 성격을 통해 무례한 행동을 바라보면서 그것으로 독자에게 무엇인가를 시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봉진 : 저는 이 글에 구태여 주제라고 할 만한 것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비열한 인간성에 대한 분노, 그런 것을 표출한 글이라고 봅니다. 김소운 선생은 자신의 수필관을 쓴 ‘수필의 눈’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인간이나 인생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모순투성이고 부조리하다. 그리고 그런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에 평화로운 비둘기만 나오는 것은 아니며 그런 부조리를 보고 고뇌에 빠지고 괴로움을 겪고 분노를 느끼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수필이라는 것은 그런 것을 표현한 것이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 그 분노는 항상 밑바닥에 사랑을 깔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와 같이 그분이 주장한 수필의 요건 같은 것을 잘 갖추고 있는 작품이 바로 이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 방금 말씀하셨듯이 주제 모색에는 비교적 큰 문제가 있으리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구성상으로 특이한 점이 많기 때문에 혹시 다른 시각으로 보시는 분이 계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한형주 : 의협심이 넘쳐흐르는 작품이라고 보았습니다. 사회의 옳지 못한 점을 보고 느끼는 울분이 시원시원하게 잘 표현되었습니다. 문장이 읽기 쉽고 복잡한 언어구사가 없이 쉽게, 물 흐르듯 조리 있게 설명을 잘해 주었습니다.

정봉구 : ‘목근통신’ 같은 데는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멸시와 거기에서 나온 울분 같은 것이 나타나 있습니다만, 이 글에는 동족에 대한 깨우침 같은 것이 들어 있습니다. 어리숙하고 좀 부족한 동족에게 그렇게 해야 되느냐라는 자각에 대한 역설이라고 강하게 느꼈습니다. 일본인에게 이러구저러구 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가 자애하고 서로 긍휼히 여겨야 한다는 것에 주제를 두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 민족애의 고취로 보시는군요.

유경환 : 여러분이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 외에 저는 두 가지를 더 추가하고 싶습니다. 그 하나는 격(格)입니다. 아무나 쓰면 다 모자냐, 아무것이나 걸치면 그것이 다 옷이냐 하는 것, 즉 중절모자를 쓸 자격이 없는 사람이 중절모자를 썼다는 것을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룰에 어긋나는 짓, 비겁한 짓에 대해 마땅히 했어야 할 대응을 하지 못한 것을 비판한 글입니다. 둘째는 행동 못하는 지식인의 한계 같은 것을 느끼게 하는 글입니다. 비겁한 짓을 보고 속이 부글부글 끓지만 기껏 점잖은 말로 한 마디 합니다. 그보다 더한 행동이 나왔어야 하는데 하지 못한 지식인의 행동 반경 같은 것을 보여준 글입니다.

공덕룡 : 지식인의 약점을 쓴 글이고 작가 자신이 스스로 뉘우치고 있는 것을 보여 주는 글입니다. 비열한 행동을 보고 타이르는 정도에 그쳤으며 또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도 안했습니다. 거기다가 더 이상 개입을 않겠다고도 했습니다. 그 부분이 바로 제가 그렇게 보는 까닭입니다. 이 글에 나오는 등장인물을 보면 경상도 중늙은이와 패거리들, 그리고 작가 자신입니다. 그 가운데 주제를 두어 의미부여를 한 것은 세 번째 작가 자신입니다. 즉 아웃사이더로서의 김소운 자신을 중심으로 쓴 글입니다. 그것은 마지막 문장, ‘필경 나는 도회인의 생리와는 거리가 먼 영원한 촌뜨기일 수밖에 없다’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솔직히 드러냄으로써 자기의 심정을 말한 것입니다. 더 이상 제게 말할 기회를 주시지 않을 것 같아 한 말씀 더 드리겠습니다. 이 수필은 전개가 기가 막힙니다. 요령이 장인다워 합리적이고 독자를 완전히 끌어들입니다. 이 글의 첫 문장도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수법이고, ‘시선을 돌려보려니 발을 움직일 도리가 없고’도 그렇습니다. 이것은 완전히 ‘쟁이’의 표현입니다. 또 ‘아라비안 나이트의 비행담요처럼’이나 ‘한강 투석 같은 정력의 낭비’ 등의 비유의 표현은 특히 그렇습니다.

