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  론 ─

 盧天命의 수필세계

─ 여성의 삶과 글쓰기를 중심으로 ─

                                                                                                 고 임 순

1. 머리말

2. 모성으로의 회귀

3. 여성의 자아 찾기

4. 언어의 전통 지향성과 액체 이미지

5. 맺는 말

 

 

1. 머리말

 

 

1930년, 여성 작가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시대에 모더니즘적 경향을 띤 시세계를 이룩했던 노천명1)은 두 권의 수필집을 들고 50년대 수필계를 불 밝힌 여성이다.

그는 한일합방 2년 뒤인 1912년, 일제식민지 하에서 태어나 8·15 광복의 격동기와 6·25 한국전쟁의 와중을 살았던 불운의 문학인이었다. 이데올로기에 따른 일방적 해석으로 인해 많은 논란 속에서도 그 실상과 문학성이 운무에 가려진 중요한 작가라는 평을 받고 있다.

어둠과 회의와 고통으로 가득찬 실존의 조건들 속에서 시에 쏟아붓지 못한 가슴의 응어리를 알알이 풀어 엮어 짠 명주 같은 노천명의 수필 연구는 그의 삶과 문학에 대한 복권과 조명이 될 것이다. 수필은 그 사람의 진실한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고백문학이기 때문이다.

여류 시인이라면 여류라는 이유에서 관심을 가지고 작품은 그리 중요시하지 않는 풍조가 있었다.2) 한국 현대 문학사에서 여성 작가의 자리는 다소 공백으로 처리되어온 것이 사실이고, 수필 분야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기존 여성문학에 대한 논의는 남성중심주의 시각을 통한 전통적인 독서 행위에서 이루어져 여성문학에 내재한 본질을 드러내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노천명의 수필은 시보다 분량이 많고, 본격적인 글쓰기라는 정평을 받고 있었으면서도 그 연구는 시 분야보다 활발치 못하였다. 좀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중심 시각의 독서를 통해서 그의 수필이 지니고 있는 또 다른 의미와 특성은 드러나리라고 본다.

오늘의 시대를 어머니, 딸, 아내로 살고 있는 필자는 노천명 수필 연구는 바로 나 자신의 탐구라는 생각을 해 본다. 마음 속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 거울에 비치는 여러 가지 측면을 살펴보는 과정은 같은 여성의 삶과 글쓰기로 연결되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2. 모성으로의 회귀

 

 

노천명은 향수에 대한 집념이 남달리 강했다. 그의 의식 속에는 어머니, 고향, 눈, 바다는 동의어로 연결되어 있어서 그 단어들의 상관관계에서 그의 수필작품의 소재는 이루어지고 있다3)고 할 수 있다. 어떤 글감이던 간에 찾아서 펜을 들면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강력한 힘이 노천명의 작품을 밀고 나가는 원동력이 된다. 이는 어디까지나 작가의 내면 깊숙히 뿌리박혀 있는 모성으로의 회귀인 고향의식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뒤는 산이 둘려 있고 앞엔 바다가 시원하게 내다 보였다… 해변에는 갈밭이 있어 사람의 키보다 큰 갈대들이 우거지고… 산개나리를 한아름 꺾어 안고는 산마루에 올라 서서 수평선에서 아물거리는 감빛 돛폭을 보며 훗날 크면 저 배를 타고 대처(大處)로 공부를 간다고 작은 소녀는 꿈이 많았다.

─ 왛邃嶽?ㅁ?에서 (밑줄은 인용자)

 

성장 과정의 환경은 그 사람의 전 생애를 지배한다. 산, 바다, 해변, 갈밭, 수평선, 꿈 등, 이렇듯 잊을 수 없는 유년 시절의 체험 속의 풍물들을 환기시켜 놓은 것이 노천명 문학의 알맹이인 고향의식이다. 이 고향의식 저변에는 늘 어머니가 숨쉬고 계셨다.

 

어머니는 엿을 녹이고 광에서 연시를 꺼내다 사랑으로 내보내 주었다. 고향과 함께 그리운 여인이다.

