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길

                                                                                                   김 형 진

 지난 여름, 방학을 맞아 집안에서 빈둥거리고 있는 참인데, 고향에 사는 초등학교 동기 동창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는 8월 15일에 동창회를 여는데, 올해는 우리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40년이 되는 해이니 만큼, 이를 기념하기 위해 우리 동기생 전원이 참석하도록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동안 동창회 통지서를 줄곧 받아오면서도 이제껏 한 번도 참석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은근히 마음이 움직였다. 40년이란 세월, 그 동안 아련한 기억의 창 저쪽에 가려 있던 어린 시절이 낡은 거울 속 풍경처럼 하나하나 눈에 어려왔다.

고향 면소재지 허름한 음식점에 모인 동창생은 겨우 30여 명. 모두 그만그만한 중늙은이들인데, 그 동안 가끔 만나 왔던 몇 사람을 빼 놓고는 거의 다 서먹서먹한 얼굴들이었다. 그런데 그 중에 처음에는 영 서먹한 얼굴이었는데 통성명을 하고 나니 곧바로 죽마지우인 친구가 있었다. 그는 초등하교 6년 동안 나와 같은 동네에 살면서 같은 길을 걸어 학교에 다니던 친구였다.

그 친구는 점심을 마치고 나자 나를 밖으로 불러내더니 엉뚱한 제안을 했다. 초등학교 적 통학로를 다시 한 번 더듬어 보자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그 동안 일상적인 일로 1년에 한 차례씩은 고향을 방문해 왔고, 어릴 적에 살던 동네에도 더러 들렸지만 초등학교  적 통학로를 걸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새로 난 찻길을 따라 휑하니 갔다가 휑하니 오곤 했다.

친구는 굳이 타고 온 고급 승용차는 음식점 앞에 세워두고 택시를 이용해 동네에 들어가자고 했다. 택시 안에서 친구는 37년만의 귀향이라며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 친구는 내가 도청 소재지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 서울로 갔었다.

훤히 뚫린 포장도로를 잽싸게 달려온 택시가 채 10분이 못 되어 우리를 마을회관 앞에 내려놓았다. 친구는 동네에 들어서자 옛날에 자기가 홀어머니와 함께 살던 오막살이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옛 모습이 사라져 버린 동네에 그의 오막살이는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한길이 되어 버린 옛 집터 앞에서 친구는 멍하니 서 있다가 돌아섰다. 잠잠히 한참 걷던 친구가, 가난을 벗기 위해 고향을 떠난 후부터 정말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일해 왔는데, 나이가 들어 생각해 보니 그렇게 일할 수 있었던 힘이 이곳에서 살던 때의 힘겨운 가난이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옛 통학로를 찾기 위해 ‘우뜸’을 향했다. 동네에서 초등학교가 있는 면소재지까지의 거리는 약 4km. 지금 자동찻길이 나 있는 동네 앞 큰길이 그때에도 있기는 했지만, 우리는 항상 ‘우뜸’ 우리 집에서 만나 방죽과 야산 기슭을 타고 학교에 다녔다. ‘우뜸’ 우리 집에서 만나 다랑이 논둑을 타고 조금만 가면 바로 방죽이었다. 방죽 안에서 넘실거리는 맑은 물은 여름철에는 10리 통학길의 땀에 전 우리의 몸을 식히는 고마운 수영장이 되어 주었지만, 겨울에는 칼날 같은 물바람으로 우리의 몸을 괴롭히곤 했다. 그래서 겨울에는 둑 허리에 구불구불 길을 내어 곡예하듯 물바람을 피해 다니곤 했었다.

그러나 우리가 방죽 초입에 이르렀을 때 방죽은 영판 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온갖 잡초로 길이 넘게 뒤덮여 우리의 접근을 경계하고 있었다. 사람의 것인지 짐승의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희미한 흔적을 발견하고 그걸 밟아 둑 위에 올랐다. 인적 없는 골짜기 덤불 속에 들어섰을 때와 같은 섬뜩함이 엄습했다. 둑 허리에 우리가 낸 구불구불한 길은 고사하고 멱감던 물가도 확인해 볼 겨를 없이 흔적뿐인 길을 따라 방죽을 건넜다.

방죽을 건너 친구는 잠시 머물러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내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방죽 쪽에서 바람 한 줄기가 불어와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친구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다시 천천히 걸어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칙칙한 억새덤불이 삼엄하게 앞을 가로막고 있었지만 친구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내가 뒤에서 헛기침을 하자, 뒤를 돌아보며 히죽 웃어 보이고는 전진을 계속했다. 친구의 전진을 만류하려 했던 내 의도는 그 웃음을 대하는 순간 맥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 웃음 속에서 아까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던 그의 말이 생각나서였다.

여기서부터 옛 통학로는 야산 기슭과 다랑이 논 사이 둔덕을 타고 나갔었다. 둔덕이 너무 높아 눈보라가 심하게 친 날 아침이면 눈구덩이에 빠져 곤욕을 치르기도 하던 길이었다. 우리는 옛길이라 짐작되는 곳을 가늠해 가며 억새덤불을 헤쳐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겨드랑이를 찌르던 억새가 차츰 어깨를 할퀴고 조금 후에는 볼을 에이더니 급기야 눈앞을 가려 버렸다. 뜨거운 기운이 컥컥 숨을 막아왔다. 결코 서둘지 않으면서도 고집스럽게 억새덤불을 헤쳐 나가던 친구가 숨을 헐떡이며 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서슴지 않고 돌아서 오던 길을 되짚어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길은 길로 이어져야 하는데, 좁은 길은 넓은 길로 이어지고, 묵은 길은 새 길로 이어지고, 할아버지의 길은 아버지의 길로 이어지고, 아버지의 길은 아들로 이어져야 하는데, 이어지지 않은 길은 길이 아니다.”

내가 억새덤불에서 벗어나 방죽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한 줄기를 가슴으로 받고 있을 때 등 뒤에서 친구의 맥빠진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어쩐다지. 여직 내 자식들에게 거짓말만 하고 살아왔으니…….”

친구는 이마며 목에서 줄줄 흐르는 땀을 닦아낼 생각도 잊은 채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