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소리

                                                                                          정 부 영

 묵자(墨子)에 대한 강의를 들으러 간다.

먹물같이 짙은 투피스를 입고 주홍색 스카프를 두르니 기분이 상쾌해진다. 왜 이름이 묵자일까, 잠시 생각이 스쳐갈 뿐 마음은 청명한 하늘만큼 가볍다.

차의 시동을 걸고 테이프를 넣는다. 새의 지저귐이 차안에 맑게 퍼지면서 숲 속의 신선함을 넣어준다. 낮고 여리게 깔리는 관악기 선율이 새 소리와 화음을 맞추며 록키산의 정경을 연주한다. 푸른 신호등으로 한가한 거리를 달리니 도시 한복판이 아닌 산 속을 여행하는 기분이다. 어느새 계곡의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섞인다. 바위 사이를 여울지며 내는 음향은 록키의 웅장한 바위산과 에메랄드 빛 호수, 울창한 전나무 숲으로 달려가게 한다. 소나무와 전나무가 이룬 침엽수림은 하늘을 찌를 듯 곧고, 봉우리와 암벽이 괴이하기만 한 바위산의 위용은 시시각각 모습을 바꾼다. 무지개가 걸쳐진 폭포수와 옥색 호수는 은백색의 빙하를 가까이 두고 사계를 모두 보여 준다.

캐나다의 단 깁슨이란 사진작가는 산 속 깊이 들어가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찍다가 그 소리에도 반하여 들려오는 모든 음을 녹음하였다. 수십 가지의 새 소리나 물 흐르는 소리, 폭포의 굉음과 바람 소리, 천둥 소리, 윙윙대는 벌떼의 음향과 산짐승의 울음 같은 수많은 소리를 멜로디에 삽입하여 서정적인 곡을 만들었다. 자연의 소리가 그대로 리듬과 하모니가 된다. 어떠한 악기도 따라갈 수 없는 영롱함과 심연을 울리는 음악이다. 거기에는 신비한 생명이 있고, 우주적인 질서와 철학도 느껴진다. 그 소리는 깊은 울림이 되어 기쁨과 향수에 젖게 하고 깃털 같은 안식을 주며 정신을 맑게 한다.

동작대교를 건넌다. 강물은 소리 없이 흘러만 간다. 푸른 강물 위로 보우 폭포의 옥색 포말이 오버랩되면서 마릴린 먼로가 나오는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의 용솟음치는 물줄기의 영상이 떠오른다. 하늘자락과 나무 숲과 보우 강의 고유색들이 하모니를 이룬다. 갑자기 차창 밖의 소음에 섞여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에어컨이 고장났나’하며 잠시 살펴본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물줄기의 음향을 물 새는 소리로 착각하고 수도꼭지 고장이나 연상하다니, 혼자 실소를 한다. 차안은 여전히 폭포수가 내는 큰 소리로 청량하다. 곡이 잔잔히 흐르는 가운데 또다시 새의 지저귐과 풀벌레 소리가 섞이고 까악까악하는 다른 새의 반주에 맞춰 물여울 소리로 가득하다. 모두 자연이 내뿜는 본연의 숨결이다. 기분 좋은 날이다. 강의하는 곳에 도착한다.