─ 『향토유정기』에서

고향을 떠난 지 30년, 나는 늘 내 기억에 남는 고향이 그립고, 오늘처럼 이런 산나물을 대하는 날엔 고향 냄새가 물큰 내 마음을 찔러 어쩔 수 없이 만들어 놓는다.

─ 『산나물』에서

 

이렇듯 고향 이야기가 나오면 그는 마법의 지팡이를 얻은 요술쟁이처럼 신명이 나서 갈피갈피 무궁하게 쌓인 이야기를 끊일 줄 모르고 펼쳐 나간다.4) 작가의 무의식적 추억의 실마리가 자연 속에서 스스로를 다시 구상화시킬 수 있는 것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가의 무의식적인 추억의 무엇인가는 언제나 도처에 유년 시절의 어머니 사랑으로부터 솟아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사모곡은 절절하다.

어머니는 내가 홍역을 할 때 밤을 꼬박 샜으며(겨울밤의 이야기), 쉰 일곱에 돌아가신 어머니는 흰 머리칼이 없었다(어느 봄날의 기), 바다는 어머니모양 언제나 나를 어루만져 준다(송전초), 갈밭이 그리워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서해바다의 밤), 별처럼 머언 이야기를 들려준 어머니(여름밤), 가을의 들로 나가는 즐거움은 내 마음의 고향이 있기 때문이다(산책).

이와 같이 어머니를 그리는 고향에 대한 그의 집착력은 플라톤의 말처럼 원류에 대한 동경, 그것은 인간이 갖는 영원한 고향 그곳으로 귀향하려는 인간의 원칙적 노력인 것이다.

인간의 근본을 향해 열려 있는 원천적인 그리움 세계의 형상화. 그의 수필쓰기는 유년 시절의 나를 현재에 불러들여 자기 자신을 재확인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또 나의 뿌리인 어머니의 숨결이 있는 고향땅으로 다가감으로써 여성이라는 인간의 성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글쓰기는 간접적 출산의 경험이며, 여자의 성을 찾아주는 정체성 확인의 작업이다.

어머니는 늘 왎족潁?을 즐겨 읽으셨다…  어머니의 이 책 보시는 소리를 들으며 늘상 잠이 들었다.

─ 『향토유정기』에서

 

항상 그의 의식 속에 살아 있어서 문득문득 생각나는 잃어버린 여성, 어머니의 목소리는 삶을 위안하고 견디게 한 글쓰기의 밑거름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내재한 욕망에 귀 기울이고, 어머니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면서 여성을 주제로 인식하는 사고를 정립해 나가고 있다.

“그 목소리는 어머니이며 어머니의 육체다. ‘목소리, 고갈되지 않는 젖, 그 어머니를 다시 찾아야 한다. 잃어버린 어머니, 영원성, 그 목소리는 젖과 함께 섞여 있다.’ …글쓰는 여성은 따라서 엄청난 힘을 지닌다. 여성의 이 힘은 어머니로부터 직접적으로 이끌어낸 여성적인 힘이다.”5)

이같은 식수스의 말처럼 노천명의 여성적 글쓰기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통해 이끌어낸 여성적 힘으로 어머니와의 근본적인 유대를 서정적이고도 행복하게 환기시키는 작업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3. 여성의 자아찾기

 

 

한편의 수필쓰기는 살아 있음의 확인이다. 말이란 막힌 것을 풀어내는 생명의 힘으로, 자신의 내부에 치유될 수 없는 체증으로 쌓인 앙금을 토해내버리는 진솔한 자기 목소리이다. 그래서 말하기와 글쓰기는 한 인간으로서의 존재 확인이며, 자기찾기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다음에는 노천명의 여성관을 파악할 수 있는 작품들을 찾아 그 안에 섬세하게 담고 있는 여성으로서 자기찾기의 노력에 주목해 본다.

