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똥 치마저고리 입고

                                                                                         김 수 현

 소설 『아버지』를 읽다 보면, 허구한 날 비틀비틀 술에 취해 귀가하셨던 아버지 생각이 난다. 그때는 골목 담벽에 시멘트로 만든 쓰레기통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있었고, 전봇대는 또 왜 그리 정신없이 서있었는지. 자정 넘어 흐릿한 전등 불빛 아래 아버지는 갈지자로 휘청이며 돌아오셨다. 엄마는 뜨개질을 하며 지루한 밤시간을 보내셨다.

흘러간 노래의 슬픈 가락이 담장 너머로 들려오고, 할 일 없던 강아지 캥캥 짖어대면 초인종이 사정없이 울었다. 집 앞까지는 어떻게 찾아오셨는지 아버지는 초인종만 누르고 나면 도대체 몸을 가누지 못하셨다. 집 안까지 엄마가 어버지를 거의 끌다시피 옮기는 날이 많았다.

간혹 택시에 실려 오실 때도 있었다. 아버지를 안방까지 어렵게 끌고 들어간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래 가지고 도대체 택시 값은 얼마를 낸 거예요?”

한 번도 정확한 답을 듣지 못했던 질문을 엄마는 그날도 되풀이하셨다.

기분 좋게 술에 취하신 날도 있었다.

“소주 더 가지고 와. 내 기분 좋아서 한 잔 더 해야겠어.”

엄마가 아무리 소주병 숨겨두고 한 병밖에 없다고 둘러대도 아버지는 늘 드실 만큼 드셨다. 술이 취하시면 아주 대견해 하셨고, 대견한 고놈들이야말로 아버지의 응어리진 마음을 헤아려 주리라 기대하셨다.

전축을 켜면 레코드 바늘이 자동으로 첫 곡에 놓이듯,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던 북녘땅 이야기를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셨다.

“북청 과수원에는 말이다, 사과가 아주 많았어. 애들하고 시합한다고 하루에 쉰 개까지 먹어 봤거든…….”

“아니, 왜 다 아는 이야기를 또 하는 거예요. 그만 들어가 자자구요.”

엄마는 수없이 한 이야기를 또 해야 하는 아버지의 그 쓸쓸맞은 밤이 가슴 아팠고, 아버지가 그리도 좋아하셨던 소주병을 원망하셨다.

가슴이 아프기야 우리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너무나 익숙한 상황이라 더 이상 심각해질 이유도 없었다. 다 외우고 있던 아버지의 고향 이야기가 또다시 시작되면 철없던 우리는 킥킥거리고 웃다가 슬슬 도망칠 궁리를 했다.

기분이 좋으신 날은 우리가 도망을 쳐도 소리를 버럭 지르지 않으셨고, 우리 때문에 더 쓸쓸해지지도 않으셨고, 취중에도 ‘작전’을 세우셨다.

엉뚱하게 왕대폿집 ‘마포댁’ 이야기를 꺼내어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하셨고, 옷장에서 엄마의 옛날 자줏빛 유똥 치마저고리를 꺼내 입고 흰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는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하셨다.

우리는 도망가다가 주저앉아 배를 쥐고 웃었다. 아버지는 우리를 더 웃기려고 투박한 손을 높이 휘저으며 손짓을 더욱더 간드러지게 하셨다. 당시 지르박이니 탱고니 멋진 춤이 많았을 텐데도 아버지는 여장(女裝)하고 민요가락에 맞춰 춤을 추셨다.

엄마 손 높이 들고 엄마를 빙빙 돌리셨고, 다시 아버지가 빙빙 도셨다. 자줏빛 유똥 치마가 한 바퀴 돌고, 두 바퀴 돌고 돌고 또 돌았다.

아버지는 웃고 계셨다. 취기로 붉어진 아버지의 얼굴은 슬프게 웃고 계셨다. 아버지는 춤을 추면서 분노와 서글픔을 꾹꾹 누르시는 듯 보였다.

아버지가 춤을 추실 동안 우리는 신나게 웃었다. 아버지의 간드러진 손짓이 우스워서가 아니었다. 아버지가 억지로라도 슬픔을 달래고 웃고 계신 그런 날이 그지없이 다행스러워 발바닥에 데굴데굴 구르면서 웃었다. 춤을 추다가 아버지는 한쪽 구석에 쓰러져 잠이 들곤 하셨다.

아버지가 언제 소주잔을 찾으실지, 언제 “이놈의 자식들!” 하고 호통치실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지만, 기분 좋게 술에 취하신 아버지가 허허 웃으실 때면 집안은 갑자기 천국으로 변하곤 했다.

아버지가 밤새 소주를 찾으며 눈물을 흘리셨던 것이 북녘땅에 계신 부모님에 대한 아버지의 피끓는 애정이었다면 그런 아버지의 억지와 호통과 눈물을 견뎌내는 것은 아버지에 대한 우리들의 보잘것 없는 애정이었다.

애정이란 따뜻하고 보드랍고 폭신한 요람 같은 것이 아닐까. 우리의 애정은 왜 이리도 뒤틀리고 아픔 속에서만 가능했는지 돌아보면 가슴 아리다. 이 땅에 이런 식으로 뒤틀린 채 피눈물 흘리는 애정을 품고 살아가는 실향민의 집은 또 얼마나 많은 것인가.

아버지가 소주잔 앞에 놓고 보냈던 수많은 밤들은 결국 눈물로 마무리되는 곤혹스런 밤이었기에 나는 아버지가 유똥 치마저고리 입고 빙글빙글 춤추다가 쓰러져 잠드시던 날이 훨씬 좋았다.

허공을 내어 휘젓던 아버지의 투박한 손은 오래도록 내게 가슴 시린 허전함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