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 게임

                                                                                             鄭 鳳 九

 내가 평시에 아침으로 산책을 다니는 초안산은 나지막한 야산이다. 그 산은 옛날엔 내시와 궁녀들의 무덤터였다는 말도 있고, 여기 저기 돌보지 않는 무덤들이 산재한다. 그러나 그렇게 볼품없는 산일망정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산책길이다. 실상 그것은 나뿐이 아니라 인근 주민들 상당수의 오아시스적인 녹지대라고도 할 수 있다. 구청에서 구민을 위하여 군데군데 시설해 놓은 운동틀이며, 또 개인 단체들이 설치한 배드민턴장들이 꽤 여러 군데 있다. 그리고 두어 곳에선 일년 내내 생수가 나와서 약수라고 하며 많은 이들이 그것을 받아간다. 나도 산책길 목표를 이 약수터에 두고 갈 적마다 서너 병씩 그 물을 받아온다.

그런데 그 산허리에 몇 년 전에 군 기관에서 북쪽 사면 일대로 호를 파고 군사 훈련지를 만들어 놓았다. 그 공사를 하는 동안 얼마간은 저으기 불안한 기분이었다. 이제 저것이 완성되면 입산 금지령이 내리겠지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호를 다 파놓고도 군인들의 상시적인 이용은 없고, 그 시설물들은 그대로 방치된 상태였다. 공연히 멀쩡한 산을 이리저리 파헤쳐 놓아 산만 망쳐놨구나 생각하며 나의 산책은 계속되었다. 이즈음엔 구불구불 이어지는 참호 구덩이들이 본래부터의 산 모양인 것처럼 예사스러울 만큼 익숙해졌다.

폐타이어와 블록으로 축조한 호의 길이가 장장 이어지며 아래위로 뻗어 있어 제법 요새지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거기서 카키색 군복 차림의 젊은이들이 허리를 굽히고 뛰는 모습을 발견하였다. 순간 이제야 저 호를 이용하는가 보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들은 정규 군인이 아니었다. 놀이를 즐기는 청년들이었다. 실총과 똑같은 기관단총 류의 장총과 더러는 권총을 들고, 참호를 누비며 꽤 여러 명이 전쟁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 후로 일요일 같을 때면 종종 그런 무리들이 눈에 띄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그 광경을 멀거니 바라보기도 하였다. 분명히 그들은 애들도 아니고 중고등 학생도 아닌 사회인이었다. 젊은 회사원층이거나 대학생층으로 보이는 성년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하고 있는 놀이는 옛날에 내가 코흘리개 시절에 하던 ‘병정놀이’였다. 깨끗하게 생긴 멀끔한 체구에 버젓이 애들 놀이를 하고 있는 그들을 보며, 나는 새삼스러운 시대 변화의 일면을 느꼈다.

그런데 바로 지난 일요일, 나는 또다시 그런 광경과 마주쳤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산책길 산행이었는데, 산 어귀에 들어서자 약 20명 가량의 남녀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분주히 행동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서성대는 머리 위 나무 사이에 덩그러니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서바이벌 게임중입니다’ 하는 것이었다. 그와 같은 어른들의 병정놀이 명칭이 서바이벌 게임이란 것을 비로소 알았다.

언젠가 이런 종류의 놀이를 공산군 간첩들의 침입으로 오인하고 신고를 하였다는 보도를 신문지상에서 보았는데, 아마 그런 오해를 면하려고 플래카드를 걸었겠지 짐작하며 다시 한 번 그들을 눈여겨보았다.

서바이벌 하면 원어로 survival이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살아 남는, 생존, 잔존, 생존자, 잔존물, 유물, 유풍 등등’의 뜻이 되겠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살아 남기 위해서 저들은 죽이는 전쟁놀이로 즐기는 것인가. 어이없는 사치가 아닐 수 없었다. 그 모조 총이며 복장 일습을 돈으로 따질 때 소요되는 소비성 경비며, 그 밖의 준비물이나 행동 과정이 너무나 낭비적이라는 생각이었다.

얼마나 지루하고 권태로우면 저런 놀이를 할까. 전쟁은 본래 권력에 묻힌 인간 집단의 권태에서 싹트는 위험하고 무책임한 작위라고 알랭(Alain)의 책 『정신과 정념에 관한 81장』에서 읽었지만, 저들의 유희 요인이 권태와 상관되는 수치계수가 어떻게 될까? 저들은 분명히 그것을 유희로 하고 있으니 그것도 친교의 방법일 것이니, 그 또한 아이러니하다. 그들 일행 중에는 여자들도 몇 명 끼어 있지 않는가.

내가 어려서 뛰놀며 동아리들끼리 가지고 놀던 총이나 칼은 기껏해야 나무로 만든 것이고 모양뿐인 것이 대부분이었다. 땅땅, 퍽퍽… 소리도 기계나 기구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입으로 내는 것이었고, 죽는 것도 멋대로고, 살아나는 일 역시 멋대로였다. 그야말로 애들 장난이었다. 청년들의 서바이벌 게임도 죽고 사는 것은 비슷하게 보였다. 그런데 그들의 총에선 갖가지 색깔의 조그만 총알들이 튀어 나왔다. 내가 다니는 산행 길에는 그 탄알 알갱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산책을 하면서 그런저런 생각을 하자니 마냥 시대의 변천과 살아가는 방법을 생각케 하였다. 서바이벌이란 단어가 이상하게 머리 속에서 별다른 형태로 형상화한다. ‘살아 남는 일… 등등’ 그것이 서바이벌이라면 내가 하는 산책도 서바이벌 게임 아닌가? 엉뚱한 생각과 함께 잠깐 나의 고독한 산책 게임이 서글픈 영상으로 스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