 

이 나라의 남성들의 인색함, 완고함, 그 시멘트같이 굳어진 여성 무능력시 및 멸시의 관념은 어느 세월이나 청산이 될 것인지… 남성보다 난 시원스런 여성들, 또 머리가 휙휙 돌아가는 능한 여성을 볼 때마다… 좀 대체를 시켜봤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 '여성(女聲) 1956. 10. 18'에서

 

강렬한 여성의식이 아닐 수 없다. 여성이기에 대접받지 못한 사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 글 속에서 작가는 또 ‘여자에게는 어떤 권한도 주지 않는 것이 이 사회의 상식이요 통폐인 것이다’라고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이는 유교사상이 지배했던 조선조 시대의 잔재인 가부장적 담론에 눌린 억압의 말인 동시에 그것에 대응하는 은밀한 저항의 말이기도 하다. 남성중심적 삶에서 절규하는 ‘여성(女聲)’을 통해 자신의 존재 확인과 여성의 자아찾기의 시도가 담겨진 작가의 강한 욕구가 확인되는 작품이다. 또 왍璿?자여 그대 이름은 남자다?)에서는 남성보다 위대했던 의기 논개와 순국 처녀 유관순, 여걸 민중전을 예로 들어 남성 뒤에서 굳건한 받침이 되고 있는 여성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자랑하고 있다. 그래서 약한 자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는 것이다. 또 왏壙美?여성의 오늘의 사명왎【?? 여성의 반수 이상이 문맹임을 한탄, 이 절름발이 현상에서는 완전한 여성해방은 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구습에 얽매인 우매한 농촌 부녀자들의 계몽이 급선무라고 말하는 그는 인텔리 여성의 각성을 촉구, 만여성의 지위 향상을 부르짖기도 한다. 그리고 골목 안 아주머니들의 하찮은 넋두리에도 귀를 기울여 주어야 한다고 서민층 아녀자들의 약한 자리도 옹호해 주고 있다.(‘시의 소재에 대하여’ 한국일보 1956. 12. 14.)

지금까지 살펴본 윗글들은 노천명의 생애에 있어 후기에 속하는 작품으로, 그의 마지막 생명의 불꽃을 한껏 수필 속에 태우며 만여성을 일깨워 주었다는 사실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는가 하면 노천명은 또한 여성은 어디까지나 여성다운 아름다움을 지녀야 한다고, 인간이 추구해야 할 본연의 값진 아름다움을 강조하고도 있다.

여성의 진정한 자아찾기의 시도에 눈을 돌려본다.

 

고운 마음씨를 가진 여인은 언제까지나 아름답다. 착한 마음씨를 지닌 여인들은 어디서나 아름답다. 진실한 정을 품은 여인은 항시 아름답다.

─ '아름다운 여인'에서

 

여기에서 아름다운 여인은 바로 작가 자신이다. 본시 천성이 곱고 여린 노천명은 사랑하는 남성 앞에서 제대로 말도 못하고 가슴은 와들와들 떨기만 했다(나의 20대)7)고 고백하고 있다. 직장에서는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늘상 검은 치마와 흰 저고리 차림이었고, 앞가르마를 탄 머리는 얌전히 양쪽으로 빗어 넘긴 단정한 모습으로 조신하게 처신했다. 그리고 ‘찬바람 불다’라는 별명을 받을 만큼 냉정하게 언행에 조심했다(피해야 했던 남성). 어디까지나 아름다운 몸가짐, 맑은 말씨, 모든 것에 이르러 여자다움이 필요하다(직업여성과 취미)는 것이 그의 생활신조였다.

이렇게 궁극적이고도 복원적인 여성관을 지닌 노천명을 누가 아름다운 여인이라 부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윗글 왍틘㎢牟?여성왎【?낮?조국, 가정, 사회에서 진실로 원하는 아름다운 여성으로 살기를 원하고 노력하면서 그는 종국에 따뜻하고 애정어린 수필들을 남겼다는 사실이 참으로 뜻깊은 일이다.

