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따라 세월 따라

                                                                                          강 경 애

 어릴 때부터 노래 잘하는 사람을 부러워했다. 가수가 아닌데도 박자, 음정 다 잘 맞추어 멋들어지게 노래하는 사람을 보면, 내가 음치인 것이 싫어서 엉뚱하게도 조상 탓을 하며 속을 끓였다. 음치는 유전이라더니 부모님도 노래라면 듣기가 민망할 정도여서 내 탓만은 아니라는 변명을 할 만도 했다.

아무튼 그런 수준이면서도 나는 학창 시절에 혼자서 노래를 자주 불렀다. 기쁠 때보다 우울할 때에는 어김없이 학교에서 돌아와 방문을 꼭꼭 걸어 잠근 후에 가곡집을 펴놓고 좋아하는 순서대로 한 곡씩 불렀다. ‘로렐라이 언덕’이나 ‘보리수’, ‘가고파’, ‘그집 앞’은 단골 레퍼토리였다. 몇 곡 부르다 보면 어느새 눈물이 볼을 타고 입 속으로 흘러내렸다. 그리고 나면 감정이 정화되어 속이 후련해지고 우울하던 기분이 싹 가셔지곤 했다.

특히 ‘그집 앞’은 가장 자주 부르던 곡이었다. 그 시절 나는 학생들 사이에 인기 절정이었던 세계사 선생님을 사모하고 있었는데, 그 선생님 댁이 우리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있었다. 간혹 선생님 심부름도 했었기에 사모님도 가끔 뵐 수 있었는데 아주 빼어난 미인이었다.

단발머리인 나는 공연한 질투심에 불타서 마음 속에 차곡차곡 미움을 키우며 집으로 향하던 발길을 일부러 멀리 돌아서 가기도 했다. 그런 날은 더욱 애닯고도 처량한 심정으로 노래를 불렀으며, 가끔은 제 감정에 겨워 펑펑 울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때에 품었던 선생님을 향한 그 짝사랑이 지금 내 문학의 자양분으로 되고 있는 것 같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어쩌다 부르게 되는 노래지만 그것은 세월 따라 색깔이 달라진다. 풋풋했던 시절이 지나고 언제까지나 끝날 것 같지 않던 젊음이 힘겹다고 생각하던 때에는, 통기타의 음률 속에서 하수상한 시절을 그려내던 포크 송과 외국의 팝송이 머리 한구석을 차지하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런 음악들은 방황하던 어설픈 내 영혼과 그 시간들을 함께 하였다.

긴 터널을 지나 결혼을 한 후에도 기분이 우울할 때는 지난 시절 나와 함께 한 음악을 듣거나 가끔은 흘러간 노래를 불렀다. 언젠가는 남편과 사소한 일로 심하게 다투고 나서 감정이 풀리지 않은 상태로 자리에 누웠는데, 창가에 어리는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면서 달빛이 부서지고 있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젓는 뱃사공…” 하며 한(恨)이 덕지덕지 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금세 베갯잇이 촉촉해지면서 가락은 울음 반 노래 반 그렇게 이어졌다. 왜 이리 삶이 허망하고 힘겨운 것인가 하며 곡조를 길게 늘이는데 갑자기 굵직한 음성이 뛰어들어 와서 노랫가락은 이내 활기를 띄었다. 내 슬픔에 남편 흥(興)이 보태진 것이다. 이왕 내친 김에 알고 있는 구성진 노래는 다 불렀다. 감정에 겨워 옆집에 방해가 되든지 말든지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족히 두 시간 정도를 그렇게 목청을 돋우고 나니 사는 것이 왜 그리 우스운지 싸울 일도 아닌 것으로 감정 소모를 한 것이 쓸데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은 흘러가는 물인 것을 그 흐름조차도 기다리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라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인생은 느끼면 비극이고, 생각하면 희극’이란 말이 새삼 실감이 났다. 노래 몇 곡을 부르면서 그 동안 쌓였던 감정의 때를 벗어 버렸으니, 노래가 해결사 노릇을 단단히 한 셈이었다.

누구든 나이가 들어서도 가장 좋아하는 음악은 청년기가 끝나고 성년기로 접어드는 23세 전후에 즐겨 들었던 노래라고 한다. 이때 들었던 것이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의 노래가 되어 세월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이에 따라 어떤 것이든 기호가 변하듯이 좋아하는 음악도 변하기 마련이듯이, 갈수록 이젠 클래식과 판소리에 관심이 많아진다. 처음에는 귀에 걸리던 판소리가 이제 절절하게 가슴에 와닿는 것은, 나이 탓도 있겠지만 국문학 공부를 하다보니 자연스레 가까워진 것 같다.

노래는 그 시대의 상황과 감정을 대변한다. 그러기에 문화 예술은 사회 변화의 바로미터가 되는 것이고, 개인에게는 그 마음을 대변해 주기도 하기에 누구든 즐겨 부르는 노래로 그 사람의 자취를 알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노래방이 생기고부터는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고성방가를 하지 않고 노래방으로 가서 호가(浩歌)를 부르며 쌓였던 감정을 토해 낸다. 생시에 쌓였던 울분을 노래에 실어 내보내면서 감정을 이완시키는 것이다. 그렇기에 거리에는 두서너 집 건너 노래방이 있으며, 그곳에서는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사회가 불안하고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을수록 억눌린 감정을 폭발시키어 새로운 마음으로 생활하게 되기에 그런 것이다.

나는 아직도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을 부러워하며 그런 사람 앞에서는 주눅이 들어도, 가끔 노래방에 가서 못하는 노래나마 서너 곡을 불러 보며 삶의 고단함을 덜어낸다. 또 이제는 ‘그집 앞’에 살던 선생님이나 그곳을 맴돌던 학생은 변했지만, 노래하는 순간만은 가곡을 부르던 그 순수의 시간으로 되돌아가서 그리움에 함뿍 취해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