 

사회 : 공 선생님께서는 주제에서부터 시작해서 구성, 기교 문제까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유혜자 : 주제 면에서 조금 다른 의견이 있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선생님들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은 뜻인데 표현에 좀 차이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참다운 용기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하는 글이라고 봅니다. 인생이라든가, 나아가서 나라의 불행이라는 것도 참다운 용기를 가진 사람이 없어서 더 심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에 주제를 둔 사색적 수필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숙희 : 저도 한 마디 하겠습니다. 아까 유경환 선생님께서 격(格)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격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해 쓴 글이라고 봅니다. 중절모자를 쓸 만한 사람이 써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 또 지금도 아닌 그 당시에 스물 대여섯 살이 된 젊은이들이 50대의 아버지뻘 되는 사람한테 그렇게 했다는 것도 격에 맞지 않는 이야기이며, 당시는 전시인데도 군복을 입었으되 군인도 아니고,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 그 사람 자체가 나이와 그 당시의 상황과 맞지 않습니다. 또한 이 글의 제목도 왜 하필 중절모자라고 했는지, 그것 역시 격에 맞지 않는 것을 주제로 내세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진식 : 중절모자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에 약간 다른 의견이 있어서 말씀드립니다. 당시에는 조금 있다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 중절모자를 쓰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딸을 시집보낼 때도 한복에 중절모자를 썼으니까요. 여기서 말한 중절모자나 또 그것을 쓴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우리 촌사람의 자화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사회가 급격히 변했습니다. 유교적 전통이 급격히 사라져가고 사회적 가치의 붕괴가 시작되었습니다. 김소운 선생 자신은 보수론자는 아니었지만 시대의 점진적 변화를 원했지 급격한 변화를 바라지는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외래문화가 들어오고 우리의 전통, 도덕은 무시되었습니다. 평범한 한국인, 어른들이 젊은이들한테서 모멸을 당하는 것이 김소운 선생한테는 일본인한테서 받던 모멸감과 같게 느껴져서 중절모자라는 것을 내세워 이런 글을 썼다고 봅니다. 그리고 끝에 가서는 지식인의 무능, 크게 야단을 치고 싶어도 하지 못하고 기껏 점잖은 말 한 마디 하는 것으로 분위기를 모면하는 것뿐인 그런 무능, 그런 자기 자신을 썼다고 봅니다.

고봉진 : 중절모자에 대한 생각이 저와 달라서 말씀드립니다. 중절모자라는 것은 별명이 소프트(soft)입니다. 아주 부드러운 양모로 만든 것으로 중간을 접게 되었지요. 아까 말씀들이 나온 격(格)에 해당하는 것은 이 중절모자가 아니라 중산모입니다. 아주 높고 딱딱한 것으로 실크 해트 다음으로 신사들이 썼던 것이지요. 그러니까 여기서 중절모자를 썼다고 하는 것은 ‘나는 촌놈이다’라는 것과 일맥상통한 상징어입니다. 자조적인 김소운 선생의 생각과 맞아떨어지는 상징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봉구 :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저도 그것을 자기 모멸과 같은 상징어로 보았습니다.

윤모촌 : 이 글의 제목이 중절모자라고 해서 그 모자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중절모자를 쓴 중노인’ 혹은 ‘중절모자를 쓴 사람’의 생략이라고 봅니다.

고봉진 : 어지중간(於之中間)이라고 할까요. 그런 것과도 상당히 관계가 있는 상징인 듯하지 않습니까.

정진권 : 손을 든 사람에게도 말할 기회를 주십시오. 비유법, 대유법이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일부분을 떼어 내어 그 전체를 지칭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저기 별이 걸어온다’ 하면 장군이 걸어온다는 뜻이고, ‘사각모자들의 행진’ 하면 대학생들의 행진을 말하지요. 이 글에서의 중절모자는 평범한 오십대 백성의 대유이며 비유라고 봅니다.

이응백 : 이 글에 촌뜨기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앞부분에 ‘아무리 재보아야 시골 촌뜨기’라는 말이 있고, 뒤에 ‘나는 영원한 촌뜨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곧 중절모자를 쓴 촌뜨기와 김소운 선생 자신과를 일치시키려는 의도로 쓴말입니다.