 

 

 

4. 언어의 전통 지향성과 액체 이미지

 

 

1) 노천명은 그 당시 최고 학부인 이화여자전문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찰스 램의 강의를 듣고 그의 논문8)을 쓰기도 했다. 학구적인 그는 유명한 일본 작가의 작품은 물론 왛픔ゼ奴?그 친구들? 왘더린맨스필드?일기왆?탐독하며(어느 봄날의 기), 더 시야를 넓혀 도스토에프스키의 왒介?벌? 토마스 하디의 왙謬틷를 읽고 눈물로 감동하여 영문학을 다시 공부하고 싶다(단상)고 할 만큼 첨단을 걷는 근대 여성이다. 그러한 그가 수필쓰기에 있어서는 전근대적인 순수한 전통언어를 발굴, 매개어로 사용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마치 원칙처럼 매개어를 시골 풍물로 하지 않으면 도시의 어떤 인물이나 현상도 표현할 수 없는 수사법을 쓰고 있다9)는 점이 바로 이 작품의 특성으로 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우수한 작품일수록 이 원칙이 지켜져 있다고 보는데, 다음에 우리 민족 전래의 농촌생활의 풍습과 감각이 담겨진 글, 산문시 같은 왎㈇㏏?을 살펴보기로 한다.

 

앞벌 농가에선 개구리들이 소낙비처럼 울어대고 삼밭에서 오이 냄새가 풍겨오는 저녁… 달 아래 호박꽃같이 화안한 저녁이면… 어머니는 별처럼 머언 이야기를 들려 주기도 한다… 영악스런 모기들이 아리숭아리숭 하는가 하면 …여기는 바다 밑처럼 고요해진다.

─ '여름밤'에서(밑줄은 인용자)

시골 농촌의 여름밤 풍경이 손에 잡힐 듯 묘사된 수작이다. 소박하고 정감 있게 펼쳐진 윗글은 서두부터 전통적 매개어로 시작되어 운치를 더해 주고 있다. 그리고 군데군데 또 이러한 전통적 수식어가 삽입됨으로써 노천명 수필의 독특한 매력이 풍겨나고 있다.

그 외 다른 작품 속에 드러나 있는 전통적 매개어를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산나물 같은 사람(산나물), 신작로 망나니의 황소 같은 눈의 자동차(자동차), 도롱이를 입고 논에 들어간 모양들이 흡사 왜가리 떼들 같다(여중기), 도라지꽃 같은 마담의 얼굴(서울체류기), 박쥐같이 구성졌던 날들(새해), 천연멍게(해당화열매) 같은 빨간 것, 함박꽃빛 마고자(시골뜨기), 댕기 같은 마늘 잎사귀(낙엽), 비 온 뒤 개구리 소리처럼 여기서도 저기서도 외치는 것은 신문으로(신문배달)…….

이상에서 살펴본 수식어에서 우리는 우리 겨레의 호흡과 감정 체취를 느낄 수 있고, 우리 전래의 생활과 여성이기에 이을 수 있었던 전통적 언어체계를 엿볼 수 있다. 그래서 노천명은 우리 생활언어를 전통지향성의 한 미학으로 창조했다는 이야기가 된다.10) 이렇게 전통적, 고풍스런 매개어 사용은 그의 수필의 태깔과 분위기를 한층 높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이런 경향은 어디에서 연유된 것일까. 밖으로는 첨단을 걷는 근대적 여성이면서 안으로는 전근대적 성격의 소유자이기 때문일까. 사라져 가는 풍속어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그는 골동품을 좋아하고 백자를 보며 조상이 지닌 예술혼을 감지할 수 있는 안목이 있었다(골동품). 베토벤의 악장보다 우리 민족의 넋이 흐르고 있는 심청가, 육자배기, 판소리들이 가슴 골짜기에 스며든다(가야금)고도 했다. 깨끗이 정돈된 기와집에 구김살 없는 한복 차림으로 원고지 앞에 앉은 여인. 글쓰기는 피가 통하는 일부라고(자존심)한 그는 얼마나 수필 한 편 쓰기에 심혈을 기울였는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2) 노천명 수필은 액체 이미지의 언어들로 이루어져 있어 물처럼 녹아서 흐른다. 바로 그래서 평론가 김윤식이 지적한 바 있는 물컹하고 소녀적 감상적인 글이다. 그러나 이 점이 또 그의 독특한 영역이다.

