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춘수제(送春數題)

                                                                                             許 世 旭

 一

 

언제나 출근길은 즐거웠다. 버스에서 내려 내 연구실이 있는 언덕빼기까지 거의 7, 8분의 보행이 즐거웠다. 길다란 지하도를 건너 높다란 교문을 지나 비탈진 언덕을 걸어 시계가 걸린 석탑까지 오르는 그 길이다.

이른 아침 지하도에서 꼭 만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벌써 우리 학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식구였다. 그는 늘 까맣게 물들인 군용 점퍼 차림에 덥수룩한 머리, 까실한 콧수염에 잿빛 눈망울, 입가로 늘 고드름처럼 달린 침과 턱 밑에는 몇 오라기 뿌연 수염이 솟구쳐 있다. 한 손은 바지 주머니에 꽂고, 한 손은 허리춤에 늘인 채 왼쪽 다리는 반걸음쯤 뒤로 빼고 바른쪽 다리는 반걸음쯤 전진 자세인데, 그 다리는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그 시선에 그 입, 그 손짓에 그 떨림은 지하도에 세운 동상이랄 만큼 꼭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 아래로 동전을 던지게 비닐 광주리도 없었고, 그 옆으로 옛 노래가 흐느끼도록 녹음기도 없었다. 도시 그 내력을 알 수 없었다. 언젠가는 훌쩍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을 안고도 날마다 그를 확인하는 것으로 일과를 삼았었다.

지난 겨울 종강 때도 그 사내를 만났었다. 아니 근 십년을 출근 때마다 만났었는데, 올해는 봄이 일찍 왔고 정권도 바뀌었는데 그 사내를 만날 수 없었다. 봄이 가도록. 지금 사회 곳곳에 직장이 붕괴되고 있는데 그 사람의 직장도 붕괴된 것이다.

 

 

홍보관 한쪽에 교내 우체국이 있었다.

편지를 붙이려 건너가는데 그 입구에 대학 노트를 찢어 만든 분실물 찾기 광고가 붙었다. 또박또박 정성들여 쓴 까만 싸인펜 글씨가 인상적이었다.

‘까만 지갑을 찾습니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물려주신 유품입니다. 저에겐 큰 의미가 있습니다. 꼭 후사하겠습니다.’

그 걸 읽는 순간, 내 눈시울이 뜨거웠다. 벌써 26년 전,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망극한 애통 속에 장례를 치르고 사랑방 건너에 궤연(机筵)을 차릴 때 난감한 일이 생겼다. 제상의 혼백 상자 위로 영정을 모셨으면 했는데, 그러한 사진이 없었다. 사진 찍기를 싫어하셨던 성품이라 어쩔 수 없지만, 독사진 한 장 남겨두지 못한 우리의 불찰도 없지 않았다. 애써 아버님의 유품을 추심 끝에 가까스로 주민등록에 쓸 반명함판 사진 한 장을 찾아내었다.

그 사진을 확대해서 영정으로 모셨다. 한동안 나는 그 증명사진을 지갑에 넣고 다녔다. 그런데 망인의 사진을 지갑에 넣어 뒤꽁무니에 달고 다닌다는 일이 왠지 불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꺼내어 어딘가 안전하고 은밀한 곳에 깊이 감춰 두었건만, 20년이 훨씬 넘게 세파를 타는 동안 그 소재를 잊고 말았다. 수 년 전에는 영정으로 모셨던 그 사진과 어머님의 유용을 어느 사진관을 통해 초상화로 그렸다. 지금 내 서재에 모신 내외분 초상화가 바로 그렇게 얻어진 것이다.

이 봄, 뜻밖에도 잊어버린 그 사진을 찾고 싶었다. 분실물 찾기조차 할 수 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올 봄은 일찍 핀 꽃으로 왁자지껄하더니 어느새 비취빛 신록으로 한창이다.

엘니뇨란 기상이변으로 봄이 얼른 와서 성급히 갔는데, 꼭 화사한 봄 한 꼭지를 홀랑 빼앗긴 기분이다. 거기다가 봄비가 잦았다. 터무니없이 퍼붓기도 했었다. 꽃이 무더기로 분분하게 뜨락마다 일찍 떠나는 그 모습이 애처롭기도 했다.

옛 어른들은 영송(迎送)에 각별했었다. 반가운 손님이 올 제면 짚신을 거꾸로 신거나 대문을 열어젖히기 일쑤였다. 전송은 더욱 정중했었다. 손님이 며칠 머물다가 떠나는 아침이면 온 집안이 뒤숭숭했다. 버들개지가 표표한 늦봄이나 하얀 언덕빼기에 억새풀이 우는 늦가을이면 훨씬 아쉬워했었다.

그들은 붙잡고 뿌리치며 쉬엄쉬엄 헤어졌다. 사랑방에서 대문을 지나 징검다리를 건너서 동구 밖을 나서면, 주객은 밀거니 따르거니 실랑이를 벌였고, 다시 넓은 신작로에 나서면 또 한 번 밀고 밀리는 촌극이 재연되었다.

그토록 아쉽게 헤어지지만 그들의 후약은 결코 쫓기지 않아서 좋았다.

“내년에 꽃 피면 또 만나세.”

손님의 하얀 두루마기가 가물가물 고개를 넘을 때까지 주인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옛분들은 잠시 떠남에도 그렇게 정중했는데 하물며 죽음에랴!

아름다운 꽃일수록 올해처럼 무더기로 일찍 떨어져선 안 된다. 어차피 가는 길인데, 하필이면 벌떼의 그것처럼 차곡차곡 쌓이거나, 시장으로 팔려 가는 흑염소처럼 줄줄이 묶여서 종종걸음 할 수야.  혼자 떠나기에도 서러운데.

오죽하면 애비가 식구들을 거느리고 뒷동산에 동태처럼 매달리고, 떡볶이 한 접시면 온 세상을 얻었던 소녀들이 이십 층 옥상에서 낙석처럼, 유성처럼 투신하거나, ‘타이타닉’ 구경 한 번이 소원이라던 아가씨가 칠공들이 쓰는 신나를 뿌리고 전광석화처럼 가랴마는, 그래서는 안 된다. 결코 동반이라는 미명으로 한꺼번에 막을 내려서는 안 된다. 꽃잎은 정녕 한잎 한잎 흩날릴 때 비로소 아름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