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에세이

드보르자크의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 

                                                                                                   柳 惠 子

 해질 무렵, 빅토리아 드 로스 앙헬레스가 그윽하게 부르는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를 듣노라면 내 마음은 냇물 따라 지향없이 흘러가는 종이배가 된다.

어렸을 때 이 노래의 제목만 들었을 때는 즐겁고 단란한 가정의 모습을 연상했었다. 정원에 오색꽃이 만발한 양옥집에서 어머니의 풍금 소리에 맞춰 아이들이 낭랑하게 노래하는 정경이 상상됐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가르쳐 주는 노래는 얼마나 행복한 내용일까. ‘반짝반짝 작은 별…’의 ‘Twinkle twinkle little star’라든가 ‘종이 운다 종이 운다 땡땡땡’처럼 즐겁고 경쾌한 것이려니 짐작하고 있었다.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우리네 가정은 유교식 전통으로 부모와 자녀 사이가 엄격한 관계였다. 부모와 자녀가 대등하게 의견을 펼치며 대화를 나눈다거나 노래를 가르쳐 줄 분위기가 아니었다. 게다가 어머니는 집안 일이 몹시 바빴고, 아이들과 함께 부를 만한 노래도 없었다. 그래서 서양 영화에서 가족끼리의 자유 토론이나 함께 노래하는 장면이 나오면 무척 부러웠었다.

어느 날 드보르자크의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를 정작 들어보니 천천히 시작되는 전주부터 숙연하게 들렸다. 폐부 깊숙히에서 우러나오듯 그윽하면서도 우수적인 짧은 노래가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끝난 후에도 여운이 길게 깔렸다.

제목만 들었을 때는 왜 막연하게 즐겁고 경쾌한 노래로 짐작했었을까. 애절한 멜로디를 들으며 문득 우리 어머니가 부르던 노래들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동생을 재우면서 흥얼거리던 자장 노래라든가, 배가 아프다면 문지르며 불러주던 ‘까치야 까치야…’ 등, 노래라기보다 한탄조에 가까운 토막 노래들.

인간세사의 애환을 애써 겉으로 표시하지 않고 속으로 삭이며 살던 어머니들이 푸념으로, 넋두리로 토해 내던 노래였다. 툇마루에서 아이를 재울 때 조용히 등 뒤에서 물드는 저녁놀. “자장 자장 우리 아기 새근새근 잘도 잔다. 검둥개야 짖지 마라. 꼬꼬닭아 울지 마라” 하고.

그런데 우리 어머니의 나직한 자장 노래는 어둠이 깔리는 마루 밑으로 잦아들듯 힘이 없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나도 웬지 서글퍼져서 눈을 들어 먼 산을 바라보면 어미 품을 찾아가는 새의 날개가 희끗희끗 보였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의 슬픈 가사를 보니 더욱 서글퍼지는 것이었다.

 

♬ 늙으신 어머니 나에게

그 노래 가르치시던 때

그의 눈엔 눈물이 곱게 맺혔었네

이제 내 어린 딸에게

그 노래 들려 주노라니

검은 두 뺨 위로 아 한없이

눈물 흘러내리네

 

어머니가 어떤 노래를 가르쳐 주면서 눈물을 흘렸는지 많은 사연이 함축되어 있는 듯했다. 노래 내용이 슬픈 것이 아니였다면 당시 처한 상황이 슬펐었는지도 모른다.

옛날 일제 치하에서 서럽게 살던 우리네 조상들이 만주와 간도로 가서 살면서 망향의 노래를 설움 속에서 가족들에게 가르쳤다는 얘기도 생각났다.

드보르자크의 서정적인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는 가곡집 ‘집시의 노래’ 7곡 중 네 번째 곡이다. 가사는 체코의 시인 아돌프 헤이둑(A. Heydunk, 1835~1923)의 시이다.

드보르자크의 조국 체코는 우리 나라가 일제 36년 동안 말과 글을 빼앗기고 살았던 것처럼 오스트리아의 압제 하에 오랫동안 자기네 말과 글을 사용하지 못했었다. 체코 말 사용이 금지되던 시절의 절실한 애착심과 이 노랫말과 어떤 연관이 있었으리라는 상상이 가능하지 않을까.

헤이둑의 시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를 읽었을 때 시인의 효성에 공감하고,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정감이 절절해서 곡을 붙였을 것이다. 원래 가곡집 ‘집시의 노래’에 담긴 6개의 가곡들은 대개 활력이 넘치고 자유정신과 강한 기질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는 예외이다.

드보르자크는 열여섯 살에 고향을 떠나 프라하에서 음악 공부를 했고 작곡생활을 했다. 이 노래는 그가 39세(1880년)에 작곡을 한 것이다. 나이가 들었지만 어렸을 때 그리워하던 어머니의 정이 이 노랫말을 만나서 불붙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슬픈 듯하고 아름다운 정감을 자아내는 이 노래를 듣노라면 이 노래를 작곡하기 전 2, 3년 동안 첫딸, 둘쨋딸, 장남을 한두 살에 잃어버린 아버지로서의 참변의 슬픔이 배어 있는 것도 같다.

그 옛날 저무는 놀을 등지고 “자장자장 우리 아기 새근새근 잘도 잔다…” 하시던 우리 어머니의 노래도 낮고 슬퍼서 땅속으로 잦아들었었다. 그 어머니의 애수도 어릴 적에 잃었던 세 자녀에 대한 참척으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어머니 가신지 오래지만 새삼스럽게 기억이 되살아난다.

아기를 서글프게 재우실 때 멀리 산 아래로 날던 새들처럼, 찾아가 안길 어머니 품이 없으니 이 거대한 대지 위에 홀로 선 나는 지향없이 흘러가는 종이배처럼 하느적거릴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