 

어둠 속에 핀 눈이 피뜩피뜩 유리창에 부딛고는 소리없이 녹아 버린다.

─ 『눈오는 밤』에서

소리없이 세우(細雨)가 땅을 축이는 저녁, 함박눈이 산과 들을 덮을 때

─ 『어떤 친구에게왎【?/font>

바닷물은 심청색입니다. 내 흰 치맛자락을 담그기만 하면 곧 물이 나올것만 같습니다.

─『바닷가를 찾아서』에서

나는 어머니에게 왈칵 달려들어 ‘오마니’를 한마디 부르고서는 그만 목을 놓고 울어버렸다. 어머니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며… 나를 달래 주셨다.

─『썰물에 밀려간 해변의 자취』에서

푸른 5월이 밀물처럼 들어온다. 집집의 뜰에 거리의 로터리에 이 신록물이 들게 하라.

─ 『5월의 구상』에서

노천명에 있어 말의 생명은 눈처럼 녹아들고 바닷물처럼 흐르는 것, 그의 눈에 비치는 모든 사물은 아무리 딱딱하게 굳은 것일지라도 풀어지고 녹아서 액체로 흐르면서 가장 아름다운 생명의 풍경을 이룬다. 바다, 눈, 비, 물, 눈물, 밀물, 신록물, 치마를 적신 물 등. 이러한 “액체의 말은 완벽한 액체의 나라와 만나는데, 그것은 바로 여성의 자궁 속이다. ‘나’와 ‘너’의 경계를 허물고 모든 대립과 갈등의 벽을 풀어놓은 곳. 그 액체의 나라에서 생명의 말, 속삭임은 태어나는 것이다.”11)  이때 그 말들, 노천명의 글들은 경직된 남성언어에 대응, 그것을 흔들어 부수어 놓은 여성언어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이 농후한 작품들을 들어보면 왇募弱「?찾아서? 왋낼澁願쪥, 왋?晩募牡?밤? 왛曼?病?, 왋邦豁?, 옿タ윱?밤? 왇募慕?가리? 왇募摸?바라보며? 왌阿걀?밀려간 해변의 자취? 왇募? 등이다. 그의 작품 배경인 바다와 눈세계의 광활한 수평적 공간은 그가 어른이 되어도 휘파람 불며 달려가고 싶은 고향, 관대한 어머니 품속인 것이다. 무의식적 추억의 무엇인가가 푸른 바다나 흰 눈세계 속에서 다시 구상화시킬 수 있는 것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인간의 상상력은 근본적으로 물질에 기반을 두고 전개된다고 보고 물, 불, 공기, 흙으로 기본적인 물질을 4원소로 양식화하여 상상력을 결부시킨 가스똥 바슐라르는 “우리는 소박한 상상력과 시적 상상력에 의해서 물에 예속되는 거의 언제나 여성적인 특성을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또한 물의 깊은 모성을 보게 될 것이다.”12)라 했다. 전항 2에서 거론한 바 있는 엘렌느 식수스 역시 물이 으뜸가는 여성적 요소라고 말하고, 상상계에서 글쓰는 여성은 어떤 것도 그녀에게 해를 끼칠 수 없으며, 그녀를 무력하게 분리시킬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노천명의 수필은 한 폭의 수채화 같다. 물감으로 촉촉하게 절어있는 그림 같은 글. 눈물을 머금고 있는 듯 슬픔이 감돌고 있는 글. 그러기에 향기도 나고 슬프도록 아름답다. 그 특유의 전통적이고 원형적 정서와 예민한 감각으로 포착한 작자의 시선은 자연 속에서 다양하게 이동하면서 그 의식의 밑바닥에는 확고한 나, 즉 여성이 자리하고 있다. 감히 남성이 접근 못하는 독특한 영역이 아닌가.