 

사회 : 중절모자의 용도에 두 가지 이견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그것이 권위와 신분의 상징이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그것과는 달리 그 당시의 중절모자라는 것은 그저 서민계급에서 편하게 쓰던 것이었다라는 시각이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이 글에서의 중절모자는 상징적인 용법으로 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경환 : 제가 중절모자를 ‘격’이라는 관점에서 제시를 한 것은 이 작품 속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들어 있는데 그 가운데 김소운 선생이 제목을 중절모자라고 한, 그 관점을 제 생각과 연결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여기에서 보면 스물 대여섯 살짜리들이, 중절모자를 제대로 쓸 수 없는 사람들이 쓰고 다녔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건 그 사람들이 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라고 하는, 당시 사회상의 상징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회 : 주제 문제는 마무리하면서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께서 대부분 주제를 의협으로 보거나 분노로 보셨는데, 사실상 그것은 표현의 차이만 있을 뿐 내용의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김소운 수필의 주제에 대해 과거에 발표된 내용들을 몇 가지 소개해 보겠습니다. 김승우 씨는 ‘격정과 분노’라는 제목으로 김소운을 말했고, 원형갑 씨는 ‘수필은 김소운의 불행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도구였다.’라고 했습니다. 또 김소운 수필의 주제를 분석한 어떤 대학원생의 학위 논문에서 보면, 현실비평이 52%를 차지했고, 애국에 관한 것이 14%, 인생을 이야기한 것이 27%라고 했습니다. 다음으로 구성 문제에 대해 말씀을 해 주십시오.

윤모촌 : 여러분이 잘 아다시피 김소운 선생의 수필은 매우 극적입니다. 언젠가 ‘남다른 체험을 쓰면 그것이 바로 좋은 수필이 된다’라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바로 김소운 선생이야말로 남다른 체험을 많이 쓰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그의 글에는 글마다 협기가 드러나 있는데 그 협기가 독자를 끌어들인 것이고, 극적인 사건이 동기이기 때문에 구성도 단선, 즉 평면적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를 강하게 흡인하는 것입니다. 그 소재와 내용이 극적이기 때문입니다.

 

사회 : 평소 윤 선생님께서는 대화의 도입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데, 수필 속에 대화체를 도입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한 말씀을  해 주십시오.

윤모촌 : 제가 되도록 대화체를 삼가라고 한 것은 요즈음 신인들이나 지망생들이 쓸데없이 대화체를 넣는 것을 보고 한 말이고, 대화체가 필요없다고 한 말는 아닙니다. 문장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나 설정된 상황묘사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필요하다면 이렇게 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봉진 : 제가 이 글에서 주목한 것은 이분이 쓰는 문장의 시제(tense)였습니다. 과거에 열차 안에서 본 것을 쓴 글인데, 쓴 시점과 시제의 통일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방금 윤 선생님께서도 말씀을 하셨지만, 그 시제를 대화체로 절묘하게 활용해서 현장감 있고 박진감 있는 글로 만들었습니다. 또 이 글 속에 ‘야, 이 육시를 해서 구어 먹을 놈들아’ 라는 육두문자가 나오는데, 자리를 빼앗고 놀리는 젊은이들이 과연 그만한 죄를 지은 것인지, 또 그런 표현이 요즈음 글에 나왔다면 글의 품격 문제라든지, 써서는 안 되는 단어를 썼다라는 문제가 일어날 텐데, 이 글에서는 오히려 그런 것들이 모여서 파격을 만들었고, 그래서 더욱 호소력이 있는 글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윤모촌 :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우리가 김소운 선생의 글에 빨려 들어가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문장의 기교 때문입니다. ‘육시를 할 놈아’라는 거친 표현으로 절정에 이른 필자의 감정을 노출시킴으로써 독자를 대리 만족시키는 것입니다. 이분의 글에는 거품이 없습니다. 도입 부분에서부터 바로 현장감 있는 곳으로 끌고 갑니다.