묵자는 차등적 사랑보다 보편적인 사랑을 강조하고, 겸상애(兼相愛)하여 교상리(交相利)하는 이론을 세우고 실천하였다. 개인의 불화나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을 내 가족과 같이 사랑하자는 박애론을 펼쳤으며, 군(君)보다는 민(民)을 위하는 공리주의를 지향한 학자였다. 노동에 의한 분배가 사회 정의라고 여기며, 실질적인 기술의 습득을 주장하고 매사에 실용성을 적용하였다. 그러나 문화 전달에는 미흡하여 논리적인 면에 머무른 점도 있다. 묵자의 이론을 들으면서 차안에서 감상에 젖었던 ‘Appalachian Suit’의 곡을 떠올려본다. 꿈속을 헤매다가 현실의 세계로 돌아온 기분이다. 현실의 세계에선 정치며 경제, 사회의 복잡 미묘한 고리가 풀리지 않는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강력한 정치체제는 혈연이나 문벌과 관계없이 능력 위주의 현인(賢人) 독재론에서 나온다는 말에 우리의 정치현실을 되짚어보게 된다. 노동하지 않고 사는 것을 불의(不義)라고 한 말에서는 우리의 경제상황과의 괴리를 느꼈으며, 정의가 없는 사회는 바로 설 수 없다는데에 공감하기도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그 음악의 뒷면을 돌려 튼다. 갑자기 치지직 하는 소리가 난다. ‘아까는 괜찮았는데 왠 소음이 이렇게 심할까.’ 하며 창문을 닫아 본다. 매혹적인 기타의 반주음이 흘러나온 뒤에야 바로 캠프파이어를 떠올린다. 나무가 타서 불꽃으로 연소되며 내는 소리가 영혼의 울림처럼 리듬으로 울려 퍼진다. 그 리듬에서는 온기가 느껴지고 불꽃같이 웃으며 어울려 부른 노래와 춤이 연상된다. 파도 소리에 이어진 기적 소리가 슬픔과 이별의 전주곡으로 가슴에 와 닿는다. 잔잔한 선율에 섞여서, 나는 어딘가 머나먼 곳으로 떠나가고 있다. 향수가 밀물처럼 밀려온다. 20여 개의 새 소리와 풀벌레의 자연 속 하모니는 긴 여운을 남기며 곡을 마무리짓는다.

새의 지저귐은 우리 정서의 표현인 ‘울음’이 아니라 서구인의 표현대로 ‘노래’에 훨씬 가까웠다. 소음 속에서 묻혀 사는 생활에 오늘 ‘그린음악’을 들으니 영혼이 맑아진 듯하다.

그린음악은 마음을 녹여주고 심신의 병을 치유하는 효과도 있다. 자연을 사랑하고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자연계에 있는 생명에너지가 큰 치유력을 준다고 한다. 풀과 꽃과 나무와 같은 자연계가 내는 미세한 소리를 음악으로 만든 사람이 있다.

일본의 한 소녀는 대자연의 파동을 들을 수 있는 신비한 능력으로 소리를 음으로 옮겨 적어 그린음악의 전령사가 되었다. CD를 제작하여 보급함으로써 자연의 생명력을 느끼게 하여 심신을 안정시킨다. 김도향이란 분도 선과 기(氣)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태교음악’을 만들었다. 그린음악은 자연과 친구가 되게 하여 각박한 현실을 녹여준다.

식물에게도 자연의 소리는 성장속도를 빨리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농촌 진흥청의 연구팀에 의하면 새 소리나 물 소리, 가축의 울음소리 같은 그린음악을 들려준 식물은 생육 속도가 44%나 빨라졌다. 장미나무는 꽃을 더 많이 피우고, 진딧물 같은 해충도 사라지는 효과가 있다. 부드럽고 선율적인 음악은 성장과 발육을 촉진시키고, 시끄러운 소음은 느리게 한다지만, 자연의 소리는 더욱 큰 효과음이 되나보다.

갖가지 자연의 소리와 화음을 맞춘 음률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번개나 천둥 소리에 맞춰진 곡은 어떠하며, 사납고 큰 동물의 울음을 담은 음악은 어떤 감동을 줄까. 그러다 보니 록키산 깊은 곳의 자연 풍경은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울까 하여 단 깁슨의 사진도 보고 싶어진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대자연은 생명의 샘이다.”라는 타고르의 말처럼 자연의 소리가 하모니를 이루어 소음을 정화시킨다. 소음에 찌든 우리에게 한줄기 청량제이다.

4시간의 짧은 외출은 길고 오랜 여행으로 자리바꿈된다. 오늘은 묵자의 주장보다 장자의 얘기에 더 끌리는 하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