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의 회상

                                                                                           鄭 木 日

 나는 이따금씩 골목길을 걸어 보곤 한다. 골목길엔 아직도 내 삶의 지나온 발자국이 남아 있을 듯싶다. 아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골목길로 미끄러지듯 들어가면 철모르는 소년이 된다. 골목길은 소중한 놀이터였다. 호도알 속처럼 여러 갈래로 뻗은 골목길에서 하루 종일 동무들과 함께 놀았다.

골목길은 아이들을 잘 보호해 주는 은신처일 뿐 아니라 놀이와 환희로 이어진 통로이기도 했다.

골목길에서 만나면 더 정다웠고 우리들만의 은밀한 음모는 더욱 가슴을 뛰게 했고 놀이는 신명으로 가득 찼다. 어른들을 의식할 필요도 없었다. 골목길은 어른들의 꾸중과 감시를 피할 수 있는 내밀하고도 짭쪼롬한 즐거움이 펼쳐진 공간을 마련해 주고 있었다. 골목길로 들어서면 동심의 아련한 통로가 보이고, 어머니와 가족과 어릴 적 동무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도시 어느 곳을 가 보아도 옛날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모습은 사라져 버렸지만, 아직도 골목길에서만은 희미한 내 발자취와 추억의 체온이 느껴진다.

골목길은 마음 속에 있는 추억으로 뚫려 있다. 기억의 등불이 켜져 있다. 좁고 어두컴컴하기조차 한 골목길은 큰길로 이어주는 구실도 하지만, 작은 집 하나 하나씩을 이어 놓기 위한 것이다. 잘못 찾아 들면 막다른 집이 나오고 다시 돌아 나와 여러 갈래로 뻗은 길 중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설이게 된다. 골목길을 다니는 사람에게는 이 길만큼 편안하고 아늑한 길도 없다. 혼자 명상에 잠기면서 휘파람을 불면서 걸어도 좋다. 간섭을 받지 않아도 되는 보행로이다. 술이 취했을 때 노래를 흥얼거린들 고깝게 생각할 사람도 없다.

골목길은 추억의 산책로이자 동심(童心)의 저장소이다.

어느 도시나 몇 년만 찾지 않으면 거리의 모습이 달라져 이방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정이 들고 추억을 간직할 시간도 없이 변한 모습을 보여 준다.

향수, 추억, 기념… 이런 소중하고 낯익은 장소와 거리가 어디론지 사라지고 낯선 표정의 도시가 냉랭하게 얼굴을 맞대고 있을 뿐이다. 첫사랑의 애인 집과 다녔던 초등학교를 가 보아도 주변 풍경이 너무나 달라져 추억의 편린들을 찾아내기도 어렵다.

어떤 구조물도 시간의 침식에 변모하지 않는 것이 있을 수 없다. 변화가 삶의 방식이 되고 있는 시대에 도시 어느 곳인들 삶의 흔적과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 있겠는가.

세상 모든 것이 다 변하여도 변하지 않는 것 ─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사랑, 순수, 진실의 흔적을 찾기 위해 고향과 추억이 담긴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비록 몸은 늙고 세상은 변했을망정 고향을 그리워하고 그곳에 묻히길 원한다. 어릴 적 어머니가 해 주신 음식이 먹고 싶고, 즐겨 다녔던 길을 다시 밟고 싶고, 한번쯤 동무들과 만나고 싶어진다. 사춘기 때 골목길로 다니며 만났던 여학생의 얼굴이 떠오르며, 지금쯤 중년의 여인으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알고 싶어진다.

골목길은 초라하고 어둡고 꾀죄죄한 모습을 지녀, 얼른 보여 주고 싶거나 드러내 놓고 자랑하고 싶은 곳은 아니다. 당당하게 공중 집회에 나선 성장한 차림새가 아니라, 누추하거나 단장되지 못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이웃이 되고 통로를 만들어 놓은 곳이다. 있는 그대로 감추지 않은 모습을 보여 준다.

된장찌개와 오줌 냄새가 섞여 나고, 담 밖으로 식구들의 웃음과 부부싸움 소리가 들리는 곳이다.

앞쪽에서 술이 취해서 흥얼거리며 귀가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어른거리고, 집에 들어오지 않은 나를 찾아 나선 어머니가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골목길을 걸으면 동무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골목길에서가 아니면 가질 수 없는 회상들이다.

골목길이 퇴색하지 않은 추억의 보석 상자로 마음 속에 반짝이고 있다는 것이 여간 다행스런 일이 아니다. 골목길이 있기에 추억을 잃어버린 외로움을 달랠 수 있고, 삶에 상처입은 마음을 위로받기도 한다.

변화와 현대화의 모습들이 도시의 얼굴을 드러내 주는 광채일 것이지만, 골목길이 있으므로 삶의 체취, 마음의 교감을 느끼게 해 준다.

나는 도시가 점점 대형화, 현대화로 치달아 골목길이 사라져 가는 것을 애석하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