김영만 : 김소운 선생의 수필이 성공을 거둔 두드러진 요인은 글의 구성과 문장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형상화를 하는데 어떤 작품에서건 구성이 성공을 하고 있으며, 현장감 있는 표현을 함으로써 읽는 이가 느끼게 합니다. 달인에 가까운 기교를 가지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 약정하신 세 분께서 이미 대단히 중요한 점을 지적하셨습니다. 아직 말씀하시지 않은 점이 있어서 말씀드립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젊은이의 학위 논문에 ‘김소운의 수필 구성은 초기에는 단순적이었으나 중기, 후기로 들어서서는 복합 구성에 장편화 경향을 보였다.’라고 말한 것이 기억납니다. 이 말에 타당성이 있는지 유의하면서 말씀해 주십시오.

이응백 : 문장을 살펴보겠습니다. 극적인 대화가 들어 있어서 전체적으로 활기찬 글입니다. 그러나 말의 품격이 문제가 되는데 ‘육시를 해서’라는 말은 보통 문자에는 들어갈 수 없는 말이지요. 그러나 여기서는 이것이 속시원하고 후련하게 표현을 한 것이 되었습니다. 또 이 글 속에 나오는 ‘승승하고 기세등등’이라든지, ‘홍소’, ‘목도’ 등은 요즈음 같으면 모두가 출판사 교정인의 손에서 고쳐진 말들이지요. 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는 데 이 글의 매력이 있습니다.

김병권 : 언뜻 보면 별 거 아닌 것 같은데, 읽어 보면 아! 대가답다 하는 것을 느끼게 하는 글입니다. 수필에 있어서의 대화체에 대해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이 글의 구성에서는 대화체가 상당히 분위기를 돋우었다는 점에서 저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제라고 한다면 모자를 깔고 앉은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여기서 모자라고 하는 것은 옛날 우리가 ‘갓’에 대해 갖고 있던 개념, 즉 불가침의 것으로 본 것이 아니라 촌뜨기의 개념으로 본 것입니다. 촌뜨기 영감, 즉 자기 자신을 자조한 글입니다. 문장을 끌고 나가는 솜씨는 말할 것도 없고, 격정적 감정을 절제한 그 솜씨와 수법을 높이 평가합니다.

김태길 : 진행에 대해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합평회 진행을 위해 사회자가 많은 준비를 연구해 왔으니까 거기에 맞추어서 말씀을 해 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또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문장의 대가이신 윤 선생님께 한 가지만 여쭈어 보겠습니다. 이 글의 중간쯤에 ‘싱글벙글 히죽히죽’, ‘하하하 깔깔깔깔’, ‘하하하하 킥킥킥’이라는 말을 괄호 속에 넣어 표현했는데 이것이 옳은 표현인지, 좀더 낫게 처리할 방법은 없는지 선생님 의견은 어떻습니까.

윤모촌 : 저도 이 부분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해보았습니다만 역시 별 도리가 없지 않았느냐 하는 생각입니다. 더 적확한 표현이 무엇인가, 다른 말로 대체하거나 다른 방법을 썼을 때 그것이 앞뒤의 분위기와 조화가 안 되면 적확한 표현이 되지 못합니다. 여기의 이런 표현들은 이 상황묘사에서 가장 절정을 이루는 표현이며, 이런 방법뿐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여기서는 이 방법이 충분한 효과를 냈다고 봅니다. 그러나 제 입장이었다면 이런 식의 표현을 감히 하지 못했을 것이고, 어떻게 하든 지문 속에 넣도록 노력을 했을 것입니다.

정봉구 : 이런 부분이 김소운 선생만이 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연극에서도 모든 것을 대사로 처리하다가 대사 이외의 설명문을 두는 것처럼, 여기 이것도 그와 같은 역할을 하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김소운 선생만의 기교이지요.

 

사회 : 마치 무대 뒤의 효과처럼 보시는군요.

유경환 : 구성상의 인물 설정에 이 글의 묘미가 있다고 저는 봅니다. ‘웃녘 말씨’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저는 여기에 관점을 두고 싶습니다. 직접 지칭을 하지 않고 왜 이런 표현을 썼는가. 군복을 입고 무례하게 행동하는 이들을 간접으로 표현한 것인데, 전시에 군복을 입고 이렇게 무례하게 행동하는 사람들, 이들은 전투원이 아니고 프레스도 아니라고 필자가 밝혔습니다. 그러면 군속이거나 군 수사기관, 군 정보기관에 속하는 사람들일 텐데, 그런 이들이 집단적으로 무례한 행동을 하는 데 대해 느끼는 격분, 그런 것을 고발하고 욕하는, 일종의 사회 고발성 글입니다. 그러면서도 구성상의 묘미를 살려서 인물을 직접 지칭하지 않고 ‘웃녘 말씨’라는 간접 지칭을 사용한 것이 이 글의 묘미라고 보는 것입니다.