 

 

 

5. 맺는 말

 

 

이상 살펴본 바 노천명이 가장 여성적인 글쓰기로 일관된 그 개인성을 획득하게 된 것은 그의 남다른 체험과 경험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풍부한 체험이 내부에 쌓이고 쌓여서 심리적 복합체를 이루며 그 폭넓은 수필을 쓰게 된 원동력이 된 것이다.

그는 이루지는 못했지만 가슴이 와들와들 떨리기만 했던 20대에 사랑을 체험했다(나의 20대). 눈오는 날은 성찬을 받는 날이어서 산책을 하고 돌아와 자리에 누워서, 쥐가 나무를 깎는 천장을 바라보며 가슴을 깎으며 밤새 사랑을 음미하는 여인(설야산책), 당신이 나 안에 있는 연고로 내게는 언제나 남 모를 기쁨이 있고, 세상은 항시 신록의 세계로 보였다(바닷가를 찾아서). 그래서 그의 일상은 그리운 사랑의 반추로 가득했기에 절대 외롭지 않았다.

시인 노천명은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사슴의 고독성을 지녔다고 말들 하지만, 그의 수필 속에는 고독을 사랑하고 즐긴 것으로 나타나 있다. ‘고독은 더 이상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것. 나는 적적한 것과 잘 사귀고 또 좋아질 수도 있다’고 옾だ?생활백서왎【?이렇게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그는 진실로 잔인하게 고독을 즐긴(겨울밤의 이야기) 여인이었다.

그가 고독하지 않았던 또 하나의 이유는 종교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베로니카13)라는 세례명으로 미사를 드리고, 신부에게 고해성사하듯 자성의 글쓰기를 하며 거듭나기를 간구했던 여인. ‘인생은 가면 무도회’라고 하는 그는 마귀할멈 같은 6·25 사변14)을 겪으며, 짓밟히며 밀리며 지긋이 참고 괴로울 때면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 남았다(산다는 일). 그는 부산에서의 피난생활을 판잣집15)에서 이겨냈다. 이곳에서 시종일관 삶을 견디게 한 글쓰기로 여자의 삶의 불혹 고개의 위기를 넘겼다. 폐허가 된 서울에 올라온 노천명은 왏京?70년사?6) 집필을 마치고 불면증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심한 빈혈 증세로 길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그의 투병생활은 참으로 눈물겨웠다. 입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입원실 벽에다 원고지를 대고 억지로 몸을 가누면서 글을 썼다. 이렇게 그는 안간힘으로 절박한 궁핍 앞에서 몸부림쳤지만, 재생 불능 빈혈 증세는 악화일로였다.17)

지칠 대로 지친 육신을 병마와 생활고와 싸우면서 그는 누하동 집 정갈한 방에 드러누워 죽음 앞에 드러난 인간의 욕망과 본능을 잠재우고 기도하듯 시를 썼다.

 

아무도 나와 같이 / 해주지 않을 때

말없이 곁에서 / 부축해 주는 이

인자하신 어머니 / 성모 마리아여!18)

그는 그렇게 그리던 어머니, 온 인류의 어머니 품으로 조용히 돌아갔다. 1957년 6월 16일 새벽 1시 40분, 여자의 한창 나이 46세였다.

각각 등가(等價)인 기자,19) 작가,20) 여성의 3박자로 평생 독신으로 오로지 글쓰기에 한몸을 바쳤던 노천명. 아무튼 그는 문학이 남성위주의 전용물이던 시대에 수필을 통하여 여성의식을 일깨워 주는 데 앞장 선 여성이었다. 여성적 삶과 여성적 글쓰기로 일관된 인간의 존재 탐구, 모성의 원초적 뿌리에 대한 향수와 열정, 그리고 사랑과 믿음. 그것들은 병약한 육체 속에 가리어져 있던 참생명을 찾으려는 반증이며, 여성으로서의 그의 수필쓰기는 아픔과 고통을 이겨낸 생존의 서사라 할 수 있다.

 

 

 

고임순

현대수필문학상 수상. 이화여대 국문과 강사 역임(76~97).

현재 교원대학교 출강.

수필집 『이 작은 행복』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