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목이 주는 의미

                                                                                               朴 明 淳

 행운목,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나와 우리 가정에 새로운 의미를 던져주며 꽃을 피웠다. 그 꽃은 진한 향내음을 집안에 가득 채우며 해가 지면 활짝 피는 꽃이었다. 밤이 되면 남김없이 모든 것을 바쳐 짙은 향기를 구석구석 쏟아붓는다.

반듯하게 잘린 나무 줄기에서 나온 무성한 푸른 잎들이 불어오는 바람에 서성이고 있었다. 봄볕 속에 하늘을 향해 서 있는 건강한 잎들을 보며 나는 생명의 빛을 보았다. 그것은 우리 집에 옮겨진 날 이후로 거의 10년을 동거동락한 나무이다. 그 날 이래로 매일 옷깃을 스치며 함께 숨쉬고 같은 공간에서 긴 시간을 보냈다.

마디에서 새로운 싹이 텄고 그것은 곧 커다란 잎이 되어 환희를 가져왔다. 때로는 작은 줄기가 망가지고 껍질이 벗겨지며 나무등걸에 균열이 왔다. 커다란 잎이 있는 순을 잘라주며 옮겨 심은 후 질긴 생명력을 기대해 보았다. 마른 가지에서 푸른 잎들은 잘 자랐고, 천장 가까이까지 키가 훌쩍 커졌다. 겨우살이를 하며 더운 실내에서 습기 조절이 잘 되지 않아 잎의 끝부분이 죽어가기도 했다. 어느 때는 관심 밖으로 밀려나 여러 날 동안 존재조차 느끼지도 못했다. 그런 때에는 누우런 빛깔의 잎으로 변신을 해서 게으름을 일깨워 주기도 했다.

밖으로 옮기려다 화분을 놓쳐 긴 잎들이 뭉개지는 수난을 겪은 날도 있었다. 분갈이를 잘못하여 오랫동안 잎이 축 늘어진 채 죽음으로 가는 모습을 보였을 때는 내 생명과 직결되는 듯싶은 이상한 느낌이 오기도 했다. 나는 나무와 함께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하여 병원에 드나들며 여러 가지 검사를 받기도 했다. 서늘한 바람이 불자 줄기는 다시 본래의 품위를 지키며 잎들은 생기를 되찾았다.

행운이란 어떤 빛깔일까? 무지갯빛처럼 현란한 색채를 지녔을까? 아니면 무채색일까? 그것도 아니면 봄날 아지랑이와 함께 핀 진달래 꽃빛을 지녔을까? 강렬한 색채는 아닐 것 같다. 내 상상은 날마다 현란한 꽃으로 채색되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놀라웁게도 행운목에 꽃이 피기 시작했다. 행운목에 꽃이 피는 한 해 동안 계속 좋은 일이 찾아온다고 했다.

푸른 잎 사이 제일 높은 속잎에서 가느다란 꽃줄기가 솟아올랐다. 그 줄기는 금방 쑥쑥 자랐고 안개꽃 같은 망울이 조롱조롱 맺혀 있었다. 쉽게 쉽게 자라는 작고 섬세한 꽃망울들이 옹기종기 모이면서 하얀 꽃잎들을 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여섯 개의 작은 꽃잎 사이에서 명주실처럼 가느다란 일곱 개의 꽃술이 나왔다. 쌀알 크기의 꽃들이 모여 제법 예쁜 꽃송이를 이루었다. 꽃송이는 각각 작은 한 마디에서 앙증스럽게 피었고 짙은 향기를 품어내었다. 짙은 향내음이 실내에 가득했다. 밤이 되면 그 꽃내음은 더 짙어졌다. 나는 꽃을 보고 놀라서 취했는지 향기에 취했는지 한동안 부웅 떠 있는 기분이었다.

열대지방의 꽃들은 밤에 피어나서 아름다운 자태로 밤을 장식하며 짙은 향기를 품어낸다고 하였다. 행운목은 아침이 오면 지난 밤의 일을 전혀 모르는 듯한 얼굴을 보여 준다. 변색된 시들은 꽃잎들이 자욱을 남길 뿐이다. 그렇게 꽃들이 피어 있는 거의 한달 동안 내 마음은 뿌듯함으로 충만해 있었다.

행운목! 행운이라는 글자가 주는 의미 그대로 실내 곳곳에 행운이 가득 차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는 듯했다. 생각도 못한 곳에서 느닷없이 행운이라는 희망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매일 계속 피고 지고 행운꽃은 지칠 줄을 몰랐다. 지는 꽃잎들은 연신 따주고, 전화선에서는 ‘행운목에 꽃이 피었습니다.’ 앵무새처럼 반복되었다. 마지막 남은 몇 개의 꽃잎이 질 때 마른 꽃잎을 모아 서운한 마음을 담아 놓았다. 말라 버린 줄기를 잘라 놓을 만도 했지만, 너무나 큰 아쉬움에 그대로 놔두었다.

며칠 후에 다른 가지에서 같은 모양의 꽃대가 또 올라오고 있었다. 옆의 가지에서도 새싹이 돋듯이 연한색의 꽃대가 보였다. 행운목은 말 그대로 행운을 가져오는 나무인가보다. 큰딸이 국비로 대학원 공부를 하게 되었다. 이 소식을 받던 날 안개꽃 같은 작은 꽃잎들이 정겨운 표정으로 꽃송이마다 가득 가득 활짝 피었다. 지난번 피었던 줄기보다도 더 건강한 꽃대의 옆에서 깨끗한 꽃들이 계속 피어 매일 꽃향기 속에 머무른다. 어쩌면 이렇게 예쁠까. 꽃술을 들여다보며 자주 중얼거리는 말이다.

행운목은 금년의 마지막 큰 선물을 꽃과 함께 가져다 주었다. 행운이라는 것은 무에서 유를 얻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모든 것은 최선의 노력을 바탕으로 해서 그 뿌리에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른 나무토막이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잎이 나고 꽃이 피는 행운목이 우리 인간사의 거울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