정진권 : 서북 청년회인지 뭐 그런 청년회 사람들 아닙니까.

한형주 : 저는 바로 그 시절에 군 생활을 8년이나 했습니다. 그 시절에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보통 군속이나 보통 정보기관원들이 아닙니다. 이북 첩보원이 낙하산 등으로 떨어져 온 사람들이지요. 안하무인이었고 무법이었습니다.

 

사회 : 이 짧은 수필 속에 나타난 신분, 방언, 분위기를 통해서 1950년대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도록 현실 반영이 잘되었다는 데 거의 동의하신 것 같습니다.

정규복 : 지금까지 여러분께서 김소운 선생의 긍정적인 면에 대해서만 말씀을 하셨는데 저도 뭐 거기에 크게 반대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이 글에서 제가 관심을 가지고 보는 것은 중절모자를 쓴 노인의 성격입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런 모독을 받고 노인은 돈키호테 식 대응을 했습니다.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었을까. 그 노인의 성격이 제게는 어필하지 않습니다.

김채은 : 우선 저는 이 글을 처음 읽고 무척 슬펐습니다. 1952년은 제가 초등학교 입학한 해입니다. 일본 통치 후 사회 정립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시대라고 생각하는데, 잊고 있었던 그 시대의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어린 기억이지만 인격이, 또 나이라는 것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 슬픔이 김소운 선생의 표현력과 절제된 문장으로 다시 절절히 느껴졌습니다. 격한 표현이 군데군데 나오기는 하지만, 그런 것들이 한데 어울려 통째로 때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다른 선생님들께서 말씀을 많이 하셨지만 여기서는 중절모자라는 것은 당하는 사람들의 말 못하는 마음, 하고 싶으면서도 하지 못하는 그런 것을 표현하고 상징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 여러 갈래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김소운 선생은 수필로 쓰는 수필론을 통해서 여러 번 자아의 관조를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늘 독자의 존재를 의식했었습니다. 필자는 독자의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그것은 이 글의 끝부분, ‘나는 수신교사도 사회개량가도 아니다’라는 데서도 뚜렷이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이 시대를 고발하겠다는 용기와 의욕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런 것으로 볼 때 작가의 정신이 표현의 기교를 뛰어넘을 정도로 강했다고 봅니다. 그것이 이런 성공적이 문학을 만들었다고 봅니다. 그러면 다음 논의로 넘어가겠습니다. 이번에는 작가의 위상 문제입니다. 먼저 이 중절모자는 김소운의 전체 수필에서 어느 정도의 예술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리고 김소운 전체 문학과 생애를 통해서 볼 때 과연 이 작품이 말하려고 한 것은 무엇인가. 그 점에 중점을 두어 말씀을 해 주십시오.

윤모촌 : 한 마디로 말해서 김소운 선생의 수필세계는 행동하는 문필가의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관념적인 글을 쓰는 분이 아니라 모두 행동을 바탕으로 해서 글을 쓰신 분이지요. 이 작품의 마지막에도 그것이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평생 나는 도회인의 생리와는 거리가 먼 영원한 촌뜨기일 수밖에 없다’라고 반어적으로 도회인을 비난했습니다. 개인주의적이고 타산적이며 현실을 비판만 했지 행동에는 인색하다, 이런 의미로 도회인을 비난한 것이지요. 또 김소운 선생은 일제시대에는 일본인을 질타한 글로 유명하지만, 해방 후 우리를 대상으로 쓴 글에도 그런 정신이 번뜩이고 그런 협기가 보입니다. 그런 협기로 행동하는 글을 쓴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봉진 : 이야기가 자꾸 중복되는 느낌입니다. 김소운 선생은 이 나라에서 처음으로 수필가라는 이름을 당당히 획득한 분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분의 성공적인 인생은 수필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분이 번역을 해서 일본의 권위 있는 출판사인 이와나미 문고(岩波文庫)에서 나온 『조선 동요집』과 『조선 민요집』은 아직도 중판을 하고 있고,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의 시(詩)를 일본 말로 변역을 했고, 우리 민요를 수집해서 일제시대 때 우리말로 출판을 하게 했으며, 아동문학지를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사회자께서도 처음에 말씀을 하셨지만, 오늘의 합평 작품으로 ‘중절모자’를 선택한 것은 이 수필이 김소운 선생의 작품 가운데 제일 값어치가 있다든가 아니면 뛰어나게 걸출한 작품이어서 선정한 것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작품이 김소운 선생의 작품 가운데서 수필의 특징이랄 수 있는 것을 많이, 거의 완벽하게 갖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비겁한 인간성에 분노를 하면서도 어중간한 정도에서 타협하고 맙니다. 아주 부드러운 재료로 만든 중절모자를 상징으로 내세워 이 작품을 쓴 것이라고 봅니다.

김영만 : 김소운 선생의 수필은 흔히 사회수필 혹은 비평수필로 성격지을 수 있다고 합니다. 저도 그 점에 동의합니다. 이 ‘중절모자’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수필들이 사회성을 띤 비평수필이고, 또 선생의 신변수필이라고 일컬어지는 작품들도 사회적인 색조를 강하게 띄고 있습니다. 저는 김소운 선생 수필의 특징을 세 가지로 보고 있습니다. 첫째로 직설적이며 토로적입니다. 붓 한 자루로 상징되는 선생의 붓은 은유나 풍자, 풍류와 같은 간접화법을 거부하고, 직접 사안에 뛰어들어 자기를 노출시키는 특징이 있습니다. 가슴에 담아놓고 고뇌하며 천착하는 것이 아니라 곧장 파헤치고 드러내 놓고 토로하고 그 자리에서 확정된 결론을 내리려 합니다. 그의 글 가운데 ‘그렇지 않을까’ 혹은 ‘그럴지도 모른다’라는 표현이 거의 없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선생 자신이 말한 ‘발한작용’으로서의 글쓰기 태도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감기에 걸렸을 때 약을 먹고 땀을 내야 하는 것처럼 수필은 김소운 선생에게 발한과 같은 자기 구원의 카타르시스였다고 봅니다.

두 번째 김소운 선생 수필의 특징은 낭만주의적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은 계몽주의적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자칫 사회비평 수필이 빠지기 쉬운 교훈적, 훈화적인 함정을 묘하게 피하고 극복하고 있습니다. 고답적인 자세, 독선적이기까지 한 주의 주장, 준열한 꾸지람 같은 것을 우리가 그분의 글 속에서 대하면서도 저항감을 별로 느끼지 않는 것은 바로 선생의 그런 특기 때문이며, 선생의 모든 작품에 배음처럼 깔려 있는 ‘깊은 휴머니티의 정신과 진솔한 문장 표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 특징은 극히 평면적이라는 점입니다. 상황을 보는 시각이 평면적일 뿐만 아니라 거기에 대한 대응 또한 수평적입니다. 이 점은 이 글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어리수군한 노인을 놀려대는 젊은이들의 방약무도한 행태는 어느 날 기찻간에서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그 당시 균열된 사회가 안고 있던 여러 사건 가운데 하나에 불과합니다. 즉 사건을 수직적, 구조적으로 보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선생의 수필이 평면적이었다고 하는 것은 그의 사회비평 또한 대중요법적 비분강개의 수준에 머물렀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윤모촌 : 김소운 선생은 비판을 잘하시는 분이었습니다. 특히 자신에 대한 비평에는 매우 엄격하셨는데, 글을 쓰시는 것도 그런 정신으로 쓰셨다고 봅니다. 그분이 쓰신 글 가운데 다음과 같은 말이 생각납니다. 당시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에 대해 시비가 일자, “그것을 시비삼지 말고 반성의 재료로 삼아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민족의 단점을 지적한 것이지요. 자신에 대한 비판이 엄격한데서 나온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 세 분께서 좋은 말씀들을 해 주셨습니다. 그럼 김시헌 선생님께 질문 하나를 하겠습니다. 흔히 김소운 선생의 수필이라면 ‘외투’, ‘붓 한 자루’, ‘특급품’ 등을 대표적으로 말합니다. 그 작품들의 특성을 말씀해 주시고, 이 ‘중절모자’는 그 대열에 낄 수 있는지 아니면 어떻게 평가를 할 수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김시헌 : 제가 대구에 있었을 때 김소운 선생과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종일 같이 다녀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루에 세 번이나 크게 격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점심 식사하러 식당에 갔다가 방바닥을 닦지 않았다고 화를 내고, 차를 마시러 다방에 갔다가는 거스름돈을 안 가져 왔다고 정직성을 꾸짖으며 화를 냈습니다. 그리고 도화사 근처에 갔을 때는 도토리묵에 밀가루를 섞었다고 또 화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것으로 볼 때 그분에게는 비평 충동이라는 것이 항상 꿈틀거리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런 것이 행동주의 문학을 낳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중절모자’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외투’나 다른 작품도 그렇습니다만, 문장 속에 자신의 성격이 그대로 살아 움직이고 있어서 그의 문장과 행동이 합치되어 있는 것을 느낍니다. 사건들을 작품화하는 데 특별한 기술을 가지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성에 있어서도 역시 행동한 그대로 맺었다는 느낌입니다. 중간 부분에는 여러 지방 사람들의 사투리를 많이 넣고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 끝을 맺었습니다. 구성법이 도드라졌다고 보았습니다.

 

사회 : 지금까지 침묵하고 계신 회원들께서도 말씀을 해 주십시오.

문혜영 : 독자들이 작품을 읽으면서 결국 만나게 되는 것은 그 작품을 쓴 인물입니다. 작가의 맥박과 생명력을 느끼며 읽게 되는데, 김소운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는 참 남성적이다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강하고 전혀 주저하지 않는 성격이 그대로 나타나 있어서 글을 읽으며 이분의 심장, 맥박이 어떻게 뛰고 있는지에 대한 상상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송규호 : 시나리오를 읽는 느낌, 3등 기찻간에서 일어난 촌극 한편을 읽는 느낌이었습니다. 아까 김태길 회장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웃는 대목을 괄호 속에 넣어 표현한 것이 그런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그러나 수필에는 부적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장이 쉽다는 데는 동의합니다만, 과연 문학성을 띄었느냐 하는 점에 대해서는 상당히 의문입니다.

정진권 : 여기서 기찻간이라고 하는 공간을 우리 사회 전체의 공간이라고 넓혀 놓으면 떼거리 짓을 하는 사람들이나 자기 권한을 침범당하면서도 말 못하는 사람들이나 그것을 보고 비분강개 한다든지 참거나 하는 사람들의 무리들이 확연히 떠오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점이 좋습니다. 그러나 끝부분에 ‘필경 나는 도시인의 생리와는 거리가 먼 영원한 촌뜨기일 수밖에 없다.’ 라는 말로 결론을 냈는데, 이런 말이 나오기 위해서는 앞에서 도회인과 촌뜨기의 특성이 밝혀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이 없으니까 필자인 ‘나’라고 하는 사람이 어떤 면에서 촌뜨기인지 확연하지 않고, 이런 결론이 돌출된 근거가 미흡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진식 : 저도 동감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이 글에서는 표현상의 상징 구조의 특징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절모, 도시인, 그리고 괄호 속에 집어넣은 웃음소리 등은 상황의 효과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한 것입니다. 그 시추에이션의 효과를 살리기 위해서 대유를 많이 한 것이지요. 실제로 김소운 선생은 부산 영도 출신으로 순전히 도회에서 자랐습니다. 자기가 촌뜨기여서 영원한 촌뜨기라고 한 것이 아니고 상징 구조상, 비유성을 정점으로 하다가 그렇게 한 것이라고 봅니다.

오경자 : 김소운 선생은 이 글에서 중노인 묘사를 여러 번 아주 집중적으로 하셨습니다. ‘어리수군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농부 차림의 중노인’,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중노인’. 이외에도 뒷부분에 여러 번 나옵니다. 이것은 압제받는 기층민에 대한 연민과 증오의 감정을 중노인에 대비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정선모 : 김소운 선생이 우리 나라에서만 살았더라면 결코 보이지 않았을 우리 민족의 부족한 면, 결핍된 민족성 같은 것을 자조적인 어투로 표현한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 황폐해진 조국의 현실과 추락하는 정신세계, 도덕 문제까지 잘 표현해 놓은 글이어서 문학적인 향기랄까, 감동은 그다지 느낄 수 없지만 공감은 충분히 할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최순희 : 이 작품을 오래 전에 읽었을 때도 그러했지만, 이번에 다시 읽고서도 저는 서글픔을 느꼈습니다. 수필의 사회적 공익성에 대한 의문이랄까, 사회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한다는 것에 자괴심을 느꼈습니다. 수필가라는 것이 그 순간에 행동으로 나서서 상황을 전반시키지 못하고, 그 순간을 모면하고 돌아서서 객관화시키고 씁쓸해 하고 글로써 비평해 보는 정도의 역할밖에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김소운 선생께서는 그래도 행동하는 양심인으로써 사회비평에 뛰어나고 문장이나 구성도 절묘합니다만, 여기서도 어쩔 수 없이 무력감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사회 : 요컨대 글과 행동이 일치하지 못하는 작가의 나약성 같은 것을 지적하는 말이군요

김태길 : 아까 정규복 선생님이 “너무 찬양 일변도다.”라는 말을 하기 전까지는 감히 아무도 이 글의 잘못된 점, 덜된 점을 지적하지 못하고 대단히 좋은 작품이라는 이야기만 나왔습니다. 내가 보기에 형상화, 구상, 기교, 표현, 구성, 이런 것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요즈음 우리 세대에도 이 정도로 쓰는 수필가는 줄잡아 2, 30명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이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는 것은 저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우리 세대의 수필가들이 김소운 선생을 못따라 가는 것은 형상화나 기교, 표현, 구성, 그런 것이 아니라 이분이 산 것과 같은 체험의 세계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 그리고 세상을 보는 시각이 이분만큼 넓고 깊지 못해서 거기에서 오는 한계 때문이라고 봅니다. 솔직히 수필의 작법 같은 것은 이분보다 나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수필을 잘 쓴다고 하는 것은 문장의 표현, 기교,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풍부한 체험과 그것을 얼마나 넓고 깊게 들여다 볼 수 있느냐 하는 시각의 깊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이 글에서 제가 아쉬움을 조금 느끼는 것은 협기가 강하고 용기가 있는 것 같으면서도 지식인의 한계 같은 것을 느끼는 점입니다. 끝에서 두 번째 문단에 ‘그 경상도 친구가 도로 자리를 찾은 것은 내가 알 바 아니다’라고 한 것은 변명을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자리를 중노인에게 돌려주지는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왕 말을 꺼냈으면 그래도 자리를 돌려주게 했어야 하는데 흐지부지한 점이 아쉽습니다. 그래도 당시에 김소운 선생 정도로 알려진 명사라면 거기까지 확인을 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문장, ‘나는 수신 교사도 아니고 사회 개량가도 아니다’라는 표현도 구구한 변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기가 강하고 협기가 있었던 김소운 선생도 역시 지식인의 한계 같은 것을 가졌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회 : 긴 시간 동안 여러 회원들께서 진지한 토론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시 토론한 내용을 집약하고 합평회를 마치겠습니다.

평가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이고 찬미적이었습니다. 의협적이며 분노적이고 정의적인 분위기를 깔면서 구성은 상징적이고 시대적, 현장적인 것들이 통쾌하고 직설적으로 표현되어 김소운이 갖는 수필의 특징을 충분히 담은 작품이라고 보았습니다. 다만 이 글의 마무리에서 약간 변명적인 지식인의 소극성이 보인다는 유감스럽다는 견해도 있었습니다.

저 개인으로도 김소운 하면 생각나는 두 구절이 있습니다. ‘향토는 내 종교이다’와 『목근통신』에 나오는 ‘내 어머니가 문둥이일지라도 클레오파트라와 바꾸지 않겠다’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민족과 향토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런 것들이 치열한 작가정신에 부합되게 직설적이고 서사적으로 이 작품에 표현되어 더욱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다행스럽게도 김소운 선생의 반면으로 토론되었던 ‘친일 문제’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순수한 문학작품으로만 합평을 하려는 우리들의 미덕을 보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